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폐기물 치아 1만개 냉동보관하는 은행

이 영상을 보라. 알코올이 담긴 조그만 통에 뭔지 모를 선홍빛 물체가 보관돼있는데, 이리 보면 닭발 같고 저리 보면 내장 같은 이건 사실… 사람의 치아를 보관해놓은 거다.

치과에서 뽑은 이런 치아들을 버리지 않고 담아 보내면 보관해주는 은행이 있다고 한다. 유튜브 댓글로 “치과에서 발치한 치아는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봐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하다 알게 된 한국치아은행이라는 곳인데, 이곳에서는 무려 1만 여개의 치아를 냉동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치과에서 뽑는 치아는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의료폐기물로 분류된다. 치아에 묻어있는 피나 고름 같은 분비물을 통해 2차 감염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한 건데, 보통은 거즈나 소독솜 같은 다른 의료폐기물하고 함께 폐기물 전문 처리업체에 맡겨 소각을 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작년 한 해에만 발치해 버려진 치아는 무려 1160만 여개나 된다.

그런데 폐기물로 지정돼있는 치아를 그냥 버리지 않고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딱 하나 있다. 바로 한국치아은행에 치아를 보내 냉동 보관했다가 나중에 임플란트 뼈 이식재로 사용하는 거다.

쉽게 설명하자면 임플란트를 심을 때 잇몸 뼈가 망가졌거나 비어 있으면 뼈 이식으로 잇몸을 탄탄하게 채운 다음 임플란트를 하는데, 여기에 발치한 치아로 만든 이식재를 넣는다는 거다. 다만 치아로 만든 뼈 이식재는 본인과 직계가족이 임플란트를 할 때만 사용할 수 있게 제한돼있다. 이를 뽑아 남에게 돈 받고 파는 걸 방지하는 차원에서다.

치아를 보관하는 절차는 간단하다. 먼저 치과에서 뽑은 치아를 알코올에 담아 한국치아은행 연구소에 보내면, 의료진이 특수처리를 한 후 영하 20도의 냉동고에 보관한다. 저장된 치아는 나중에 임플란트에 필요할 때 분말 혹은 블록 형태의 이식재로 가공해 되돌려주는데 성인 치아의 경우 보관료는 한 달에 2996원, 유튜브나 넷플릭스 구독료보다 싸다.

한국치아은행에는 치아 1만 여개가 보관돼 있는데, 의외로(!) 20대에서 40대가 많이 의뢰한다고 한다. 오히려 노인분들은 발치한 치아를 바로 이식재로 만들어 임플란트하기 때문에 보관할 필요가 없다. 

이승복 한국치아은행 대표
“보관하는 케이스들은 지금 당장은 사용할 계획이 없지만 미래를 위해서 내가 내 치아를 보관해 두겠다, 우리 가족을 위해서 보관해 두겠다라는 의미로”

참고로 제일 오래 보관 중인 치아는 무려 10년이 넘었다는데 거의 미라 수준 아닐까. 자기 치아를 보관해 임플란트하는 이 방법이 대중화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보관이나 가공 비용이 다른 이식재에 비해 더 비싼 편이기 때문.

이건 취재하다 처음 알게 된 건데 임플란트 뼈 이식재로 가장 많이 쓰이는 재료는 사람이 아닌 소뼈나 돼지뼈라고 한다. 안전하다곤 하지만 소나 돼지 뼈가 내 잇몸에 들어온다니 으…. 이런 이종골 이식재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이 가능해 저렴하고 만드는 데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동물 뼈와 달리 자기 치아로 만든 이식재는 잇몸과 성분이 같아 염증이나 면역반응이 훨씬 적고 뼈를 형성하는 기능도 상대적으로 우수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승복 한국치아은행 대표
“(자신의 치아로 만든) 자가치아골이식재 같은 경우는 뼈로 완전히 치환되기 때문에 훨씬 더 튼튼하고 오래가는 임플란트를 기대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거죠.”

치의학계와 산업계에서는 임플란트 이식재 외에도 발치한 치아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우리 치아에는 ‘골 형성 단백질’ 같은 물질들이 있는데 이게 골다공증 치료나 줄기세포 연구 등에 요긴하게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승복 한국치아은행 대표
“이 줄기세포를 전달하는 전달체 역할로도 사용을 할 수가 있고요. 골 형성 촉진 약물을 빠르게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나 또는 약재로 개발할 수 있는 여지들이 충분히 있습니다.”

21대 국회에도 폐치아 규제를 완화하려는 법안들이 여럿 발의돼있다. 하지만 관건은 역시 윤리성과 안전성 문제다. 국내에서 뽑은 치아로 임플란트하는 건 2018년 안전하고 유효한 의료기술이라는 보건복지부 인증을 받았지만, 이게 치료제나 줄기세포로 넘어가면 완전히 다른 영역이 된다.

치아 물질로 만든 제품을 다른 사람에게 사용해도 면역반응이나 이물감은 없을지, 폐치아에 남아있을 충치균으로 감염이 발생하진 않을지 안전성을 엄격히 따져야 한다. 또 인체 조직의 일부인 치아가 상업적으로 거래되거나 민감한 신체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과 같은 윤리적 문제도 있어 선진국에서는 폐치아 활용법을 신중하게 검토 중이다.

만약 윤리적이고 안전한 폐치아 관리 기준이 마련된다면 멀지 않은 미래에는 누구나 치과에서 뽑은 사랑니를 냉동 보관하거나 기증하는 일이 흔해질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