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의 열기가 2.5g의 작은 탁구공 속으로 집약되고 있다. 2026 WTT 싱가포르 스매시 무대에서 전해진 김나영-유한나 조의 8강 진출 소식은 한국 탁구가 그저 ‘참가’에 의의를 두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확실한 ‘지배자’의 위치를 노리고 있음을 증명했다. 칠레의 베가-오르테가 조를 상대로 거둔 게임스코어 3-0 완승은 단순한 승리 이상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던졌다.

사실 스포츠에서 ‘완승’이라는 단어는 흔하게 쓰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 숨어 있다. 1세트에서 보여준 11-3이라는 압도적인 스코어는 상대의 전략이 채 세워지기도 전에 기세를 꺾어버리는 이른바 ‘초전박살’의 정석이었다. 김나영의 날카로운 공격과 유한나의 빈틈없는 보조는 칠레 선수들에게 탁구대가 너무나 좁게 느껴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진짜 주목해야 할 지점은 3세트의 12-10 듀스 접전이다. 앞선 두 세트를 쉽게 가져온 뒤 자칫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 있는 순간, 상대의 거센 추격을 뿌리치고 경기를 끝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는 김나영과 유한나가 단순한 ‘기술자’를 넘어, 승부처를 읽을 줄 아는 ‘전략가’로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김나영-유한나 조가 현재 세계 랭킹 2위라는 사실은 더 이상 탁구계에서 놀라운 뉴스도 아니다. 이달 중순 첸나이 스타 컨텐더에서 보여준 준우승의 기세는 우연이 아니었으며, 그들이 흘린 땀방울이 싱가포르의 푸른 테이블 위에서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랭킹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를 압도하는 실력을 갖췄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모든 선수의 ‘타깃’이 되었다는 위험한 의미도 내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포스코인터내셔널 소속인 두 선수의 호흡은 이제 눈빛만 봐도 공의 궤적을 읽어낼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복식 경기는 각자의 실력보다 ‘둘이 합쳐 하나’가 되는 시너지가 중요한데, 이들은 현재 그 시너지의 정점에 서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첸나이에서의 아쉬운 준우승은 이들에게 독기를 심어준 촉매제가 된 듯하다. 우승컵을 눈앞에서 놓쳤던 그 기억이, 이번 싱가포르 스매시라는 더 큰 무대에서 8강행 티켓을 거머쥐는 강력한 동기부여로 작용하고 있다. 상처받은 사자가 더 무섭듯, 정상을 향한 갈증이 이들의 라켓을 더 가차 없이 휘두르게 만들고 있다.

이제 8강이다. 상대는 이름만 들어도 숨이 막히는 탁구 최강국 중국의 콰이만-천이 조다. 사실상 이번 대회의 결승전이라 불러도 무방할 만큼 비중 있는 매치업이다. 중국 선수들은 전 세계 모든 탁구 선수들에게 넘어야 할 거대한 성벽이자, 동시에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척도다.
콰이만-천이 조는 세계 최정상급의 기량을 보유한 복식 조합이다. 하지만 김나영-유한나에게 이번 8강전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들이 진정한 ‘세계 2위’의 자격이 있는지를 전 세계에 공표할 절호의 기회다. 중국을 넘지 못하면 반쪽짜리 정상이라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 이들은 정면 돌파를 선택해야만 한다.
이 경기는 단순한 8강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만약 김나영-유한나가 중국 조를 꺾고 4강에 진출한다면, 이는 2026년 한국 탁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대사건이 될 것이다. 중국의 압박 수비를 어떻게 뚫어내느냐, 그리고 랠리 싸움에서 얼마나 인내심을 발휘하느냐가 승부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많은 팬이 신유빈의 활약에 열광할 때, 김나영과 유한나는 묵묵히 자신들의 시대를 준비해 왔다. 이들은 이제 누군가의 대안이 아니라, 당당히 한국 여자 탁구의 메인 스트림으로 자리 잡았다. 8강 진출은 그 과정의 일부일 뿐이며, 이들의 목표는 더 높은 곳을 향해 있다.

스포츠는 결과를 통해 말한다. 기사 한 줄에 실린 ‘3-0 완승’이라는 네 글자 뒤에는 수만 번의 스윙과 무수히 쏟아낸 땀방울이 녹아 있다. 김나영-유한나의 8강행은 그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훈장이며, 동시에 앞으로 펼쳐질 더 큰 전쟁을 앞둔 마지막 점검이기도 하다.
싱가포르 스매시의 우승컵은 아직 멀리 있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자신감만큼은 이미 정상을 향해 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 선 김나영과 유한나. 그들의 라켓이 만리장성을 허물고 새로운 역사를 쓰는 순간을 우리는 기대하고 있다. 멈추지 않는 그들의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Copyright © 구독과 좋아요는 콘텐츠 제작에 큰 힘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