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설계 전문가가 소개하는 건축조명의 세계 5편 : 색온도와 연색성
조명이 그저 어두운 곳을 밝히는 장치라고만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거주자의 삶의 질을 떨어뜨릴 수도, 높일 수도 있는 것이 조명이다. 조명설계전문가 차인호 교수를 통해 매월 조명설계의 세계와 실제를 만나본다.
“교수님, 이렇게 조명을 설치하면
어두울까요, 아니면 너무 밝을까요?”
현재 운영하는 유튜브의 구독자나 건축주가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조명기구의 밝기감이 적절한가에 대한 것이다. 가장 걱정하는 것이 빛의 양에 대한 고민이라 그렇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휘도’의 개념을 예로 들어 설명하는데, 조명을 잘 모르는 분에게 설명하는 어려움의 첫 단계다.
필자가 설계하는 빛의 공간은 밝음과 어두움을 쾌적하게 혼재하도록 계획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공간 경험이 없는 대다수는 ‘어두움’에 대해 두려워하거나 부정적으로 인식하곤 한다. 쾌적한 어두움이나 기분 좋은 음영에 대한 공간적 기억이 없다는 것 때문에 밝음과 빛은 좋은 것이지만, 어둠과 그림자는 나쁜 것으로 인식한다. 마치 서로 적으로 만나 다투어야 하는 극명한 대립 관계인 바둑판의 흑과 백처럼 말이다.

그 다음 두 번째 난관은 조명의 색온도에 대한 질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조명을 보면 조명의 빛은 그냥 흰색으로만 느껴진다. 하지만, 이 빛의 색감에도 차이가 있다. 색온도는 빛이 가지는 색감의 정도다. 자외선, 적외선을 제외한 가시광선,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빛의 영역 안에서 구분할 수 있는 빛의 색감이다.
떠오르는 태양이나 석양으로 물들어가는 아침, 저녁 하늘을 보면 오렌지나 붉은 빛을 볼 수 있다. 이것이 가장 낮은 색온도의 빛이다. 인공광으로 보자면 모닥불이나 촛불이 이 정도의 색온도를 갖는다. 이와 비슷한 색온도의 3,000K(캘빈, 색온도의 단위) 정도 조명을 조명가게에서는 ‘전구색’이라고 호칭한다.
한낮의 태양광을 보면 눈부시게 밝기도 하지만, 빛이 ‘쨍하다’고 느껴진다. 이때의 색온도는 6,000~6,500K으로 ‘주광색’이라 한다. 한자로 ‘낮 주(晝)’자를 써서 주광색이다. 한낮의 태양빛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데, 형광등이 주로 이 주광색으로 생산되어 널리 쓰였다. 한국에서는 많이 사용하지는 않지만, 전구색 형광등도 있다. 밝은 흰색으로 언뜻 푸른 빛깔이 도는 느낌이다. 태양빛을 반사하는 달빛의 색온도가 밤에 보면 차갑게 느껴지는 것도 달의 색온도가 높기 때문이다. 색온도가 낮으면 따뜻한 오렌지 빛으로, 색온도가 높으면 희다 못해 푸른 빛으로 느껴진다. 전구색과 주광색 사이, 4,000~5,000K 정도의 색온도 조명을 ‘주백색’이라고 하는데, 주광색에 비하면 부드러운 흰 빛의 조명이다.

“집안에서 공부방, 거실 등 용도별로 색온도를 다르게 쓰는 것이 좋은가요?” “공부방이나 주방에는 꼭 주광색을 써야 하나요?”
의뢰인의 색온도에 대한 질문은 주로 이런 것이다. 질문에 답을 하여 건축주를 이해시키려 할 때, 질문한 사람이 ‘연색성’이란 개념을 모르고 있다면 설명이 더욱 어려워진다.
연색성이란 광원의 빛으로 사물을 볼 때 고유의 색을 구현하는 정도를 말한다. 매장에서 구매한 옷이나 화장품을 집에 가져와서 봤을 때, 색이 달라 보여 반품 또는 환불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조명기구의 연색성이 낮은 조명환경 때문이다. 또는 매장과 가정의 조명이 연색성에서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

연색성의 단위는 일반적으로 Ra나 CRI(Color Rendering Index) 이렇게 두 가지를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다. 100Ra는 가장 높은 연색성의 장량적 기준으로, 한낮의 태양광이 가지는 원색의 구현 정도다. 그러니까, 한낮의 태양광에서 보는 색감이 가장 정확하다는 기준을 세우고, 그것의 수치를 100Ra로 정한 것이다. 조명기구는 90Ra 이상이면 고연색성이라고 할 수 있다. 연색성이 높은 광원은 낮은 광원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 정확하게 색을 봐야 하는 의류 매장이나 디자인 스튜디오에서는 당연히 고연색성 광원이 필요하다. LED 이전의 구(舊) 광원 시대에서는 백열전구나 할로겐 램프와 같은 고연색성 광원을 비교적 값싸고 쉽게 구해 사용했다. 물론, 해당 광원에서 나오는 열을 식히기 위한 매장의 냉방 비용이 많이 들었지만, 배광 품질이 우수한 고연색성 광원이 주변에 있었다.
연색성은 빛의 양이 우선 충족되어야 제 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 불 꺼진 어두운 방에서 자려고 누우면 옷걸이에 걸어둔 티셔츠의 색상은 잘 보이지 않지만, 옷의 실루엣은 보이는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형태는 보이지만 색은 인지할 수 없는 상태다. 사물의 유무, 대상의 형태는 우리 안구 내부의 ‘간상체’라는 세포에서 인지하는데, 비교적 어두운 상태에서도 식별할 수 있다. 이것이 간상체의 중요한 역할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색을 보고 있어서 의식하지 못하곤 하는데, 사실 색을 인지한다는 것은 더 높은 차원의 감각으로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의 일부와 조류처럼 고도로 진화된 생물의 전유물이다. 이들의 안구 속 ‘추상체’라는 세포에서 색을 구분하는데, 사물의 색을 정확하게 보려면 연색성과 함께 300~500lux 이상의 조도가 확보되어야 한다. 즉, 고연색성 조명을 사용하더라도 충분한 조도가 확보되지 못하면 높은 연색성을 지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제 건축주의 “집안에서 공부방, 거실 등 용도별로 색온도를 다르게 쓰는 것이 좋은가요?”라는 질문에 답을 할 때다. 국내에서는 일반적으로 공부방, 거실, 식탁과 주방은 각기 다른 색온도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심지어 ‘카페나 매장에서 사용하는 전구색의 오렌지 빛 조명은 분위기를 내는 조명이니까 집에서는 사용하면 안 된다’는 인식도 있었다. 조금씩 바뀌고 있지만, 공부방이나 식탁·주방에서는 높은 색온도의 하얀 빛을 내는 주광색 조명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공간과 색온도는 아무 관련이 없다.
색온도는 취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주 강조하지만, 조명은 빛의 문화이기에 반드시 어떠해야 한다는 것은 없다. 다만 ‘보다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면에서 설명하자면, 주거공간이라면 기본적으로 휴식을 위한 공간 인상이 우선되어야 하기에 전구색의 낮은 색온도의 광원으로 통일하여 공부방, 거실, 침실, 식탁과 주방으로 계획하는 것을 추천한다. 공부방 색상의 긴장도 유지는 책상 스탠드와 같은 국부조명 배광으로 조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구색으로만 조명을 설치해 누렇게 보이면 어떻게 하냐는 건축주도 있었다. 하지만 완성된 후에는 아늑하고 편안하며 쾌적하다고 모두 만족했다.

중요한 것은 색온도의 차이가 아니라, 전문적인 건축조명설계를 진행하고 질 좋은 광원의 조명을 적절하게 잘 적용했는지 여부다. 당연히 연색성이 좋아야 하고 침대, 책상, 식탁, 아일랜드, 테이블에 적합한 각각의 배광과 공간 전체를 아우르는 배광의 조화를 고려한 우수한 조명이 필요하다. 종종 ‘전구색 조명이 누렇게 보이고 주광색 조명은 모든 색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 흰색 조명’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LED 이전의 구 광원 시대에 경험한 우리의 문화적 선입관과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백열전구는 말 그대로 전구색으로, 3,000K 이하의 오렌지 빛, 낮은 색 온도 조명기구다. 우리가 이 조명을 노랗다고 인식하는 이유는 백열전구를 대체하여 널리 쓰이게 된 형광등 조명 때문이다. 전쟁과 가난의 시기, 경제 고도성장기에 필요했던 광원은 백열전구보다 적은 에너지로 공간을 효율적으로 밝힐 수 있었던 형광등이었다.
공장, 학교, 공공시설물, 관공서는 물론이고 일반 가정과 매장에서도 다양한 형광등이 거의 모든 공간에 사용되었다. 어디를 가나 높은 색온도의 차가운 형광등으로 구석까지 동일하게 밝혔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보는 빛의 색감은 푸른 형광등의 색온도를 ‘정상’으로 여겼고, 형광등 아래에서 보는 흰색이 정확한 ‘흰색’이라고 오해했다.
이렇게 형광등에 적응한 시절에 간혹 백화점이나 고급매장에 가면 백열전구의 사촌인 고연색성 할로겐 램프가 설치되어 있었다. 백열전구의 연색성은 적어도 90Ra 이상인데 비하여 일반적인 형광등은 60Ra를 조금 넘기는 수준이다. 이렇게 명백하게 백열전구의 연색성이 우수하다. 매장의 할로겐 램프도 백열전구 계열이기에 연색성이 매우 우수하다. 이런 사정 때문에 백화점에서 색을 보고 구매한 옷이나 화장품을 집에 와서 보면 그 색 느낌이 나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연색성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으니 백열전구는 노란 빛으로 인색했고,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유럽과 북미 같은 선진국에서는 우리나라와 반대로 주거와 관련한 거의 모든 공간에 연색성이 좋은 백열전구를 사용하고, 푸른 느낌이 나는 형광등은 창고나 대형 생산설비와 같이 일상에서 동떨어진 덜 중요한 곳에서만 사용했다.
이제는 LED 조명기구의 높은 효율성 때문에 백열전구는 더 이상 생산되지 않고 형광등도 사용이 크게 줄며 LED로 대부분 대체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광원의 색온도만 가지고 연색성을 비교할 수 없게 되었고 오늘날 LED 시대의 조명에서 빛의 질을 논할 때 연색성이 더 중요해졌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공간의 조명에서 용도별로 조명을 선정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휘도와 색온도, 연색성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거기에 하나 더. 마감재 특성도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 이에 따라 빛의 특성이 크게 달라진다. 휘도-색온도-연색성-마감재 특성, 이 모든 것이 공간을 지각하는 데 필요한 요소다. 이를 병렬적인 분석과 함께 공간설계에 적용하기 위한 CMF(Color, Material, Finish) 분석이라고 부른다.
필자의 <차인호 공간조명연구소>에서는 전문적인 CMF 디자인팀을 운용하고 있다. 건축조명설계에서는 조명만 가지고 공간의 분위기를 만들 수 없다. 건축설계나 구조, 조경, 시공 등 각 분야 전문가들과 적극적인 소통과 협업을 통해 완성도를 높 이는 과정이 중요하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특히 조명계획은 어쩔 수 없이 빛의 다양한 요인으로 공간에 섬세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글과 사진_ 차인호 교수 : 차인호 공간조명연구소
구성_ 신기영
ⓒ월간 전원속의 내집 2025년 5월호 / Vol. 315 www.uuj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