'원두 없는 커피'의 등장...과연 맛있을까?
나는 기술 기업이 밀집한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고급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의심쩍은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다. 이것은 평범한 커피가 아니다. 커피 원두를 단 한 알도 사용하지 않고 만든 커피다.
대체 커피를 연구하는 스타트업 중 하나로 브루드 커피(Brewed Coffee, 물에 우려낸 커피)계에 혁명을 일으키고자 하는 ‘아토모’에서 만든 커피다.
미국 시애틀에 본사를 둔 아토모의 앤디 클레이치 CEO는 “누군가 우리보고 커피 대용품을 만든다고 할 때면 매우 모욕적”이라고 했다.
이 에스프레소는 아토모의 순수한 빈리스(원두를 사용하지 않은) 분쇄 제품으로 만들어졌다.
기존의 커피 대용품은 맛도 커피와는 다르고, 보통 카페인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아토모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료 중 하나로 손꼽히는 커피를 맛과 카페인 함량, 마시는 경험 등 모든 면에서 그대로 재현하고자 한다. 그리고 아직 초기 단계인 이 대체 커피 산업의 첫 빈리스 혼합 제품이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
우선 원두를 사용하지 않는 자신들의 브루드 커피는 매우 친환경적이라는 게 아토모의 주장이다.
실제로 ‘세계자연기금(WWF)’에 따르면 현재 커피 재배는 세계에서 6번째로 큰 삼림 파괴 원인이다.
게다가 인도와 중국 등 전통적으로 차를 마시던 국가에서 커피 소비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커피 재배가 삼림 파괴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더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 와중에 기후 변화로 인해 원두 농장은 더위를 피하고자 더 높은 고도로 옮겨가는 추세다.
따라서 원두 없는 커피는 잠재적으로 환경에 덜 해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아울러 아토모는 원두 없는 커피를 대규모로 생산할 경우 기존 커피보다도 훨씬 더 저렴해질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올해 세계적으로 커피값이 기록적인 수준으로 치솟았기에 시의적절한 주장이다.
또한 지난해 12월, 유럽연합(EU)은 커피를 포함해 삼림 파괴와 관련 없음을 증명할 수 없는 상품의 판매를 금지하는 새로운 규정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취리히 응용과학대학 ‘커피 품질 센터’의 소장이자 분석화학 교수이기도 한 차한 예레지안 교수는 “대형 커피 기업들이 이 분야를 현재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비영리 환경 단체 ‘국제보전협회’의 지속 가능한 커피 파트너십 담당자인 닐스 하크는 커피 산업의 삼림 파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 같은 혁신적인 접근 방식을 환영하면서도 과연 원두 없는 커피가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하크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소규모 농가가 커피 재배에 생계를 의존한다. 그런데 커피콩 재배를 못 하게 되면 아마도 코카나무(코카인의 원료) 재배로 눈을 돌리게 될 텐데, 이 또한 마찬가지로 삼림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완벽한 해결책은 없다”는 지적이다.
하크는 커피 재배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지역 사회를 돕고자 커피 인증 제도부터 이른바 ‘그늘 커피 재배’(다른 종류의 나무 그늘 아래서 커피를 재배하는 것) 방식의 확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커피 산업은) 변화의 길을 걷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빈리스 기업들은 이러한 변화가 그리 크지 않으며, 빠르지도 않다고 반박한다. 커피는 대규모로 삼림을 파괴하며, 커피 농가는 빈곤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체 커피가 향후 예상되는 추가 커피 수요라도 상쇄할 수 있다면 이는 그 어떤 산업도 위협하지 않고도 지구를 위할 수 있는 길일 것이다.
아울러 기후가 변하면서 불법 작물 외에도 커피 농가에서 삼림을 훼손하지 않고도 전환할 수 있는 다양한 작물이 존재한다.
2019년에 출발한 아토모의 이 상품은 현재 미국 내 카페 70여 곳에서 판매 중이다.
카페 체인점 ‘블루스톤 레인’은 지난달 초 샌프란시스코 등 전 지점에서 아토모 커피를 메뉴에 추가했다.
아토모 또한 지난 6월부터 자사 웹사이트를 통해 가정에서 우릴 수 있도록 빈리스와 일반 커피를 혼합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나 또한 한번 마셔보고자 구입했다.
현재 이 제품의 가격은 일반 고급 커피보다 약간 더 비싸다. 예를 들어 아토모의 제품으로 만든 에스프레소를 사기 위해서는 50센트(약 600원) 정도를 더 내야 한다.
한편 아토모가 사용하는 원료가 특별히 고급 기술인 것도 아니다. 대추씨, 라몬씨, 해바라기씨 추출물, 과당, 완두콩 단백질, 수수, 레몬, 구아바, 호로파씨, 카페인, 베이킹소다 등을 사용한다.
과연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시작은 대추씨다. 매우 단단한 대추씨를 잘게 분쇄한 다음 위에 언급한 재료들로 만든 비밀 소스가 스며들게 놔둔다. 그 후 새로운 맛과 향을 만들어내고자 열을 가하는 로스팅 과정을 거친다.
그런 다음 추가 재료를 넣어 마무리한다. 그리고 카페인은 녹차에서 추출해 사용하지만, 기존 커피와 비슷한 카페인 함량을 위해 합성 카페인도 들어간다.
아토모는 캘리포니아 남부에서는 대추씨 세척 시설을, 시애틀에서는 제조 시설을 운영 중이다. 현재 연간 400만파운드(약 1814톤) 정도 생산해내는데, 클레이치 CEO는 이에 대해 커피 생산 업계에서 보면 ‘반올림 오차’ 정도의 양이라고 설명했다. 비교해보자면, 현재 스타벅스 측이 매년 사들이는 커피가 8억파운드 정도 된다.
한편 카페에서 우려준 아토모 에스프레소와 집에서 우려먹는 아토모 제품 모두를 시도해 본 결과, 개인적으로는 두 커피 모두 일반적으로 좋은 커피 맛과 유사했다. 커피의 풍미란 다양하니 대체 커피 업체에는 다행인 일이다.
한편 다른 재료와 방식을 이용하는 기업도 있다.
2021년에 설립된 네덜란드 스타트업 ‘노던 원더(Northern Wonder)’의 원두 없는 커피 제품은 지난 1년간 네덜란드와 스위스의 슈퍼마켓 진열대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노던 원더 제품의 주요 원료는 로스팅 후 잘게 간 루핀과 병아리콩, 맥아 보리, 치커리이다. 그리고 천연 향료로 들어가는 데 그 원료는 비밀이다.
노던 원더의 데이비드 클링겐 CEO는 여전히 연구 및 개발 단계라면서 브루잉 단계를 점점 더 다듬을수록 원료는 바뀔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 분야에 뛰어든 또 다른 기업으로는 싱가포르 소재 ‘프리퍼(Prefer)’와 샌프란시스코의 ‘마이너스(Minus)’가 있다.
그리고 아직 시장 출시와는 거리가 멀지만, 실험실 재배 혹은 배양 커피의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다.
재배육을 만들 때 생물 반응 장치에 동물 세포를 배양하고 수확하는 것처럼, 커피 식물에서 추출한 세포를 배양한 뒤 발효시키고 로스팅해 브루잉 커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지난 2021년 이러한 이론을 증명한 핀란드 정부 연구진은 현재 상용화를 앞당기고자 노력하고 있다.
세포 기반 커피를 연구하는 스타트업으로는 스위스 소재 ‘푸드브루어(Foodbrewer)’, 미국 소재 ‘캘리포니아 컬처드(California Cultured)’,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어나더(Another)’ 등이 있다.
세포 기반 커피는 아토모나 노던 원더가 연구하는 제품보다는 기존 커피와 더 가까울 수 있으나, 이러한 새로운 식품은 출시 전 규제 당국으로부터 승인받기까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아울러 과연 해당 기술이 경제적으로 확장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아직 확실치 않다.
한편 원두를 사용하지 않는 커피를 연구하는 기업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도 여전히 있다. 진짜 커피를 내리며 집안 가득 채우는 향을 따라 하기란 여전히 어렵다. 또한 원두를 사용하지 않는 커피는 진짜 커피를 마시며 느끼는,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인도네시아 등 저 멀리 떨어진 곳과의 정서적 교감을 제공해주지 못한다.
현재 아토모의 주요 사업적 과제는 소비자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시할, 커피 업계의 대형 파트너를 찾는 일이며, 노던 원더는 투자자를 찾고자 애쓰고 있다.
클링겐 CEO는 “사람들은 이 분야가 얼마나 언제 확대될지 온전히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대체 커피로 전환할 생각은 없다. 나는 이 지구 어딘가에서 사람이 재배한 커피를 마신다는 느낌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두 없는 커피는 분명 기존 커피의 지속 가능성과 윤리에 대해 더 들여다봐야겠다고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