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봉기 칼럼] 이재명 재판중지법 논란, 헌법 제84조의 오해와 진실

최미화 기자 2025. 10. 30. 09:3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신봉기 경북대 로스쿨 교수
신봉기 경북대 로스쿨 교수

법은 언제나 권력을 제어하기 위해 존재한다. 권력이 법 위에 서는 순간 헌법은 침묵하고 정의는 흔들린다. 최근의 논쟁은 단순히 대통령 개인의 재판 문제가 아니라, 헌법이 여전히 권력의 주인으로 남을 수 있는가를 가늠하게 하는 시험대다.

정치권에서는 요즘 대통령 재임 중 형사재판을 중단시키자는 이른바 '재판중지법'이 논의되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는 이재명 대통령의 재판이 있다. 일부에서는 국정의 안정과 직무수행 보장을 이유로 재판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헌법 제84조의 본래 의미를 심각하게 왜곡한 것이다. 헌법은 대통령의 직무를 보호하되, 그 보호를 이유로 사법절차를 정지시키라고 명하지 않는다. 헌법의 문장은 정치적 이해관계의 논리를 따라 수정될 수 없는, 권력 위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이 조항의 핵심은 '소추(訴追)'다. 소추란 검찰이 공소를 제기하는 행위, 즉 기소를 의미한다. 결국 헌법이 금지한 것은 재판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의 수사나 기소로 대통령의 직무가 마비되는 사태다. 이미 기소되어 재판이 진행 중인 경우에는 헌법 제84조의 보호가 미치지 않는다. '소추금지'와 '재판정지'를 동일시하는 것은 헌법의 구조를 거꾸로 읽는 것이다.

이 구분은 단순한 언어의 차이가 아니라 권력분립의 본질이다. 입법부나 행정부가 사법절차에 개입하는 순간, 헌법이 보장하는 견제와 균형은 깨진다. 사법권은 헌법 제103조에 따라 법관의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행사되어야 하는 영역이다. 그런데 특정 인물의 재판을 법률로 정지시키겠다는 것은 사법권의 독립을 훼손하고, 헌법의 존엄을 훼손하는 일이다. 대통령의 정치적 안정을 위해 법의 심판이 멈춘다면 그것은 헌법이 가장 두려워한 사태다.

우리 헌법의 역사 속에서도 '소추'와 '재판'은 명확히 구분되어 왔다. 1960년 제2공화국 헌법 제13조는 "정부가 대통령의 승인을 얻어 소추하고, 헌법재판소가 판결로써 해산을 명한다"고 규정했다. 1963년 제3공화국 헌법 제57조와 1980년 제5공화국 헌법 제97조는 "국회는 국정을 감사하되, 재판과 진행 중인 소추에 간섭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이러한 규정은 헌법이 '소추(수사·기소)'와 '재판(심판)'을 일관되게 분리해 왔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소추를 재판까지 확장하는 해석은 헌법 조문을 자의적으로 재작성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헌법 제84조의 본래 취지는 대통령의 직무집행을 보호하기 위한 일시적 유예장치다. 재임 중 새로운 수사나 기소는 중단되지만, 공소시효는 정지되고 임기 후에는 재판이 재개된다. 이는 책임의 면제가 아니라 책임의 연기다. 이미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을 대통령이 되었다는 이유로 멈춘다면 그것은 헌법이 허용하지 않는 '면책의 특권'을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순간 대통령은 헌법이 부여하지 않은 초헌법적 존재가 되고, 사법정의는 중단된다.

더 나아가 재판중지법은 헌법상 평등원칙과 재판청구권을 침해한다. 피해자는 권리구제를 위한 재판을 받을 수 없게 되고, 대통령만이 법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예외적 존재가 된다. 헌법 제11조의 평등원칙과 제27조의 재판청구권은 이 지점에서 동시에 무너진다. 헌법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국민 위에 권력이 서는 순간"이다. 헌법은 권력을 보호하기 위한 문서가 아니라, 권력을 통제하고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약속이다.

따라서 이 논쟁의 본질은 법률 개정의 형식을 띤 정치의 문제이자, 헌법의 근간을 흔드는 권력의 문제다. 헌법 제84조를 근거로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대통령의 재판을 중단시키려는 시도는 헌법의 문장을 왜곡하고 헌법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다. 사법권의 독립을 흔드는 정치적 논리가 법률의 외피를 쓰는 순간, 국가는 법의 통치에서 권력의 통치로 전락한다. 그것은 헌법의 명문을 넘어서는 위헌입법이며 헌정주의의 자멸이다.

헌법은 권력의 방패가 될 수 없다. 대통령이라도 법의 심판에서 예외일 수 없다. 헌법 제84조가 보장하는 것은 재판의 정지가 아니라 직무의 연속성을 위한 임시적 유예이며, 그것이 헌법적 균형의 본질이다. 그러나 지금 시도되는 재판중지법은 헌법을 방패로 삼아 법치를 멈추게 하려는 정치의 언어다. 권력은 헌법 위에 설 수 없으며, 헌법은 결코 권력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헌법이 멈추면 법의 정의가 멈추고, 정의가 멈추면 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 헌법 제84조를 넘어서는 순간, 법치국가의 마지막 금선(禁線)이 무너진다. 헌법의 이름으로 법을 멈추게 하려는 시도야말로 헌법을 가장 심각하게 모독하는 일이다.

신봉기 경북대 로스쿨 교수

Copyright © 대구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