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앞서고도 진 김가은, 3게임에 무슨 일이...일본오픈 8강에서 탈락...

한국 여자단식이 일본 오픈 8강에서 전원 탈락하며 대회를 마감했다. 세계 14위 김가은은 야마구치 아카네(세계 3위)에게 게임스코어 1-2(21-14 13-21 20-22)로 역전패했다.

3게임 20-19에서 매치포인트를 먼저 잡고도 내리 3점을 헌납한 결과다.

앞서 세계 17위 심유진도 천위페이(중국 4위)에게 0-2로 완패했고, 세계 1위 안세영은 부상으로 아예 8강행조차 걸어보지 못했다.

세 선수의 탈락 양상은 저마다 다르지만, 이 패배를 단순한 통한의 역전패로만 읽으면 정작 중요한 변화 하나를 놓치게 된다.

세계 1위 안세영이 16강을 앞두고 발 부상으로 기권, 귀국하면서 한국 여자단식은 사실상 2진 체제로 대회를 치렀다.

그 결과가 심유진의 완패와 김가은의 역전패였다. 두 선수의 탈락 방식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심유진은 게임 스코어에서부터 밀린 완패였던 반면, 김가은은 매치포인트까지 쥐었던 접전이었다는 점에서 같은 8강 탈락이라도 체감 격차는 다르다.

김가은에게 2026년은 커리어 궤적이 뚜렷이 꺾인 해다. 지난 5월 우버컵 결승 중국전에서 세계 4위 천위페이를 2-0으로 완파해 한국의 3-1 우승을 이끌었고, 지난달 마카오 오픈(슈퍼 300)에서 우승하며 2024년 8월 코리아 오픈 이후 1년 10개월 만에 국제대회 정상에 올랐다.

국내 여자단식 상위권 선수 대부분이 최근 1~2년 사이 우승 공백을 겪은 것과 비교하면, 이 기간 김가은의 상승 곡선은 또래 그룹 안에서 유독 가파른 편이다. 마카오 우승으로 8월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출전권도 이미 확보한 상태였다.

반면 상대 야마구치는 여자단식 최상위권에서도 가장 꾸준한 선수로 꼽힌다. 지난해 8월 세계선수권 3번째 우승에 이어 올해도 태국·호주 오픈 우승과 싱가포르·인도네시아 오픈 준우승을 보태며 참가한 대회 대부분에서 결승에 섰다.

최근 5개 대회 우승 2회·준우승 2회로 결승 진출 실패가 사실상 없는 수준이라는 점이 이번 접전의 비교 기준점이 된다.

이번 대회 초반 흐름도 나쁘지 않았다. 32강에서 카루파테반 렛사나(말레이시아 27위)를 32분 만에 2-0(21-16 21-12)으로 완파했고, 16강 상대 포른파위 초추웡(태국 8위)이 부상 기권하며 체력을 아낀 채 8강에 올랐다.

1게임은 21-14로 비교적 수월하게 따냈다(세트 스코어차 7점, 이번 대회 김가은의 세트당 최다 마진 중 하나).

2게임 중반 8-10 구간에서 몸쪽을 노린 직선타 4연속이 나오며 현지 해설진이 "보디샷, 보디샷, 보디샷.."을 연발했을 정도로 상대를 몰아붙였다.

다만 이후 범실이 겹치며 13-21로 내줘 게임스코어는 1-1 균형을 이뤘다.

3게임에서 김가은은 11-3까지 앞서며 승기를 완전히 가져오는 듯했다(이번 대회 세트 내 최다 점수 차 리드). 야마구치가 3-11에서 4연속 득점으로 추격전을 시작했지만, 김가은은 이후 백핸드 대각 클리어와 하프 스매시를 묶어 15-8, 17-12까지 다시 격차를 벌렸다.

여기서 3연속 실점(15-17)을 내주며 흐름이 완전히 넘어갔다.

18-16에서는 70~80차례에 이르는 초장기 랠리 끝에 김가은이 범실을 내며 18-17이 됐다. 이후 18-18 동점, 19-18 역전, 19-19 재동점을 거쳐 20-19에서 김가은이 매치포인트를 잡았다(11차례 맞대결 통산 첫 매치포인트).

그러나 이어진 언더클리어 실책 세 차례가 각각 20-20, 20-21, 20-22로 이어지며 경기가 끝났다. 마지막 실책은 네트에 걸린 언더클리어였다.

이 마지막 랠리 구간에서는 한국 관중의 응원 함성과 일본 관중의 차분한 성원이 코트 안에서 부딪혔다. 매치포인트 이후 세 번의 실책이 이어지는 동안 관중석 반응은 환호에서 탄식으로 바뀌었다.

이번 패배는 후퇴가 아니라 격차 축소의 증거로 풀이된다. 김가은은 이 경기 전까지 야마구치에게 10전 10패였고, 매치포인트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경기가 대부분이었다.

이번엔 매치포인트를 먼저 잡은 첫 사례이자, 3게임에서 8점 차(11-3)까지 벌린 것도 처음이다. 세계랭킹은 14위와 3위로 11계단 차이가 나지만, 실제 경기력 격차는 스코어보다 좁았다는 뜻이다.

같은 8강에서 탈락한 심유진과 비교하면 이 차이는 더 뚜렷해진다. 심유진은 천위페이에게 게임을 하나도 따내지 못하고 0-2로 물러섰지만, 김가은은 세계 3위를 상대로 세트를 하나 따내고 매치포인트까지 쥐었다.

같은 '8강 탈락'이라는 결과표만 보면 두 선수가 동일선상에 놓이지만, 최상위권과의 격차가 좁혀지는 쪽은 한 명뿐이라는 근거가 여기서 나온다.

통상적인 해석은 "다 잡은 승리를 놓친 통한의 패배"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마지막 3점이 모두 같은 유형의 기술, 즉 언더클리어에서 나온 실책이라는 점은 체력 저하보다 특정 기술의 반복적 흔들림에 가깝다.

다시 말해 이번 결과는 전체 기량 하락이 아니라, 특정 구간에서의 기술적 취약점을 노출한 경기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판단이 맞다면 다음 맞대결에서 확인할 지점은 명확하다. 매치포인트 등 승부처 국면에서 언더클리어 범실률이 이번처럼 반복되는지가 우선 관건이다.

아시안게임까지 남은 시간이 한 달이 채 되지 않는 만큼, 그 사이 열리는 대회에서 유사한 접전 국면이 재현될 경우 이번 패배가 일회성 아쉬움이었는지, 반복되는 약점이었는지가 가려질 전망이다.

언더클리어 세 번이 갈라놓은 승부였다. 승부처에서의 범실률이 다음 대회까지 이어지는지가 이번 결과의 성격을 가를 첫 번째 지표다.

한 달도 남지 않은 8월 아시안게임에서 김가은과 야마구치가 다시 마주친다면, 이번 20-19의 기억은 어느 쪽에 더 무겁게 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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