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러운 빛 속에서 나는 최상으로 온전할 수 있다_내가 베낀 명화에 관하여_오랑
실내에는 부드러운 소파와 목욕을 위한 커다란 양동이가 놓여있다. 옷을 벗은 여자는 긴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살에 몸을 펼치고 있다.
여자는 가벼운 자폐와 신경 쇠약, 그리고 폐렴을 앓고 있었다. 강박적으로 하루에도 여러 번 목욕을 즐겼다. 여자에게 목욕은 자신을 보살피는 하나의 신성한 제의였는지 모른다. 여자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으로 스스로를 정화시키는 것이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물과 햇빛, 이것이 여자에게 전부였는지 모른다. 마치 식물인 처럼.
가냘픈 체격에 아름다운 머릿결, 연보랏빛 눈동자를 가진 여자는 피에르 보나르 Pierre Bonnard(1867.10.3. - 1947.1.23.)의 뮤즈이자 아내인 마르트 드 멜리니Marthe de Meligny(1869.2.22 - 1942.1.26.)다.
피에르 보나르가 마르트를 만난 건 1893년이었다. 스물넷인 마르트는 자신을 열여섯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20년간 동거하다 1925년 합법적으로 부부가 된다. 그때야 보나르는 그녀의 본명이 마리아 부르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나르가 마르트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저 작품을 위한 대상으로만 여겼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의 오랜 행위에 나는 주목한다. 한 여자는 일생의 과업이 목욕인 것처럼 매일 매일 실내에서 옷을 벗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볕에 일렁이며 반짝이는 양동이의 물빛에 황홀했고 또 한 남자는 그런 여자를 그리고 또 그렸다.
내가 처음 만난 보나르의 그림은 <점심식사>다.
실내에서 차를 마시는 여자의 형상이 어쩌진 불길한 느낌을 자아낸다. 움츠러든 어깨와 어두운 눈의 여자. 여자의 눈에 불안과 슬픔이 묻어났다. 눈은 내면을 밖으로 드러내 보이는 창문과 다름없다. 반면, 테이블 위에 놓인 화병의 꽃은 음산하고 칙칙한 분위기의 여자와 확연한 대조를 이루며 화사하게 빛난다. 처음 이 그림을 마주했을 때 극명한 차이를 주는 사물과 인물이 내게 뭔가 말을 걸고 있는 것만 같았다.
넌 나야!
언젠가 나의 세계는 얼룩과 냄새로 가득했다. 씻어낼 수 없는 오물의 얼룩과 수학여행을 위해 새로 산 야상 점퍼에 남은 아무리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는 하수구 냄새로 가득한 세계.
여자의 어두운 얼굴은 어쩐지 병적이고, 웃는 것도 같은 그 얼굴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다정함을 보았다. 결코 다정하지 않은 세상에서 그늘진 얼굴이 주는 다정함을 나는 느꼈다. 슬플 땐 슬픈 음악이 위안을 주듯이.
보나르는 앵티미스트(Intimist : 사적이고 일상적인 사건이나 사물을 개인의 정감을 강조하여 그리는 화가)라는 수식이 붙어있다. 그는 다이닝 룸이나 정원이 보이는 실내를 주로 작품 소재로 삼았다. 그러나 보나르는 마르트 살아생전 그녀의 침실은 단 한 번도 그리지 않았다. 1942년 1월, 마르트는 세상을 떠났지만 보나르는 여전히 젊은 마르트를 그렸다. 마르트의 이미지가 담긴 보나르의 작품은 무려 384점에 이른다. 그 수많은 작품에 등장하는 마르트의 얼굴은 또렷하지 않다. 보나르는 마르트의 얼굴을 뭉개진 빛처럼 몽환적으로 처리했다. 그럼에도 살아있는 색채와 다름없는 마르트. 보나르에게 마르트는 어두운 실내에 은밀하게 들이치는 환상적인 빛이었다. 그에게 목욕하는 마르트와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은 하나의 사건인 것이다. 끊임없이 그를 따라 붙는 사건.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응시하며 보나르는 끓어오르는 감정을 형태로 만들고 색채를 더했을 것이다. 마르트가 죽자, 그녀의 침실 문은 잠겼다. 그리고 다시는 열리지 않았다. 연약했던 마르트라는 빛이 완전히 사그라들고 5년 뒤 보나르마저 빛을 저버린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빛을 내고
마지막 죽음의 시간에 가장 빛난다.
1947년 보나르가 죽기 일주일 전에 완성한 그의 유작 <편도나무>가 이 말을 증명하는 것만 같다. 온통 빛을 품은 나무, 빛나는 나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보나르의 그림을 좋아한 사람은 많았다. 작가 레이먼드 카버는 보나르의 나부(裸婦)라는 시를 썼고, 제임스 셜터의 소설 <가벼운 나날> 영문판 표지에 <정원을 향한 식당>이 사용되었다.
“색채는 나를 사로잡았다”
보나르에게 마르트는 빛이 만들어낸 색채였으며 가장 아름다운 빛이었다.
내 안으로 들어온 명화를 보고 느끼고 베껴 그리며 생각한 것들, 시와 짧은 단상들.
글. 오랑
추웠던 어느 저녁, 누군가 내민 재킷의 온기를 기억하며 따스한 일들에 대해 생각한다. 내 안의 온도를 높이려고 읽고 쓰고, 그림을 그리는지도 모르겠다.
해당 글은 뉴스레터<세상의 모든 문화>에 연재되고 있는 글입니다. <세상의 모든 문화>는 총 20여 명의 작가들이 매일(주중)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뉴스레터로,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가는 무료 레터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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