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헛스윙 후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모습으로 야구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던 박석민. 배트를 놓쳐 관중석으로 날려버리고, 수비 중 넘어지면서도 웃음을 유발했던 이 남자는 단순한 개그맨이 아니었다. 통산 출루율 4할에 달하는 정상급 거포였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태어난 박석민은 형과 함께 야구를 시작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정교한 타격과 장타력을 겸비한 선수로 주목받았고, 대구고등학교는 그를 영입하며 야구부 재창단을 선언했다. 2003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창단 첫 우승을 이끌었고, 같은 해 아시아 청소년 야구 대표팀에서도 7년 만의 우승을 합작했다.
삼성이 10년을 기다린 유망주의 시련

200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 1라운드 지명을 받은 박석민. 프런트는 주전 3루수 김한수의 대체자로 그를 낙점했고, 박흥식 타격코치는 "3~4년 후 팀의 기둥이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데뷔 2년 차인 2005년을 앞두고 고교 시절부터 앓던 무릎 부상이 심화됐다. 연골 파열로 수술대에 올랐고, 복귀 후에도 1군 52경기에서 단 한 개의 홈런도 치지 못하는 부진이 이어졌다. 결국 2005년 시즌 종료 후 상무 야구단에 입대하며 재기를 다짐했다.
'아기 사자'의 화려한 귀환

2008년 상무에서 돌아온 박석민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당시 삼성은 주축 선수들의 이탈과 부진으로 타선에 큰 공백이 생긴 상황이었고, 채태인, 최형우와 함께 '아기 사자'로 불리며 삼성 타선에 합류했다.
복귀 첫 해 126경기에 출전해 타율 0.279, 2루타 27개(리그 2위), 홈런 14개, 타점 64개, OPS 0.835를 기록하며 차세대 거포로 발돋움했다. 선동열 감독은 "박석민 등 신인들의 가세가 최고의 수확"이라고 칭찬했고, 2009년에는 처음으로 홈런 20개를 넘기며 OPS 1.0을 돌파했다.
웃음과 홈런을 동시에 선사한 독특한 캐릭터

박석민의 진가는 기량이 만개하면서 드러났다. 문제는 야구 실력만 좋은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호쾌한 스윙 후 헛스윙하면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고, 배트를 놓쳐 관중석으로 날리기도 했다. 수비와 주루 과정에서도 예측 불가능한 몸개그를 선보이며 관중과 선수들을 폭소하게 만들었다.
'야구장의 싸이', '괴짜 야구 선수'라는 별명이 붙었고, 일부 언론은 "거포 본능보다 개그 본능에 집중한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팬들은 그의 행동을 야구장의 또 다른 볼거리로 여기며 환호했다. 중요한 건 웃기면서도 결과를 냈다는 점이었다.
삼성 왕조의 핵심 타자로 우뚝

2011년 류중일 감독 부임, 2012년 이승엽 복귀로 삼성 전력이 막강해졌다. 박석민은 3, 4, 5번 타선을 오가며 어떤 역할이든 충실히 수행했다. 류중일 감독은 "박석민이 있기에 공격 야구를 내세울 수 있다. 그의 컨디션이 클린업 트리오의 무게감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삼성 왕조의 핵심 타자로서 정규시즌 5년 연속 우승, 한국시리즈 4년 연속 우승에 기여했다. 2014년과 2015년에는 OPS 1.0에 육박하며 2년 연속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2015년 9월 20일 롯데전에서는 만루홈런 포함 9타점을 쓸어 담으며 KBO 리그 한 경기 최다 타점 기록을 세웠다.
NC 다이노스에서의 새로운 도전

2015년 시즌 후 FA 자격을 얻은 박석민은 삼성과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시장에 나왔다. NC 다이노스가 손을 내밀었고, 역대 야수 최고액인 4년 96억원에 계약했다. 계약 발표와 함께 연간 2억원씩 총 8억원을 기부하겠다고 밝혀 따뜻함을 나누기도 했다.
나성범, 에릭 테임즈, 박석민이 완성한 '나테이박' 타선은 공포 그 자체였다. 박석민은 126경기에서 타율 0.300, 30홈런, 100타점을 달성하며 몸값을 입증했고, 플레이오프에서 결정적인 홈런 두 방으로 팀의 첫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끌었다.
부진과 재기, 그리고 감동의 우승

2017년부터 박석민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잦은 부상이 발목을 잡았고, 손가락, 팔꿈치, 담 증세 등 잔부상이 이어졌다. 타격 메커니즘에서는 발사각 문제가 지적됐고, 부진 기간 동안 발사각 10도 이하 타구가 55%에 달했다.
4년 계약 중 3년을 부진했기에 비난이 쏟아졌지만, 2020년 1월 2+1년 총액 34억원의 연장 계약 소식이 들려왔다. 36세의 박석민은 에이징 커브를 극복하고 2020년 시즌에서 부활했다. 123경기를 뛰며 3할이 넘는 타율과 리그 1위 출루율 0.436을 기록하며 NC의 정규시즌 1위에 기여했다.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을 꺾고 창단 첫 우승에 성공했을 때, 박석민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부진의 위기를 극복하고 맞이한 우승이었기에 더욱 큰 감동이었다.
20년 여정의 마침표

2021년 코로나 방역 수칙 위반 사건에 연루되며 커리어에 오점을 남겼고, 이후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조용히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맞이했다. 2024년 5월 11일, 그가 몸담았던 두 팀 삼성과 NC의 경기에서 은퇴식이 치러졌다.
"좋은 야구 선수 이전에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던 박석민. 그라운드의 개그맨이자 삼성 왕조의 핵심이었던 그의 이름이 오래 기억될 것이다. 현재는 코치로서 제2의 야구 인생을 시작한 박석민의 앞날을 응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