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못가진 "유일한 자동차 회사" 26년 만에 완전히 사라진 이유

너무 늦게, 가장 나쁜 시점에 뛰어들었다

삼성이 본격적으로 승용차 진출 허가를 받은 건 1994년, SM5를 실제로 내놓은 건 1998년이다.

이미 현대·기아·대우·쌍용이 내수·수출 시장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던 상황에서, 다섯 번째 업체로 진입한 셈이다.

게다가 첫 양산차가 나오자마자 아시아 금융위기와 IMF 구제금융 사태가 터져, 내수 수요 자체가 급격히 얼어붙었다.

‘빅딜’과 구조조정 압박 속에서 희생양이 되다

IMF 체제에서 정부는 대기업 부채비율을 낮추고, 그룹마다 ‘핵심 업종만 남기는 구조조정’을 강하게 압박했다.

이미 국내에 완성차 4사가 있는 상황에서, 후발 주자인 삼성자동차를 계속 끌고 가기에는 정치·여론·정책 모두 부담이 컸다.

기아차 인수에도 실패한 뒤 “삼성은 자동차를 접고, 다른 주력 산업에 집중해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해지면서, 결국 자동차 부문은 정리 대상으로 찍혔다.

'장치산업’ 구조를 과소평가한 초기 투자

삼성은 부산 신호공단에 대규모 공장을 짓고, 부품·판매·서비스까지 그룹 계열사로 수직계열화를 짰다.

2010년까지 연간 150만 대 생산을 목표로 할 정도로 몸집을 키웠지만, 실제 시장은 IMF로 급수축하며 설비가 한순간에 ‘과잉투자’로 바뀌었다.

완성차는 한두 모델 판매가 부진해도 고정비와 감가상각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신생 업체였던 삼성은 이 초기 손실을 버틸 만큼 수익 기반이 아직 없었다.

기술·브랜드 ‘자립’ 전에 위기를 맞았다

삼성차의 첫 모델 SM5와 1톤 트럭 ‘야무진’은 일본 닛산의 세피로·아틀라스를 기반으로 만든 라이선스 차량이었다.

현대·기아가 초기에 일본 기술을 들여와도 곧 독자 플랫폼과 엔진으로 전환한 것과 달리, 삼성은 독자 기술을 축적하기도 전에 외환위기를 맞았다.

‘삼성’ 브랜드 인지도는 높았지만, 자동차 분야에서의 신뢰와 차별화된 기술 이미지를 쌓기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룹 전체를 살리기 위한 ‘꼬리 자르기’ 결정

삼성자동차는 출범 2년도 안 돼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고, 채권단 부채는 2조 4천억 원대까지 불어났다.

이건희 회장은 법정관리 신청과 함께 자신이 보유한 삼성생명 주식 일부를 내놓아 손실을 메우겠다고 약속했고, “자동차를 포기해 그룹을 살린다”는 선택을 했다.

결국 삼성차는 청산 직전 르노에 매각되고, 삼성은 완성차 산업에서 공식적으로 철수했다.

르노에 넘긴 뒤에도 ‘흔적’은 남았다

르노가 인수한 뒤 ‘르노삼성자동차’가 출범하면서, 부산 공장과 SM 시리즈 브랜드는 살아남았다.

삼성은 지분 일부를 유지하며, ‘삼성’ 상표 사용에 대한 로열티(매출의 일정 비율)를 받는 방식으로 간접적으로만 남았다.

반면 르노가 인수하지 않은 삼성상용차는 결국 파산했고, 설비는 해외로 팔려 나가며 삼성 상용차 브랜드는 완전히 사라졌다.

완성차는 접었지만, 자동차 산업 영향력은 다른 방식으로 확대

삼성은 이후 완성차 제조 대신 전기차·하이브리드 배터리, 차량용 전장·반도체 등에서 ‘자동차 산업의 필수 부품 공급자’로 방향을 틀었다.

보쉬와 합작했던 전기차 배터리 사업(SB리모티브)을 전량 인수한 뒤, BMW·폭스바겐·크라이슬러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 배터리를 공급하며 새로운 입지를 구축했다.

즉, 완성차 브랜드 ‘삼성자동차’는 26년 만에 완전히 사라졌지만, 자동차라는 산업 자체에서 삼성의 존재감은 부품·배터리·전자 장비 영역으로 더 깊이 파고든 셈이다.

왜 ‘삼성만 못 가진 유일한 자동차 회사’가 됐나

지금 한국에서 재벌 그룹 가운데 자체 완성차 브랜드를 갖지 못한 대기업은 사실상 삼성뿐이다.

현대·기아·KG(쌍용 인수) 등이 각자 자동차 회사를 유지하는 것과 달리, 삼성은 한 번의 대규모 실패 이후 다시 완성차에 뛰어들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태다.

“삼성이 못 가진 유일한 자동차 회사”라는 말 뒤에는, IMF 시기 잘못된 타이밍·과도한 투자·정책 환경·기술 자립 지연이 만든, 삼성 그룹 역사상 가장 비싼 학습 비용이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