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소유에서 존재로
집은 수많은 건축물의 일부이지만, 건축가에게도 건축주에게도 그 의미는 작지 않다. 곽데오도르, 이성범, 류인근, 조한준, 박준호, 전인호, 6인의 건축가들이 모여 건축가로서 집에 대한 그들의 의견과 생각, 철학을 솔직하게 나눴다.
Part.1 주거에 대한 개념을 정의내리다
전인호(사회자) : 이곳 비스타벨리에서 열리는 2024 건축좌담의 주제는 [집, 소유에서 존재로]입니다. 집은 원래는 집이라는 존재 자체로서의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근래의 집은 경제 논리에 의해 집을 사고팔며 재산 축적의 가치로 쓰이는 경향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집이 존재보다는 소유로 가치가 결정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때문에, 집이 가지는 진정한 본질이 많이 상실된 것이 아니냐는 질문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대 주거의 문제점이라고 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이제 순수하게 집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경제성, 지역성 등 전반적인 생각들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먼저 각자 주거에 대한 개념을 정의 내리는 것으로 오늘 좌담을 열어보겠습니다.
곽데오도르 : 저는 좀 엉뚱한 생각을 해봤습니다. 예술가가 조각을 만들었다고 합시다. 대다수 조각은 동산(動産)입니다. 작품들이 이곳저곳 미술관을 옮겨 다니지요. 우리 건축가가 예술가의 범주에 든다면 우리의 작품은 움직이지 않는 조각, 즉 부동산(不動産)입니다.
제가 사는 집이 있는 남프랑스는 세계적인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이 태어난 지역이기도 합니다.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그중 하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교사로 일하던 건축주가 의뢰해 지어진 집입니다. 그런데, 사는 건 너무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기껏 집을 지어놓고 따로 새집을 지어 40년간 살았다고 하니까요. 그 건축주가 돌아가시고 자녀들이 재산분쟁을 일으켜 매물로 나와 한 번 구경 갔습니다. 정말 그림책에 나올법한 멋진 집이었더군요.
그것을 보면서 건축가가 예술로서 자기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이 건축가로서 부러운 한편, 부동산 즉, ‘상품’으로서의 집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였습니다.

박준호 : 학생 때 품은 딜레마가 생각나네요. 당시 학교에서는 건축사상 가장 위대한 주택 3개로 르 코르뷔지에의 ‘빌라 사보아’,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낙수장’, 미스 반 데어 로에의 ‘판스워드 주택’을 꼽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세 작품 모두 현실적으로 사람이 살 수 없는 주택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최고의 작품이면서 동시에 사람이 살 수 없는 집. 그럼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그때 가진 가장 큰 의문이었습니다. 그 뒤로 20년 이상 건축설계를 하고 답사도 하면서 지금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지만, 여전히 건축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딜레마 중 하나일 것입니다. 결국은 무엇을 추구하느냐, 목표 지점이 정해져야 하는 문제입니다. 작품과 상품 사이에는 꽤 큰 경계가 있지 않겠습니까.
양쪽을 동시에 하려는 사람도 있고, 상품이 작품화되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작품이 상품화되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건축하는 분 중에 명확하게 자신의 타겟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이성범 : 집도 건축적인 사유와 철학이 집약된 작품으로서 표현되기도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집이라는 대상은 사실 그렇진 않습니다. 단적인 예로, 제가 설계할 때 건축주에게 네 장짜리 설문지를 드리거든요. 원하는 집의 규모가 어느 정도고, 방이 몇 개고 거실이 있고 이런 피상적인 내용이 아니고, 건축주가 지금까지 경험했던 공간에 대한 기억들, 과거에 좋았던 공간 이야기를 단초로 스토리를 끌어내고자 하는 설문지입니다.
집을 지으려고 찾아오는 분들은 처음에 대부분 비슷하고 단순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어떤 것들을 좋아했고, 앞으로 살 집에서 무엇을 하게 될지에 대한 상상보다는 단순하게 집을 짓는 데 드는 비용, 지어져야 할 집의 면적 이야기가 먼저 나오지요.
이런 생각 틀에서 벗어날 방법은 설문지를 통해 그 사람의 내재적인 어떤 의식을 끌어내는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건축가는 건축주가 의뢰하는 집의 개념을 잡아가며 소통을 위한 요소로 활용하게 되지요.
실질적으로 집은 작품이 아니라 건축주의 삶을 담는 과정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조금 전에 박 소장님이 말씀하셨듯이 세계의 ‘좋은 집’이 ‘사람이 살지 못하는 좋지 않은 집’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 중 하나도 그 공간에서 살아갈 사람에 대한 이해가 없이 단순하게 건축가의 생각을 담아내는 방식으로서만 인식된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는 조금 다른 접근 방법으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덧붙여 단순하게 사람과의 관계뿐 아니라 결국 모든 건축물이 마찬가지로 땅하고의 관계와 접점들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굉장히 다양해지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사람과 땅과 건축 공간과의 관계를 조율하면서 특히 공감을 통해서 건축 공간을 구축하다 보면 결국은 건축주가 너무도 마음에 들어 하는 집에 나오게 되더군요. 집이라고 지었는데 사람이 살지 못하고 건축주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집은 저는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전인호 : 이성범 소장께서는 건축주의 삶을 더 충실하게 반영시켜주는 작품이 건축적 주택에 대한 진정성이 있다고 보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이성범 : 그런데 한편으로는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저도 디자인적인 성향이 조금 강한 편입니다. 저를 찾아오는 주택 건축주 중에서는 (통상적인) 집 같지 않은 집을 원하는 분도 많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조형성과 공간감에 있어서 보편적인 형태에서 조금 벗어난 것들을 하다 보니 그런 것들을 보고 찾아오시고, 지금까지 자기가 경험하지 못했던 무언가 새로운 것을 경험하기 위해, 나머지 인생에 대한 배경을 만들기 위해 찾아오시는 분도 있습니다. 작품이냐 상품이냐의 문제에서는 적절한 안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건축주의 요구조건을 그대로 들어준다고 좋은 집은 분명 아닐 것입니다. 그들의 내재적인 다양한 생각들을 끄집어내서 기존에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제안하고,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에 대해 예측하면서 그 다양한 가능성을 집 안에 스미게끔 하면 훨씬 좋은 집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조한준 : 다른 건축가들도 대체로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건축에서 이게 작품이냐 아니냐의 기준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예술 사조가 시대에 따라서 바뀌고 다양한 양식이 나오면서 현대 미술까지 왔듯, 건축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주거도 그 양식이나 현대 사회 현상을 반영하다 보니 이제 여기까지 흘러온 것입니다. 또 교수님들이 한창 현업에서 작업 하실 때는 지금처럼 집을 짓는 관점이나 시장 상황이 많이 달랐을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특정 부유층 내지는 그것을 실현할 재력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작업을 할 수 있는, 비교적 자유로운 하나의 캔버스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의 그런 희소성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단독주택이라는 게 접근하기 쉬운 하나의 분야로서 건축의 일상적인 용도나 분야로 대두된 것은 불과 십몇 년 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기억으로는 故 구본준 한겨레 건축전문기자가 그때 친구와 함께 ‘땅콩주택’ 열풍을 만들면서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나도 주택을 가질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그 후로 다양한 주택들이 시장에 나오게 되고, 또 젊은 건축가들이 더 많이 대두되어서 우리도 건축 작품을 오픈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가 생기는 상황이었다고 기억합니다.
그러면서 젊은 건축가들은 실험적으로 무언가 독특한 요소들을 넣기도 하겠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니즈를 우리가 무시할 수는 없지요. 무시할 수는 없는데, 조금 전에 박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해충돌에 대한 과정은 항상 고민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정답 하나를 내놓고 그 지점만을 향해 달려갈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작품이냐 상품이냐도 시대나 사회 현상에 반응할 수밖에 없겠지요. 주택은 특히 의식주의 한 부분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밥을 먹고 옷을 입는 것도 하나의 고정된 틀을 갖고 가는 게 아니라 계속 변화해왔다는 것이지요.
류인근 : 저는 주택의 개념을 고민할 때 ‘관계를 이어주는 느슨한 질서’라는 말을 자주 쓰는 편입니다. 제가 만든 말은 아니고요. 요즘 현대 주택, 현대 주거라는 개념은 무엇으로 정의해야 할까요. 주거가 오피스가 되기도 하는 세태를 생각하면 다 불확실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뭔가 질서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아주 조그맣게라도. 제가 주택 설계할 때는 이 질서라는 것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얼마 전 예술가들과 전시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예술가들이 저희가 진행한 건축물에 캔버스에다 그림을 그린 전시였습니다. 저는 건축을 예술 작품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큰 범위에서 우리 삶이 예술이듯, 건축도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 전시 제목이 건축가와 예술가의 합동 전시였습니다. 그때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건축가와 예술가가 분리되지? 같은 말 아닌가?’ 전시 계약서에서도 예술가와 건축가의 계약서가 아예 다를 정도로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두 직역이 묶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모든 게 조금 더 느슨하지만 명쾌하게 해결된다고 봅니다. 앞서 부동산 얘기를 했듯이 예술의 속성 중 하나가 사고파는 것입니다. 이게 현대 사회의 흐름이기 때문에, 주택도 그 흐름 안에 던져지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택이 잘 팔리고, 좋 은 집이라고 인정받고, 예술로서도 인정받고, 굳이 거주하지 않아도, 존재에서 조금 벗어나도 우리가 예술의 범주 안에 퐁당 뛰어들면, ‘집’도 더 여유롭게 해석되지 않을까 하는 게 요즘 건축가로서의 관심사입니다.

Part.2 요즘 건축가들은 전통을 어떻게 고민하고 있나
전인호 : 아마 1980~90년대에 작가주의 건축이 두드러진 시기는 국민소득하고 상관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때 당시는 건축가가 짓는 집하고, 건축가가 소위 ‘집장사’ 집이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4.3그룹’이나 유학파처럼 작가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나름대로 건축계를 이끌어갔고, 그래서 그때 당시에 건축가들이 짓는 집 자체가 대부분 작가 중심적으로 이루어졌지요. 그런 집들이 작품화가 되고 매체를 타면서 건축가의 존재가 더 보편적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전통과 개성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습니다. 전통건축을 탐방하고 토론하고 이런 일들이 많았었지요.
전통 원칙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요즘 전통건축의 상징성이 사라져가는 것이 무척 아쉽습니다. 그래서 최근 특히 젊은 건축가들이 이 전통에 대한 문제하고 건축을 어떻게 같이 고민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이성범 : 제주도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를 통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이번에 ‘2024년 아천 건축상’을 운 좋게 수상한 작품입니다. 전통성을 보편적으로 건축가들이 많이 이야기하는데, 대부분 전통건축이 가지고 있는 장식적, 건축적 이미지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는 어떤 지역성에서부터 개념을 끌어오거나 아니면 거기에 담기는 다양한 의미들을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건축 공간들을 만드는 방향성도 있겠지요. 저는 조금은 후자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특히 거기에 이제 소재나 전통적인 주거 방식에 있어 공간 구성 방식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건축가의 감성을 담아내는 그릇’ 정도에서 끝내는 게 아니고 건축주와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서 전통적 요소들을 끌어내는 과정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채 나눔 구성은 제주도에서 보이는 안거리와 밖거리의 개념을 통해서 공간적인 틀을 만들었습니다. 특히 제주도는 굉장히 습하고 비도 많이 오는 기후적인 특성을 가지기 때문에 외부 공간의 처마를 다루는 방식이나 바람에 대한 영향들을 심도 있게 작업해야 했습니다. 그런 것들을 구체적으로 잡아가는 과정에서 전통성, 지역성을 버무려가며 작업을 했었습니다. 이런 과정은 꼭 지역이 아니더라도 서울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습니다. 건축가는 건축이라는 작업을 유기체적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풍토나 지역성, 전통성과의 관계를 더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조한준 : 우리나라 주거, 집을 짓는 모든 구성 요소나 집의 외형같은 기술적인 요소들은 거의 서양에서 유래한 것들을 받아들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집의 모든 구성 요소들을 종합해 바라보면 세계 어디에도 우리나라 같은 집은 없습니다. 의식주, 생활양식이 다르다 보니 그것을 바탕으로 정해지는 양식도 자연스럽게 우리나라만의 양식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현대에 지어지는 모든 집이 크든 작든 기존 전통 양식과 단절되어있다고 볼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전통건축이 가지고 있는 요소 중 얼마간은 사라지거나 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이 많아지는 것 같은데 최근 들어서 많은 건축가가 전통적인 요소를 많이 담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집에서의 삶이 단순히 ‘쉘터’로서의 요소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가족이라는 ‘커뮤니티’로서의 기능이 중요하기 때문에, 전통이라는 요소는 어디론가 사라지는 게 아닌, 계속 명맥을 유지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인호 : 현대 건축의 주류 주거형태인 아파트의 구조는 제주도나 서울이나 똑같은 형식으로 가기 때문에 지역성과 전통성이 완전히 배제되어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주거의 보편화가 극도로 진행된 영향이라고도 볼 수 있고요. 다만, 이제 주택인 경우는 아무래도 지역성을 고민해야 하고, 이런 부분이 아마 건축에 많이 반영되어야 하는 것도 맞을 것 같습니다. 또 우리 선조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반영된 전통건축의 가장 큰 문제가 불편하다는 데서 오는데, 그럼에도 우리 전통과 지역성을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조한준 : 하지만, 우리나라 아파트 구조도 사실 우리나라만의 평면 구성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아파트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전통적인 ‘이웃집’ 개념도 아예 없지는 않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아파트는 사실 상품화되어 있는 주거 형식이기 때문에 아파트 말고 다른 단독주택의 개념에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기후가 사실 굉장히 혹독하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 건축가들도 주택을 설계하는 데 있어 현대적인 요소들을 완전히 무시하기 힘들고, 건축주에게 불편함을 감수하라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눈에 펼쳐지는 광경이나 구성, 시각적인 공간감을 가져다주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그 못잖게 중요한 것이 주거환경, 주거성능에 대해서도 굉장히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류인근 : 꼭 전통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주거 건축물을 설계할 때는 반드시 고민하는 이슈입니다. 하지만, 많은 분이 ‘재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건 문제라고 보고 있습니다. 좀처럼 기회가 주어지지 않다가 이성범 소장님과 똑같이 저도 제주에서 처음 주택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지를 봤더니 건축주가 땅에 뭔가 꽂아두셨더라고요. 풍수에 따라 실 배치를 해놓은 것이었습니다. 현관도, 마당도, 나무 한 그루도 배치와 방향이 정해져 있어 저는 텍토닉(tectonic)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현대 건축적 관점에서 보면 굉장히 불합리한 위치에 현관이 들어서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짓고 나니까 조금은 그게 어떤 의미였으리라는 것이 느껴지기는 했습니다. 묘하게 ‘전통’ 언저리의 느낌이 났습니다. 제가 한 건축의 구축 언어는 완전 서구의 것인데, 묘하게 이 마당을 봤을 때는 전통적이라는 느낌이 났습니다.
우리가 주택을 설계할 때 많은 건축주가 요구조건을 냅니다. 무슨 집이었으면 좋겠고. 그런데 많은 분이 ‘패시브’한 요구조건들을 잘 내질 않아요. 그 땅에서 어디가 해가 잘 들고 땅이 어떤 형질이고, 어떤 식재가 잘 자랄 것이며 이런 얘기를 잘 안 나눈다는 것입니다. 우리네 법규도 ‘틀어막는’ 방향으로 가고 있잖아요. 소위 ‘보온병’을 만든다고 할까요. 그런데 이것 또한 고등교육을 한다는 건축과에서는 안 가르쳐줍니다.

전인호 : 전통에 대한 개념을 우리가 피상적으로 배우고, 체화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우리가 너무 서구화되어있기 때문에.
곽데오도르 : 한옥에 산다고 전통가옥을 분야를 잘하는 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삶의 양식이 그러하지 않은데 전통가옥 요소를 끼워 맞춘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박준호 : 저는 미국에서 오래 있다가 한국에 왔기 때문에, 한국에서 계속 살고 한국에서 공부한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비교적 객관적 시각으로 보게 됩니다. 내가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바로 위의 선배, 4.3그룹들이 매번 전통, 한국성을 얘기할 때였습니다. 당시에 그들의 생각은 잘못된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완전히 방향도 정의도 잘못되어 있는데, 감히 그것을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성을 지키는 게 아니라 지역성을 찾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요. 1980년대 초 뉴욕에서 공부할 때 케네스 프램튼이 얘기했던 비판적 지역주의. 그게 전 세계 건축의 사조였습니다.
그는 비판적 지역주의를 소개하며 전 세계 건축가 8명을 뽑았는데, 알바로 시자도 그때 처음 뽑혀서 유명해졌습니다. 그런 사람이 아시아를 대표하는 비판적 지역주의 건축가로 안도 다다오를 뽑아서 뉴욕 모마 미술관에서 전시를 했습니다. 그때 저는 대학생일 때였는데, 굉장히 충격적이었습니다. 당시 인터뷰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일본 사람이 하면 그게 일본 건축 아닌가요?’ 그러니까 우리는 매번 한옥이 어쩌고, 한옥에서 뭘 해야 하고 이야기할 때 말입니다.
우리나라 건축계의 가장 큰 문제는 역설적으로 전통성이에요. 너무 추구하다 보니 허구를 잡은 것이죠. 이타미 준 선생도 평생 이야기하던 것이 왜 지역성을 보지 못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땅에서, 그 자연환경, 날씨, 문화, 음식 이런 데서 무엇을 짓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이것을 전통성과 의도하든 아니든 혼동해버리는 데서 문제가 시작한다고 봅니다.

집짓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비용입니다.
많아야 한다는 의미보다는 명확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Part.3 집을 짓는 데 있어 중요한 것
전인호 : 주택 건축에 있어 중요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곽데오도르 : 돈이죠. 왜냐하면, 자기 이상을 구현하는 데 재정적 문제가 약하면, 건축이 추상적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가치 구현의 등위성에 있어서 재정적인 바운더리를 미리 그어버리면 도저히 구현하기 힘들어요. 물론 한두 번은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집을 지으면서 3천만원 씩 사비를 넣어 지어본 적 꽤 있습니다. 지역 활성화를 위해서 노력하고, 한 달에 300만원 정도 희생하면 내가 원하는 것을 구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일 년 정도는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수년씩은 못하겠더군요.

류인근 :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크다’ 이런 철학적 표현이 있지요. 아리스토텔레스가 했던 말이고, 거칠게 요약하면 전체적으로 보자 이런 의미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주거에서는 ‘부분의 합이 전체보다 더 크다’는 입장이에요. 저는 설계를 시작할 때 매스라고 하는 큰 덩어리로부터 시작하기보다는 부분부터 생각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보통은 큰 덩어리에서 작아지는 방식으로 프로세스가 이어진다면, 우리는 그것을 완전히 혼재시키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땅이 있는데, 가장 먼저 침대의 디자인과 침실부터 계획하는 것이죠. 배치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침실, 마스터룸, 이런 것들이 먼저 있고, 공방이 필요하다면 그냥 공방을 설계합니다. 사실 이런 방식은 인테리어 설계에서 종종 이뤄지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저희에게 오는 클라이언트들에게 ‘우리 아직 배치 끝나지 않았으니까 소파 고르지 말고 기다리세요’ 이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희에게 모든 아이디어를 다 쏟아내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러면 저희가 부분들을 합쳐 전체를 만들어낸다 이런 것이죠. 물론, 큰 틀은 이제 제 머릿속에 숨겨두고 있지요. 어차피 이렇게 해도 ‘틀 안’이라는 느낌입니다. 클라이언트에게 ‘이거 하지 마시라’ 이렇게 얘긴 안 하고, 마음껏 놀이터를 던져준다는 방식인데, 어떻게 보면 편집자로서 한 발 뒤로 물러나 있는 모양새일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꽤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은 다른 전문가와 협업하기가 편하기 때문입니다. 혼자 설계를 한다면 모르겠지만, 팀원들과 함께 하거나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같이 선상에 넣거나 한다면 괜찮은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준호 : 건축가 렌조 피아노가 생각나는 사례네요. 그는 건물을 지을 때 조그마한 디테일에서부터 시작을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디테일을 그리고, 그것을 사무실에서 1:1 풀 스케일로 재현해 검토하지요. 그것을 만들고 나서 건물 설계를 시작한다는군요. 30년 전 얘기지만, 굉장히 독특한 방식입니다.

이성범 : 저는 땅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있을 수밖에 없는 땅을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굉장히 중요한데, 대부분의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은 ‘내가 지을 수 있는 규모’인 건폐율과 돈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 범주안에서만 건축물을 짓게 되는데, 저는 어느 시간이든 언제나 마당이 건축물과 가지는 관계라는 것을 굉장히 선호하고 있습니다. 자연과 어떤 방식으로든 소통을 주택에 가져가려 하는데, 그러다 보니까 제 작업이 대부분 다공성 공간들이 많습니다. 그런 것들을 통해서 전혀 생각지 못한 공간감이 생겨날 수도 있고, 실제 사는 사람들의 다양한 행위가 펼쳐질 수 있는 배경을 만든다는 관점에서 건축주들이 무척 좋아합니다. 저는 이제 외피 면적이 늘어나는 것에 대응해 내부 면적을 줄이기도 합니다. 건축주가 단독주택 면적으로 50평을 이야기하면 설계는 40평으로 한정하고 외부 공간을 더 활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다양한 디자인적 접근성을 가미하는 것입니다. 건물 하나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담장과 건축물의 관계라거나, 구 조 사이 틈, 엄청나게 뻗어있는 캐노피 공간, 이런 것들을 활용하면서 복합적으로 마당과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조한준 : 철학이라기보다는 자세라고 할 수 있는데, 저는 땅과 건축주가 있으면 땅은 어머니고, 건축주는 아버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아이가 부모님의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듯이 건축주와 땅의 헤리티지가 정확히 일치해서 얻을 수 있는 최적의 결과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조금 전에 이성범 소장이 말한 것처럼 땅과의 관계를 푸는 게 제일 중요한데, 일단 저는 철저하게 건축주의 만족도를 제가 찾아주자는 주의입니다. 그리고 건축주가 가지고 있는 예산과 그 사람들의 생활방식이라던가 자기 생각이 분명히 거기 다 반영이 되어야 하는데, 제가 그들을 잘 모르니까요. 그래서 일단 제가 건축주가 되어보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비전문가인 건축주의 1인칭 시점으로 설계를 하자는 것인데, 그러려면 자주 놀아야합니다. 술도 밥도 같이 먹고. 그러니까 서로 간에 존중이라는 게 생기더군요. 그래서 서로 ‘리스펙’하는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건축 철학입니다.
Part.4 건축 비용과 주택 시장에 대한 시선
전인호 : 건축비용과 주택 시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로 마무리해보고 싶습니다.
이성범 : 코스트 바운더리를 명확히 짚고 시작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분명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한편으론 저도 재설계를 많이 해봤습니다. 지금보다 의욕이 앞섰던 젊었을 때입니다. 건축주가 가지고 있는 코스트 안에서의 최대의 디자인적 강점과 나의 건축적 사유를 담아낼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을 찾는 것까지가 설계더군요. 그게 건축가의 몫이고요. 건축적인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해 새롭거나 값비싼 재료를 쓰고 싶기도 하지만, 사실 딱 정해진 범주 내에서의 건축가 역량에 의해서 새로운 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보면 나오더군요. 그게 중요한 첫 단추일 것 같습니다.

류인근 : 우리가 전에 <하우스 디자인 세미나>를 할 때 묘한 기분이었습니다. 우리가 2층 세미나실에서 강연하는 동안 1층 행사장에서는 하우징 업체들이 영업하고 있는데, 우리와는 꽤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에서요. 그런 감정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부스들을 돌아다녀 보면 꽤 수준이 올라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팀원들에게 저만큼 설계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기도 해요. 쉽게 답을 내기 어려워하더군요. 그런 양가적인 감정이 들었습니다.
박준호 : 건축의 상품화라는 주제로 토론을 여러 번 했던 적이 있어요. 많은 사람과 얘기를 했는데 결국은 상품이라는 의견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게 남의 땅에, 남의 돈으로, 남이 살아갈, 남의 집을 짓는 것이니까요. 우리는 객관적으로 타자가 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을 자꾸 ‘내’ 작품이라고 우기는 그 자체가 자기 과몰입 아니냐는 것입니다. 한편 저도 ‘집장사 집’이라고 하는 것을 나쁘다고 보지는 않거든요. 실제로 미국에서 지낼 때는 건축가 이름도 모르는 집장사 집에 살았고, 만족스럽게 살았습니다. 건축을 연구하는 저도 이럴 진데, 일반인들은 다르겠습니까. 건축가를 만족시킬 수 있는, 건축가의 작품성을 감수할 수 있는 건축주는 5%를 넘어갈 수 없다고 합니다. 나머지 95%에게 왜 건축가의 진의를 몰라주냐고 탓하는 것은 다소 무리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류인근 : 저는 우리가 설계한 집이 부동산 상품보다는, 삶을 품고 영화나 문학처럼 남겨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집은 운이 좋으면 100년은 갈지도 모르지만 결국 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남을 것입니다. 이야기를 만들어간다는 측면에서 우리는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설계로 만들어낼 것입니다. 자기 본연의 가치를 따지거나 개성이 강한 건축주들은 건축가를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건축가를 찾는’ 시장이 따로 있고요. 저희라고 건축주 100%를 다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저희들이 해왔던 방식대로 충분히 노력하고 애쓰다보면 그것에 대한 가치를 존중해주는 분들이 건축가를 찾아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조한준 : 서울 강남 같은 조금은 특수한 지역이 아니면 의외로 아파트에 사는 많은 분이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어서 그렇지 주택에 살고 싶어들 합니다. 또 많은 비용이 들고 삶의 거처가 바뀌는 일이기에 주저하는 분들도 많고요. 그런데 건축가 시선에서 바라보면 오히려 빨리 건축해야 한다고 봅니다. 시간이 흐르고 사람은 나이를 먹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할 것이면, 예산 문제가 아닌 한 빨리 집을 짓는 것을 권합니다. 그리고 한정된 예산을 가장 현명하게 소비하는 방법은 역시 좋은 건축가를 만나는 것입니다.
가끔은 건축주끼리 ‘누가 돈을 더 쓰고 덜 썼네’하고 비교하는 경우도 있지만, 적게 썼다고 잘 쓴 것이 아니고, 많이 썼다고 낭비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는 것이거든요. 주택의 성능이나 디자인, 편의성 등 여러 가지를 따져야 하는 문제고, 그 시작은 역시 건축가라고 생각합니다.
기획 신기영 | 사진 변종석
ⓒ 월간 전원속의 내집 2025년 1월호 / Vol.311 www.uuj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