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선 신분세탁해 시장, 대만선 현역 군인 포섭, 한국선 블랙요원 유출...中스파이의 공습 [한중일 톺아보기]
최근 필리핀에서 불법 입국 알선, 보이스 피싱, 자금 세탁 등 각종 범죄행위에 연루된 전직 지자체장을 둘러싼 파문이 커지고 있습니다. ‘앨리스 궈’라는 도용 명의로 지난 2022년 밤방시(市)장에 당선돼 활동하던 이 중국인 여성은 체포망이 조여오자 해외로 도주했다가 며칠전 체포·송환됐습니다.
‘중국 스파이’ 혐의를 받는 그녀를 중심으로 의혹은 양파껍질처럼 까도 까도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인콰이어러’ 등 필리핀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그녀는 도피 과정에서 키프로스, 도미니카 공화국, 캄보디아 등 복수의 여권을 보유한 중국인의 도움을 받았다고 진술했습니다.
불법행위가 드러난 POGO중 두 곳의 위치는 공교롭게도 필리핀군과 미군이 사용하는 공항 및 공군기지 인근에 있었는데, 앨리스 궈는 이 곳들과 모두 연관이 있는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한 곳에서는 중국 인민해방군의 군복까지 발견되면서, 운영에 중국 정부차원의 깊숙한 관여가 있는게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미국, 유럽, 일본 등 강대국들과 달리 필리핀에서 중국과 연계된 간첩 사건은 그동안 두드러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필리핀 군부에서까지 이에 대한 의혹이 고조되는 모습 입니다. POGO 조사과정에서 드러나는 정황들로 중국의 공작활동이 필리핀 국가안보의 핵심지대까지 상상 이상으로 침투해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겁니다.
특히, 최근 중국의 공세는 정권이 바뀐뒤 친미로 돌아선 필리핀 정부가 남중국해 영유권과 관련해 중국에 어느때보다 강경하게 나서고 있는 현 상황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로미오 브라우너 주니어 필리핀 육군 참모총장은 “아직 검증 중” 이라는 단서를 달면서도 “군장성을 포함해 전현직 장교들이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영유권 확립에 협력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는 증거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필리핀의 배타적 경제수역(EZZ)에 대한 첩보 활동을 하기 위해 필리핀 군인 또는 군관계자를 모집하고 있다는 겁니다.
근래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필리핀의 충돌은 매우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스프래틀리 군도(중국명 난사 군도·필리핀명 칼라얀 군도) 사비나 암초 일대 해역 한 곳에서만 최근 한달 새 4번이나 충돌하는 등 대립은 최고조에 달한 상태입니다.
중국이 사비나 암초를 인공섬으로 만들기 위해 매립 작업을 진행하자, 필리핀은 대형 해경선을 배치해 버티고 있는 중입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중국은 첩보활동의 수위를 높여 필리핀 군당국의 내부동태 등을 파악하고, 대응 및 협상에 있어 우위에 서려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그럼에도 최근들어 대만 군부를 겨냥한 중국의 스파이 활동이 더 강화되고 있는 모습 입니다. 예컨데, 지난 2021년 대만 사정 당국은 국방대학 학장을 중국 중앙군사위원회와 빈번하게 접촉하며 내통한 정황을 포착해 조사했고, 복수의 퇴역 장성들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였습니다.
조사결과, 일부 인원들에 대해 유죄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한 전직 공군 간부는 중국에 협조하기 위해 현역 장교들을 7명이나 모집한 혐의로 징역 20년형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10월에는 대만이 처음으로 자체 건조한 잠수함 관련 기밀이 유출된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이후 지금까지 대만에서 전현직 군인들중 스파이 혐의로 기소된 인원만 20명에 육박한 상황입니다.
중국의 공작 활동은 올해 초 대만 총통선거기간 SNS 등을 통한 가짜뉴스와 디지털 여론 조작에서 노골적으로 나타난 바 있습니다. 대만 당국은 같은 기간 동안 국방부를 겨냥한 중국 정보기관의 공작활동도 매우 강력했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미국 CSIS는 2000년대 이후 미국내 중국의 첩보 활동이 급증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적발 사례가 계속되는 한편, 최근 중국은 미국 등 서방출신 전투기 조종사 등 전현직 군인들을 공격적으로 채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선진 비행 기술을 보유한 인력을 영입해 공군력 향상을 도모하려는 겁니다.
이에 지난 6월 미국 국가방첩안보센터(NCSC)는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파이브 아이즈’ 회원국들과 함께 중국에 경고의사를 전달했습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공식적인 반응을 자제하면서도, 민간 기업을 통해 진행된 채용은 합법적 상업 활동으로 간주된다고 보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상대국보다 더 높은 연봉을 제공해 인재를 확보하는데 무슨 문제냐는 겁니다.
그러나 현역은 물론이고 전직 군인들이라도 외국 정부에 훈련을 제공하는 행위는 기밀 유출로 이어질수 있기에 대부분의 나라에서 법률로 규제됩니다. 특히 NCSC에 따르면 중국의 서방출신 군인 채용 수법은 사실상 사기에 가깝습니다. 민간회사를 설립하고 인민해방군과의 연결고리를 숨긴 채 막대한 급여를 제안하는 방식으로 영입하기 때문입니다.
영입 대상은 전투기 조종사뿐 아니라 비행 엔지니어, 항공 작전 센터 관계자, 공중 군사 전술 전문가 등 다양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는 “첨단 전투기와 공중 전술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대만 상공에서 서방이 펼칠 전술 등을 엿보려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양안에서 군사적 충돌을 일으켰을 때를 가정한 훈련의 일환이라는 겁니다.
중국은 서방의 경고에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조종사 영입 시도를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해킹 사실조차 모르고 있던 일본 정부는 미국의 도움으로 뒤늦게 사태를 인지했지만, 이듬해인 2021년까지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무력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일본 정부는 부랴부랴 사이버 사령부를 신설하고 대비를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시진핑 주석은 3기에 접어들면서 예전보다 더욱 “안보”를 강조하고 있는데 이에 따라 국가안전부(MSS)의 영향력과 활동도 전방위로 확대돼 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유는 국가간 교류나 경제활동을 빌미로 실행되며, 일반활동과 첩보활동이 공공기관 뿐 아니라 민간이든 학계 등 구분없이 혼재돼 나타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수많은 개인과 조직에 걸쳐있는 분산된 방식이 다른 나라들로 하여금 중국의 활동을 탐지하고 대응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겁니다.
전 미국 FBI 중국 전문 분석관 폴 무어는 ‘1000개의 모래알’(A Thousand Grains of Sand)라는 말로 중국의 공작활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해변의 모래가 첩보 대상이라고 가정해보자. 미국은 위성과 각종 첨단 기술로 모래를 분석해 정보를 얻고, 러시아는 야밤에 소수의 특공대를 보내 모래를 퍼오게 한다면, 중국은 1천명이든 1만명이든 대낮에 사람을 보내 그들이 묻혀온 모래를 모은다. 결국 중국은 다른 나라보다 더 많은 모래를 얻게된다.”
그는 이 같은 물량공세가 언뜻 비효율적이고 혼란을 유발할 가능성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안전하고 효과적인 결과”를 중국에게 가져다 주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으로 인해 수십년에 걸쳐 구축됐던 한국의 휴민트망은 궤멸적 타격을 입은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 같은 명백한 이적 행위에도 현행법상 간첩법이 적용되지 못할 뻔했다는 사실입니다. 현행 간첩법은 간첩 행위를 ‘적’에게만 한정하고 있는데 ‘적’은 오직 북한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이 군무원의 이적행위에는 북한과의 연계가 포착돼 간첩죄 위반혐의도 함께 적용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느때보다 다차원적이고 복잡한 첩보전이 벌어고 있는 상황에서 아직까지 이 같은 시대착오적 조항이 그대로라는 사실에 많은 한국인들은 분개했습니다.
이제서야 여당이 간첩법 개정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야당에서도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입니다. 특히, 여당은 관련 법령의 적용 범위 확대 뿐 아니라 국정원의 대공수사권도 부활시키겠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만, 문제는 시대착오적 현행법 만이 아닙니다. 사건 발생후 무려 7년 동안이나 발각되지 않았다는 건 내부 감시 체계와 보안 관리에 심각한 허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허술한 내부 보안 체계와 기강이 치명적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으로, 이것은 법률로써 뜯어 고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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