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제국' 인텔의 몰락… 어쩌다 '인수 대상'으로 전락했나
스마트폰·AI 열풍 등 시대 변화 뒤처진 탓
1990년대 후반 개인용 컴퓨터(PC)·서버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을 장악하며 '반도체 제왕'으로 군림했던 미국 기업 인텔이 결국 다른 기업의 '인수 대상'으로 전락했다. PC 시장 포화 이후 모바일 시대와 인공지능(AI) 시대가 잇따라 열렸음에도 이러한 변화 흐름에서 뒤처진 탓이다. 인수 성사 가능성은 미지수지만, 인텔의 창사 이래 최대 위기라는 평가가 나온다.
계속되는 부진한 실적… 합병심사 엄격할 듯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일(현지시간) 복수의 익명 소식통을 인용해 미 반도체 업체 퀄컴이 최근 며칠간 인텔 인수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인텔이 최악의 실적 부진으로 전체 인력의 15% 감원 등 고강도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가운데, 피인수설까지 나온 셈이다. 모바일용 반도체가 주력인 퀄컴은 인텔 인수를 통해 PC용 CPU 사업 확장을 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구체적인 인수 조건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인텔이 퀄컴 품에 안기는 것을 긍정적으로 본다 해도 현실화할지는 미지수다. 경쟁 당국의 반(反)독점 심사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아서다. 앞서 브로드컴은 2017년 퀄컴 인수에 나섰다가 미 당국에 의해 좌절됐고, 2021년에는 엔비디아가 영국 반도체 설계기업 암(Arm) 인수를 추진했으나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에 의해 제소를 당한 적도 있다.
일단 현재 인텔 기업 가치가 900억 달러(약 120조 원)가량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성사 시엔 역대 최대 규모의 기술업계 인수합병(M&A) 사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WSJ에 따르면 2022년 마이크로소프트(MS)가 유명 게임사 액티비전 블리자드를 687억 달러(약 83조 원)에 인수한 규모를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양사 간 거래에 대한 엄격한 심사가 불가피한 이유다.
그럼에도 '퀄컴의 인텔 인수설'은 인텔이 56년 역사상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 줬다는 진단이 지배적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거의 반세기 동안 '반도체 제국'이었던 인텔의 전성기는 끝났다. 이제는 부진한 실적이 반복되며 올 2분기에는 16억 달러 대규모 적자까지 냈다. 이후 △전체 인력의 15% 감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부 분사 △유럽 등에서 추진 중인 공장 건설 보류 등의 구조조정 방안을 제시하며 위기 탈출에 나섰지만 이마저도 충분하지 못했다는 방증인 셈이다.
모바일 중심·AI 열풍 등 시대 흐름 파악 못해
전문가들은 인텔 몰락의 원인으로 시대적 변화를 파악하지 못한 '전략적 실수'를 꼽는다. 인텔이 과거 영광에 안주, 2000년대 중반 이후 스마트폰 등 모바일 중심 체제에 적응하는 데 실패했다는 얘기다. CPU 시장에서조차 올해 경쟁사인 AMD에 매출액을 추월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AI 열풍의 흐름도 간파하지 못했다. 2017년 투자금을 회수할 수 없다는 판단하에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의 지분 확보 기회를 걷어찬 게 대표적이다. CFRA리서치의 안젤로 지노 분석가는 "지난 2, 3년 동안 AI로의 전환은 인텔에 큰 타격을 줬다"며 "인텔은 적절한 역량을 갖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인텔은 총체적 난국 해소를 위해 2021년 기술 전문가인 팻 겔싱어에게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맡겼다. 겔싱어 CEO는 반도체·과학법(칩스법)을 통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로부터 85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을 약속받기도 했다. 칩스법상 최다 보조금을 받는 기업이지만, 이미 벌어진 격차를 따라잡기에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인텔의 미래는 내년 양산을 시작할 차세대 파운드리 1.8나노(1㎚=10억 분의 1m) 공정에 달렸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스테이시 라스곤 번스타인리서치 분석가는 WSJ에 "내년에 생산될 차세대 칩 제조 기술의 성공으로 기술 리더십을 회복하면 수익성을 개선하고 고객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손성원 기자 sohnsw@hankookilbo.com
위용성 기자 u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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