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 “소설은 미로의 예술”…20년 건너온 창작의 조언
“삶 자체가 이야기”…예비 작가들 향한 노작가의 문학 수업

한국 문단의 거목이자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는 소설가 이승우가 소설 창작의 본질을 꿰뚫
는 산문집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마음산책) 개정판을 펴냈다. 2006년 초판 발
행 이후 20년 동안 소설 학도들과 예비 작가들의 필독서로 자리 잡았던 이 책은, 세월의 흐
름에 맞춰 문장을 다듬고 새로운 '작가의 말'을 더해 다시 독자 곁을 찾았다.
저자는 대산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등 국내 주요 문학상을 섭렵한 대가임에도 불구
하고 "소설 쓰기는 조금만 멀어지면 금세 낯선 얼굴을 한다"고 고백한다. 이번 개정판은 45년째
소설을 써온 노작가가 20년 전의 자신에게, 그리고 소설이라는 미로 앞에 선 이들에게 건네는 치
열한 기록이자 다정한 조언이다. 이승우 작가는 오랜 시간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수많
은 학생을 만나왔던 경험을 바탕으로, 창작의 기술 이전에 '쓰는 이'의 근본적인 자세를 강조한
다.
"소설의 밑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을 만들며 미로의 정원을
완성하는 것이다. 소설은 미로의 정원과 같다. 미로가 없으면 정원이 아니다. 밑그림은 정원
에 미로를 만드는 작업이다."
이 책에서 이승우는 소설을 '지연과 우회의 예술'이라 정의한다. 목적지에 빠르게 도달하는 것
이 미덕인 효율의 시대에, 소설은 오히려 치밀하게 미로를 설계하고 그 안에서 길을 잃으며 느리
게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질문을 멈추는 순간 소설도 멈춘다"며, 사소한 지점까
지 끊임없이 질문을 거듭해 이야기의 설계도를 그려나갈 것을 주문한다. 정보 전달이 목표가 아
닌 문학적 글쓰기에서, 최단 거리가 아닌 미로를 통과하는 그 느린 호흡이야말로 소설만이 줄 수
있는 가치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소설의 '자전적 성격'에 대한 통찰이다. 저자는 "모든 소설은 궁극적
으로 자전적이며, 작가는 여러 권의 책을 통해 한 편의 자서전을 쓴다"고 말한다. 삶이 고상하지
않기에 소설 또한 고상할 필요가 없으며, 시시하고 하찮은 일상의 편편들이야말로 이야기의 진
정한 시작점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소설 쓰기의 문턱을 낮추는 동시에, 우리 모두가 각자의 삶을
통해 이미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잠재적 작가'임을 시사한다. 창작에 필요한 것은 거창한
자격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라는 점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책은 창작의 기술을 넘어 정신의 수양을 강조한다. 저자는 "정석을 익혀라. 그리고 잊어버려
라"라고 조언한다. 기술을 배우고 스승을 따르되, 결국에는 그 모든 틀을 벗어나 자신만의 문학
적 체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소설 창작을 단순한 기술의 산물이 아닌 '정신의 산물'이자 '삶
에 깊이 참여하는 일'로 규정하는 저자의 목소리는 묵직한 울림을 준다. 등단을 꿈꾸는 문청(文
靑)들에게는 명쾌한 입문서로, 현역 작가들에게는 초심을 일깨우는 지침서로 제격이다.
"소설을 아주 천천히 꼼꼼하게 읽고 있는 사람은 이미 소설 쓰기를 시작한 사람이다"라는 저
자의 말처럼, 이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곧 창작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20년의 세월을 건너와 여
전히 유효한 노작가의 잔소리는, 오늘날 자신의 이야기를 갖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든든한 등
대가 되어준다.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소설이라는 미로 속으로 기꺼이 몸을 던
지려는 이들이 서가에 반드시 갖춰야 할 문학적 지도로 남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