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역사 알리는 일본인 문화관광해설사
경기 구리시의 곳곳을 누비면서 유창한 한국말로 우리 역사를 전하고 있는 일본인 미호코 씨는 2012년부터 문화관광해설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을 존경하고, 일본인들에게 어떻게 한국의 역사를 잘 알릴 수 있을지가 앞으로의 숙제라고 말하는 구리시 문화관광해설사 미호코 씨 인터뷰를 정책주간지 'K-공감'에서 확인하세요.
“독립선언문 읽고 눈물 흘려
일본인에게 바른 역사 알리는 것이
내 인생의 과제”
조선시대 역사유적지를 일본인 해설사가 안내해준다면? 일본 침략의 역사를 일본인의 목소리로 듣는다면? 우리나라 역사를, 무엇보다 일본 침략의 상흔이 남아 있는 현장을 일본인이 직접 소개한다고 하면 다들 의아해 할 것입니다. 경기 구리시의 곳곳을 누비면서 유창한 한국말로 우리 역사를 전하고 있는 이가 있습니다. 구리시 문화관광해설사 마쓰모토 미호코(65) 씨입니다.
구리시의 문화유산을 누구보다 아끼는 미호코 씨는 2012년부터 문화관광해설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세계문화유산 동구릉과 삼국시대 격전지인 아차산, 수많은 근대 인물들이 잠들어 있는 망우역사문화공원의 숨은 역사와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본 군마현에서 태어난 미호코 씨는 12세에 사이타마현으로 이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인쇄기능직 공무원을 지냈습니다. 그러던 중 1988년 28세에 경북 안동 김씨 가문의 한국인을 만나 결혼해 32세에 한국에 정착했습니다. 아이 넷을 낳고 가정주부로 지내던 미호코 씨는 한국 드라마를 보며 한국 역사에 빠져들었습니다. 중고서점에서 ‘조선왕조실록’을 사와 읽으며 독학으로 한국 역사를 공부했습니다.
더 깊은 지식을 쌓고 싶어 구리지역사회교육협의회가 주관하는 역사교실에 참여해 한국사를 본격적으로 배웠습니다. 그러던 중 구리시에서 문화관광해설사를 육성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전했습니다. 2011년 문화관광해설사 과정에 합격한 데 이어 경기도 문화해설사 심화과정 등을 이수해 해설사 패찰을 달게 됐습니다.
미호코 씨가 해설사로 첫 발을 내디딘 곳은 구리시 고구려대장간마을입니다. 고구려 유적 박물관으로 고구려군의 요새인 아차산 보루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고 그 역사적 의미를 홍보하기 위해 2008년 설립된 곳입니다. 이후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쓰이며 관광지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미호코 씨가 해설사를 맡을 즈음엔 일본에서 드라마 ‘태왕사신기’ 열풍이 불며 ‘욘사마’ 배용준의 흔적을 밟으려 일본 관광객이 몰려왔습니다. 미호코 씨는 점심시간도 반납하며 일본인 관광객을 위해 열정적으로 한국의 역사를 전했습니다. 올해는 구리시해설사회 회장에도 임명됐습니다. 외국인으로는 최초입니다. 미호코 씨는 “문화관광해설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힘이 있다”며 “문화해설을 통해 한일 간 문화 교류에 작은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습니다.
Q. 한국 드라마를 보며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역사 드라마를 보면서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안동 김씨 가문에서 태어난 남편은 족보를 귀하게 여겼고 자신의 가문에 대해 늘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결혼한 이후 매년 여섯 차례의 제사를 지내는데 제대로 알고 조상을 모시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중고서점에서 역사서적을 사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역사를 공부하며 유교문화를 익히고 한국인의 효문화도 이해하게 됐습니다.
Q. 한국사를 공부하며 흥미롭게 본 지점이 있나?
독립운동가들의 활약과 1919년 3·1운동 독립선언문을 감명 깊게 봤습니다. ‘대한이 당당한 자주독립국’임을 알리고 ‘대한은 평화를 애호하는 국가’임을 선언합니다. 일본은 아시아를 토대로 삼아 세계 진출을 꿈꾸며 무력을 휘둘렀습니다. 주변 국가를 침략하고 짓밟았습니다. 과거 일본의 침략 행위는 후손들에게도 부끄러운 역사입니다. 반면 한국은 평화를 중요시합니다. 그 바탕에 유교사상이 있다고 봅니다. 배울 점이 많습니다. 또한 도산 안창호 선생을 존경합니다. 안창호 선생은 “스스로 힘과 실력을 키우고 그 실력을 기반으로 할 때만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누구도 비방하지 않고 탓하지 않으며 오롯이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살았던 안창호 선생의 삶을 본받고 싶습니다.
Q. 문화관광해설사로 일하며 뜻깊었던 순간이 있다면?
동구릉의 경우 일본인들이 거의 오지 않아 한국인을 대상으로 해설할 때가 많습니다. 처음 한국인에게 해설할 때 일본인인 나를 거절하면 어쩌나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이는 내 실력을 의심했는지 ‘조선의 마지막 왕의 릉은 어딨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인 관광객은 일본인이 해설을 한다며 따뜻하게 봐주고 관심을 가져줍니다. 또 한국인보다 더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며 감동했다는 이야기를 해줘서 감사하기도 합니다. 한국인의 따뜻한 정을 느낍니다.
Q. 일본인에게 일본의 한국 침략 사실을 전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한국 역사의 주요 시기마다 일본의 침략과 박해가 있었습니다. 삼국시대 보물을 도굴해가거나 조선시대 제국주의로 지배하고 모든 것을 파괴했습니다. 일본의 침략과 침탈 역사를 들을 때마다 한없이 움츠러들고 의기소침해졌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들을 땐 눈물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 반드시 이 모든 것을 듣고 배워 일본인들에게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객관적으로 역사를 바라보려 합니다. 감정이입을 하지 않고 역사를 하나의 사실로 받아들이며 우리는 이런 잘못을 반복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일본의 현대인들에게 과거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싶다는 의지가 생겼습니다.
Q. 침략의 역사를 전해들은 일본인들의 반응은 어떤가?
일본의 한반도 침략 역사를 세세하게 전하고 싶지만 동구릉이나 고구려대장간마을에서는 그런 역사를 전할 길이 없습니다. 그나마 일제강점기인 1933년부터 40년간 공동묘지로 사용돼온 망우역사문화공원에서는 할 얘기가 좀 있습니다. 일본인들이 오면 한반도의 훌륭한 문화가 일본에 전파됐다는 이야기를 주로 합니다. 일본의 현대인들은 잘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한 예로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앞마당에는 조선시대 문신상이 서 있습니다. 일본이 약탈해간 문화재가 버젓이 서 있는 것입니다. 일본인들은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바뀔 것이라 생각합니다.
Q. 한국을 찾는 일본인에게 권하고 싶은 관광지가 있나?
일본인들은 배용준이나 이민호, 송승헌 등 한류 배우들 때문에 한국을 찾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의 나라를 궁금해 하는 것입니다. 명동에 가서 화장품을 사고 인사동에 가서 불고기나 비빔밥을 먹었다고 해서 한국을 다 아는 게 아닙니다. 역사의 현장을 찾아가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경복궁의 단청에 담긴 의미를 듣고 드라마 속에 나온 거리를 직접 걸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역사적인 건물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들여다보고 배운다면 더욱 깊이 있게 한국을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한국 현대사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최근 관심을 가진 건 민주화운동입니다.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 자리에 ‘민주인권기념관’ 건물을 짓고 있습니다. 대공분실은 군부독재에 대항한 민간인들이 고문당했던 장소입니다. 이곳에서 문화해설사로 일하며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민주화운동 과정을 전하고 싶습니다. 일본인들에게 어떻게 한국의 역사를 잘 알릴 수 있을지가 앞으로의 숙제입니다.
미호코 씨가 추천하는 구리시 역사 여행 1번지
조선왕조 500년
숨결이 살아 숨 쉬는 동구릉
2009년 6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의 능침지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합니다. 200만㎡의 넓은 대지 위에 태조 이성계 및 선조, 영조를 비롯해 조선의 왕과 왕비 9기 17위의 유택이 마련돼 있습니다. 조선왕조 500년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동구릉은 당대의 예술성과 시대상을 반영한 공간입니다. 풍수사상에 입각해 능 자리를 택했고 국가 의례 규정에 맞게 조성돼 당대의 정치·경제·문화상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고구려 유적의 보물창고,
고구려대장간마을
아차산 자락에 자리한 고구려대장간마을은 아차산4보루에서 발견된 간이 대장간을 근거로 세워졌습니다.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한 웅장한 시설을 재현해 주목받고 있습니다. 공간은 유적전시관과 야외전시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유적전시관에는 고구려 보루에서 출토된 토기, 철기 등의 유물을 전시했습니다. 직경 7m의 물레가 있는 대장간이 있는 야외전시장은 고구려 주택과 마을을 재현해 독특한 분위기를 냅니다. 영화 ‘안시성’을 비롯해 드라마 ‘태왕사신기’, ‘선덕여왕’ 등 드라마와 영화 촬영 장소로 활용됐습니다.
근현대사의 보고,
망우역사문화공원
경기 구리시와 서울 중랑구 면목동·망우동에 걸쳐 있는 망우산에는 1933년부터 조성된 망우산 묘역이 있습니다. 독립운동가들과 당시 저명인사들이 잠들어 있어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님의 침묵’을 쓴 시인 만해 한용운, ‘목마와 숙녀’의 저자인 시인 박인환, 어린이날을 만든 방정환, 종두법의 도입자 지석영, 화가 이중섭 등 30여 명의 역사적 인물이 이곳에 묻혔습니다. 봄이면 순환도로를 따라 벚꽃이 아름답게 피어 조깅 코스로도 인기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