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GOUT Story] 키움 히어로즈 임창민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프로 데뷔의 꿈을 이룬 팀에서 은퇴까지 할 수 있는 선수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구단의 프랜차이즈 스타라 여겨졌던 선수도 FA로든 트레이드로든 다른 팀으로 이적하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나의 가치를 알아봐 준 팀도, 오래 몸담았던 팀도 좋지만 ‘친정팀’이 주는 의미란 남다를 것이다. 나의 시작을 함께했던 곳임과 동시에 다시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기나긴 여정의 마무리를 함께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터. 1군에서 5이닝을 던지고 떠났던 신인 투수는 베테랑 필승조가 돼 돌아왔고, 그렇게 돌아온 팀에 믿음을 주기 위해, 후배들의 귀감이 되기 위해,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오늘도 구슬땀을 흘린다. 하루하루가 마지막이라는 각오와 함께.
Photographer Mino Hwang Interview Seyeon Kim Editor Junghee Lee Location Gocheok Skydome
#돌고 돌아 다시
2022년 11월 28일, 키움 히어로즈가 23시즌을 위해4명의 선수를 영입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이름은 임창민. NC 다이노스와 두산 베어스를 거쳐 무려 10년 만에 친정팀에 돌아온 그였다. 팬들은 그의 영입이 경기 운영에도, 어린 투수들의 성장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반겼고, 그렇게 많은 이들의 기대와 함께 그의 시즌이 시작됐다.
<더그아웃 매거진>과 단독 인터뷰는 처음이에요! 독자 여러분께 인사 한마디 부탁합니다. (5월 12일 인터뷰)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 최고의 매거진, <더그아웃 매거진>에서 인터뷰하게 돼서 너무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모든 선수가 그렇듯 지금은 사생활 없이 오로지 경기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23시즌을 앞두고 히어로즈로 돌아오게 됐어요. 소식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선택지는 몇 개 있었는데 제가 키움에 꼭 오고 싶다고 말했어요. 첫 번째로, 전에 있었던 팀이기 때문에 팀에 대한 애착이 생길 것 같았어요. 넥센 시절에 성적은 별로 안 좋았지만 그래도 힘든 시절을 같이 보낸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 팀에 오고 싶다고 말했고요. 또 한 가지는 키움이 비교적 불펜 운영을 체계적으로 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제가 여기 오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전에 뛰었던 팀에는 아무래도 애정이 더 생기나 봐요.) 아무래도힘든 시절을 함께한 팀이니까요. 사실 군대에서도 훈련소를 같이 지내면, 되게 유치하고 힘든 시절이지만 그에 대한 낭만 같은 게 있어요. 저도 창단 때부터 있었으니까 그런 게 남아있는 것 아닐까요?
10년 만의 복귀였잖아요. 같이 뛰었던 동료와 선배들이 코치로 남아있는데 잘 반겨줬나요?
잘 반겨줬죠. 후배인데 코치를 하는 사람도 있고, 선배들은 코치가 됐고요. 같이 뛰었던 선수는 포수 (김)재현이 한 명 남아있더라고요. 적응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고, 기존에 있었던 팀이라는 느낌이 남아있었어요.
유일하게 현역으로 뛰고 있는 마지막 히어로즈 창단 멤버예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렇더라고요. 그래도 제일 마지막에 살아남았다는 거에 대한 자부심이 생기네요.
NC 시절 함께 활약했던 원종현 선수와 다시 만나게 됐어요. 무슨 이야기를 나눴나요?
저도 그렇고 종현이도 그렇고, 되게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이에요. 사람들한테 잘 못 다가가고요. 그래서 서로 의지가 됐죠. 제가 먼저 계약하고 종현이 FA 이적이 발표됐는데 종현이한테서 바로 연락이 왔어요. ‘진짜 걱정이 많았는데 형이 있어서 좀 마음이 놓인다’라고. 그래서 ‘나도 마찬가지다’라고 했죠. (둘 다 내향인이라는 거죠?) 저는 완벽한 INTJ입니다. 처음에 막 다가가는 걸 잘 못 해요. (근데 후배들이 먼저 다가오고 할 것 같은데요?) 저는 신인 때 선배들한테 말을 걸면 혼났어요. ‘야, 중간 선배한테 먼저 말한 다음에 건너가’ 이렇게요. 친분을 쌓지 않으면 직접 전달이 힘들었어요. 근데 요즘은 저한테 말 거는 사람이 없으니까 후배들이 말을 걸어 주면 고맙잖아요. 사실 제가 먼저 말을 걸어야 하는데 여긴 확실히 후배들이 먼저 말을 걸어 주는 경우가 많아요.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하고, 야구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하는 게 귀엽고 좋아요.
#익숙하지만 새로운 시작
팀에서 필승조로 활약하고 있어요. 올 시즌의 활약, 어떨 것 같나요?
필승조라고 정하면 안 될 것 같아요. 불펜은 항상 긴장되는 상황에 나가야 하는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다음을 생각하고, 멀리 생각하면 힘들어요. ‘눈앞의 위기만 넘기면 끝이야’라고 생각하고 넘기다 보면 비로소 기록도 연차도 쌓이더라고요.
지금까지 등판한 11경기(인터뷰일 기준) 중에 무려 9번의 무실점 경기를 했어요. 아직 표본은 적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을까요?
첫 등판(4월 2일 고척 한화전) 때 종현이 다음 투수로 나갔어요. 주자가 있는 상황이었는데, 첫 타자를 삼구 삼진으로 잡았어요. 첫 단추를 잘 끼워서 그때 긴장이 풀렸던 것 같아 기억에 남네요.
4월 27일 고척 KT 위즈전에서는 실점 위기를 삼진으로 막았어요. 리드를 지키고 스윕을 가져오는 중요한 순간이었죠.
(박)병호를 삼진으로 잡았는데, 사실 제가 병호한테 안타를 잘 안 맞아요. 그래서 자신감이 있었고, 또 그 당시 병호가 타이밍이 늦는 것 같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어요. ‘유리한 카운트만 잡으면 내가 이길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운 좋게 먼저 카운트를 잡게 됐고, 결정구를 던졌는데 공이 저도 모르게 바깥쪽에 너무 잘 들어갔어요. 물론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하는 상황이긴 했지만 그게 그렇게까지 잘 들어갈 줄은 몰랐는데… 그래서 운 좋게 잡았어요.
5월 2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전, 0의 균형이 계속 이어질 때도 8회 말을 막으러 올라왔어요. 1사 주자 득점권 이후 호세 피렐라-강민호를 연속 내야플라이로 잡았는데 당시 상황이 어땠나요?
재밌는 상황이었어요. 저만 알고 있는 소소한 상황이었는데, (김)동헌이가 리드를 잘했어요. 맞다, 몰랐는데 동헌이가 04년생이더라고요? 동헌이가 04년생인 줄 그날 알았어요. 제가 04학번이거든요. 근데 제가 동헌이 리드를 따라갔어요. (아들일 수도 있을 나이 차네요?) 그렇죠. 제가 일찍 결혼했다면 아들일 수 있을 나이죠. 어쨌든 동헌이가 고졸 신인인데 신인답지 않게 리드를 잘 해줬어요. 솔직히 쉽지 않은 승부였는데 몸쪽으로 유도를 하더라고요. 오히려 과감했던 덕에 상대방이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때 피렐라 선수와 강민호 선수 중간에 구자욱 선수가 고의사구로 나갔잖아요. 저는 데이터상 강민호 선수보다는 구자욱 선수에게 강했어요. 하지만 벤치에서는 구자욱 선수가 그 전 경기에서 타격감이 너무 좋았으니까 고의사구로 내보낸 거예요. 근데 저는 ‘하, 강민호를 어떡하지?’ 이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그때 카메라를 보면 저는 계속 웃고 있었어요. ‘아 진짜 어떡하냐’ 하면서. 근데 이미 내보냈는데 어떡해요. ‘나도 몰라’ 하고 던졌는데 동헌이가 리드를 잘 해줘서 1루수 플라이로 잡을 수 있었어요. 동헌이 덕분이고, 완벽하게 동헌이의 승리였어요.
8회에 흐름이 변하는 득점권 상황이 많이 만들어지곤 해서 야구엔 ‘약속의8회’라는 말까지 있죠. 올 시즌 주로 8회에 등판하곤 하는데, 임창민만의 위기 관리법이 있나요?
불펜 투수들끼리 이야기해 보면, 다들 8회에는 나가기 싫어해요. 그때가 클린업 타순이 제일 많이 걸리잖아요. 그렇지만 가장 힘든 순간에 내보낸다는 건 팀에서 가장 믿고 있다는 거니까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감도 생기고, 상대가 클린업이라고 생각 안 하고 제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던진다고만 생각하고 던져요. 그렇게 좋은 컨디션이 유지되면 좋은 결과도 따라오죠.
1이닝만 막을 때도 있지만 그 이상을 막을 때도 있는데 체력 면에서의 부담은 없나요?
제가 불펜 생활을 오래 해봤잖아요. 이 팀만큼 불펜 투수들을 관리해 주는 데가 없어요. 제가 항상 어린 투수들한테 이야기하는 게 ‘너희들 여기서 불만 가지면 다른 데 가서 야구를 할 수가 없다. 여기만큼 해주는 데가 없다’거든요. 키움은 정말 불펜을 배려해 주는 게 느껴져요. 가령 이렇게 인터뷰가 있으면 당일에 말해주는 것보다 며칠 전에 말해주는 게 인터뷰 준비 차원에서 좋잖아요. 근데 불펜은 갑자기 나가는 상황이 늘 있어요. 맘 놓고 있는데 갑자기 나가라고 하는 경우가 있죠. 이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거든요. 하지만 여기는 그런 상황이 상대적으로 무척 적어요. 그리고 경기 전에도 ‘어느 정도에 네가 나갈 것이다’라는 언질을 항상 줘요. 그럼 그 전에 제가 움직이고, 준비하고, 상대 타선을 보면서 분석하고 생각한 후에 나갈 수가 있어요. 그럼 준비된 상황이니까 조금 편하게 올라갈 수 있죠.
#꿈 같은 지금
히어로즈 하면 어린 선수들이 많은 팀이라는 이미지가 있어요. 가장 잘 다가오는 후배는 누군가요?
스스럼없이 잘 못 다가왔던 선수가 오히려 몇 명 있었어요. 다 잘 다가왔는데, 내성적인 선수들. 예를 들면 사이드암 (김)동혁이? 저랑 나이 차가 워낙 많이 나고 하니까 그냥 인사만 하고 그랬어요. 스프링 캠프 지나고 지금은 편하게 지내긴 하지만요. 그래도 어린 선수들이 다 제게 와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선배님, 야구 오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공은 어떻게 던지고 어떻게 잡습니까?’ 이런 질문도 하고, 사적인 질문도 많이 물어보고요. ‘집이 어디시냐’, ‘출근 시간엔 안 힘드시냐’ 먼저 물어봐요. 제가 먼저 물어봐야 할 이야기를 후배들이 먼저들 물어봐서 편했습니다.
구단 유튜브의 ‘창민이 잠든 후에’라는 콘텐츠가 인상적이었어요. 어떻게 찍게 됐나요?
키움 유튜브 팀이 창의력이 뛰어나요. 전날 PD님이 오시더니 저한테 잠을 자 달라는 거예요. ‘아무것도 안 하셔도 돼요. 그냥 누워 계세요. 주무시면 돼요’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요? 갑자기?’ 했죠. 저는 솔직히 어린 선수들이 제 방에 와서 먹고 하는 콘텐츠일 줄 몰랐어요. 제가 자는 콘셉트의 방송이었는데 애들이 너무 조용히 안 하는 거예요. 너무 떠드는 거야. 봉지 소리를 너무 내고, 물총 소리도 너무 컸고요. 그래서 ‘아, 이걸 내가 일어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완벽한 INTJ라서 이런 변화무쌍한 상황이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대본대로 자는 콘셉트로 끝냈습니다.제가 또 예능 캐릭터는 아니기 때문에요. 저는 다큐 쪽이거든요. 제가 깨면 혹시 콘텐츠를 망칠까 싶어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사실 팬분들 입장에선 진짜 자는 걸까, 자는 척하는 걸까 궁금하거든요.) 사실 그때가 오전 10시였어요. 근데 PD님이 정확히 말을 해주시더라고요. 깨셔도 되고 마음대로 하시라고. 괜찮다고. 모든 게 다 콘셉트기 때문에 다 이해한다고 했지만, 저는 대본대로 하는 게 명쾌해서 그렇게 했죠. 완벽한 J라서요.
콘텐츠를 찍고 나서 후배들(김건희, 김동헌, 송재선)이 뭐라고 하던가요?
그 선수들은 야수잖아요. 투수랑 야수는 잘 안 겹쳐요. 제가 팀에 들어온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그 어린 선수들이 저한테 이래라저래라할 수 없잖아요. 그나마 건희가 투수, 야수를 왔다 갔다 해서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요. 그냥 재밌게 ‘수고하셨습니다, 선배님!’하고 끝났습니다.
과묵한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재밌는 면이 있어요. 이런 점이 반전 매력으로 다가갈 것 같은데 팬들에게는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나요?
제 팬분들은 이제 자식들이 다 생기셨어요. 아들 손 잡고 오는 팬들이 있는 거죠. 그분들이 봤을 때 ‘너도 야구를 할 거면 저 선수같이 해봐라’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선수가 되면 좋겠지만… 제가 야구를 누구보다 잘하진 않잖아요. 누구나 ‘나는 저 선수처럼 되고 싶어’ 하고 꼽을 만한 선수는 아니란 말이죠. 근데 저는 제 삶이나 행동만큼은 ‘저 선수를 닮아야 해’라고 언급될 만한 선수가 되고 싶어요. ‘네 마음가짐이나 행동이 저 선수를 닮아갔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듣는 선수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도중, 출근하던 이원석이 답변 중인 임창민을 한참 지켜봤다. 재미 반, 흐뭇함 반이 묻어나는 표정으로 보던 이원석은 “저희 선배님 잘 챙겨주세요! 저희20년 만에 만났거든요”라는 말과 함께 더그아웃 안으로 사라졌다. 두 선수의 인연이 광주 동성고등학교 때부터라고 하니, 20년의 세월을 건너 한 팀에서 같은 목표를 향해 같이 뛰고 있다는 게 얼마나 새롭고 즐거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참라인(이용규-이원석-이지영 등)은 함께 있을 때 주로 어떤가요?
저는 조용한 편이라 보통 용규나 원석이가 장난치면서 말을 걸어줘요. 그리고 세 선수의 특징을 보면, 용규는 제가 다른 팀에서 봤을 때는 감정 표현도 많고, 자기 마음 가는 대로 하는 느낌의 개성 강한 선수라고 생각했는데 팀에 무척 헌신적이더라고요. 대표팀에서 본 이후에 여기서 처음 봤잖아요. 후배들한테 메시지를 전달해야 할 때도, 싫은 소리를 해야 할 때도 나서서 어떻게든 듣는 사람이 기분 나빠하지 않게 전달하려는 노력이 많이 보여요. 그리고 지영이는 장난도 일부러 많이 치고 선수들이랑 스스럼없이 잘 지내죠. 원석이야 새로 왔으니 저랑 같이 적응하는 거고요. 원석이가 너무 오랜만에 저랑 같이 야구를 하면서 잊고 있었던 고등학교 때 얘기를 하니까 또 새롭네요. 그래서 지금 키움에서의 시간이 저한테는 정말 특별한 시간입니다.
20년 만에 만난 후배와 야구를 하는 재미도 확실히 있겠어요.
사실은 제가 야구를 이종범 코치님 때문에 시작했어요. 그 당시 광주에 있던 선수들 대부분은 이종범 코치님을 보고 야구를 시작했을 거예요. 너무 멋있으니까요. 근데 지금은 그 아들이랑 야구를 하고 있잖아요. 그런 게 엄청 특별한 것 같아요. 정후도 이건 아직 몰라요. (<더그아웃 매거진> 최초 공개예요? 이정후 선수가 이걸 보면 좋겠네요.) 이종범 코치님이 지나가시면 보이잖아요. 근데 제가 아직도 이종범 코치님께 말을 못 해요. 항상 거리감이 있어요. 나이가 들었는데도 아직 그래요. 근데 제가 그 아들이랑 야구를 하고 있다는 게 정말 꿈 같은 순간인 것 같아요. (이정후 선수도 먼저 말을 잘 걸어주나요?) 많이 걸어줘요. 근데 다른 얘기만 하죠. 그 얘기는 아직 못 전하겠어요. 정후야 사실 그랬어. 너랑 뛰는 게 너무 꿈 같아. (수줍) 제가 이렇게 진지하게 감정을 표현하면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할지 가늠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힘들어서 말을 잘 못 하겠네요.
#이 시대의 스윗가이
얼마 전 구단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아내와의 러브스토리가 화제였어요. 같이 신발을 벗고 걸을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나요?
제가 강진에서 생활할 때였어요. 강진에서 서울은 버스로만 다섯 시간 반이 걸려요. 그러면 왕복 열한 시간이니 아내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어요. 그때가 헤어지기 전에 강진에 가려고 고속터미널로 향하는 길이었는데 저도 차가 없다 보니, 가긴 해야 하는데 시간이 애매했어요. 일찍 가면 할 것도 없으니 걸어가자고 했는데 여자들은 구두를 신으면 걷기 힘들잖아요. 아내가 ‘발이 아프다. 도저히 못 걷겠다’ 하면서 신발을 벗더라고요. 혼자 벗으면 좀 그렇잖아요? 그래서 같이 벗고 걸었어요. (흔치 않은 남자네요!) 보통 남자들이 로봇이 아니에요. (웃음) 저만 그런 게 아니라 그런 남자가 꽤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맨발로 걸을 땐 생각보다 바닥이 더러워서 물비누로 씻어도 잘 안 씻겨요. 한2~3일은 발이 더러워질 각오를 하고 걸으셔야 합니다. 그래도 그 순간은 정말 좋아요. 바닥도 시원하고… 여름이었거든요. 우리 둘만 아는 특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요. 하지만 후처리는 힘들다는 걸 생각하고 하시면 좋겠네요!
인스타툰이 첫 만남 썰 연재 중에 중단돼서 재연재를 원하는 반응이 많은데, 아내의 반응은 어떤가요?
팬분들이 항상 물어보시는 질문인데요. 웹툰 작가분들은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에요. 그리고 인스타 계정이 ‘오프 시즌 다이어리(@offseasondiary)’예요. 말 그대로 오프 시즌에 연재해야 하거든요. 제가 수술할 때 시즌 소화를 못 하니까 그때 하나하나 글을 썼던 거라서요. 아내가 운전도 해주고 제 뒷바라지를 해주니까 시간이 비었고 그 시간에 잠시 그렸던 건데 콘텐츠를 제작하는 창작의 고통이 정말 쉽지 않아요. 모든 걸 다 혼자 하기 때문에, 누가 봐도 아마추어 같은 그림체와 내용인 데다가 진입장벽이 높고 쉽지 않다는 거? (다시 연재되는 건 맞나요?) 연재는 하려고 하고 있어요. 갑자기 이슈가 돼서 저희도 당황스러웠어요. 그랬지만 욕심이 생겨서 팔로워 수가 좀 늘어나면 하겠다고 하던데요? 지금 팔로워가 얼마인지 모르겠는데 아내가 성에 차면 하겠죠?
토미 존 수술 후 뼛조각으로 목걸이를 진짜 만들었나요?
제가 수술방 들어가기 전에 아내에게 말한 게 있어요. ‘일본에서는 수술하면 뼛조각을 준대. 그럼 내가 그걸로 목걸이를 만들어 줄게’ 해서 저는 수술방으로 들어가고 아내는 병실에 앉아 있었죠. 수술이 한 4시간 걸렸을 거예요. 일어나서 아파하고 있는데 병원에서 뼛조각을 줬어요. 우리는 뼈가 매끈하고 예쁠 거로 생각하잖아요. 근데 뼈가 계속 갈려서 표면이 털처럼 일어나 있고 피멍이 고여 있어요. 그걸 보더니 아내가 ‘이거 어떡해’ 하면서 막 글썽글썽하는 거예요. 그래서 만들지 못하고 지금 그대로 있어요. (아내분 입장에서는 마음 아팠을 거예요. 하지만 투수들은 그렇죠?) 인대 재건술은 힘들지만, 뼛조각은 사실 필러를 한 느낌이거든요. (일동 웃음) 뼛조각은 누구나 갖고 있어서 큰 문제는 아니에요. 인대 재건술은 정말 큰 수술이 맞지만, 뼛조각은 솔직히 ‘십몇 년 했는데 생길 수도 있지’라는 생각이거든요. 그래도 필러보다 훨씬 큰 수술이기는 한데 너무 흔한 거라서요. 야수들도 많이 하기 때문에 굳이 이게 투수의 전유물인 수술 같지도 않고 그래요.
‘임사장’이라는 대표적인 별명이 있어요, 알고 있나요?
그 별명이 왜 생겼는지도 알고 있어요. 부정적인 뜻으로 시작했지만, 이젠 팬분들이 부정적인 느낌으로 부르시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괜찮은 것 같아요. 경기에 나가서 별명이 만들어진 계기처럼 승계 주자를 놓치지 않는 투수로 계속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팬서비스를 잘해주기로 유명해요. 경기 결과가 안 좋아도, 아파도 꼭 팬서비스를 해주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팬분들이 야구장을 올 때 어떤 마음일까 늘 생각해요. 제가 경험한 것 중에 대입해 보면 놀이공원 갔을 때랑 비슷하겠더라고요. 저는 야구장의 미키 마우스 같은 존재죠. 사실 미키 마우스 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옆에 구피정도는 되긴 할 거 같은데… 옛날에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간 적이 있어요. 범블비를 봤는데 너무 좋아서 사진을 찍고 싶은 거예요. 10년 동안 봤던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범블비 실물이 거기 있었으니까요. 인증을 남기고 싶어서 결국 사진을 찍었어요. 근데 팬분들도 야구장에 오면 오늘 하루의 인증을 남기고 싶으실 거 아니에요. 야구선수의 삶을 특별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선수들에겐 팬에게 특별한 경험을 만들어 줄 기회가 있기 때문이에요. 야구를 하는 건 상대방을 늘 이겨야 하니까 솔직히 조금 힘들어요. 근데 그라운드 밖에서 팬분들이랑 얘기하고 사진 찍고 소소한 얘기를 나누는 그 시간이, 어떤 사람에게는 평생 갈 수 있는 기억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선수로서 그라운드에서 플레이하는 것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밖에 나가서 팬들에게 좋은 기억을 심어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거든요. 야구선수는 그런 좋은 기억을 다른 직종에 비해 팬분들께 비교적 쉽게 전달할 수가 있어요. 그래서 선수들이 팬서비스를 점점 더 잘하게 되죠.
인터뷰 장인으로 유명하잖아요. 평소에 하고 싶은 말들을 생각해 두는 편인가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요. 그 시간에 혼자 생각하고 새로운 세계로 나가보는 편이에요. 다들 그런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더라고요? (이 정도 입담이면 선수들이 유머러스하다고 하겠는데요?) 선수들이 저랑 코드가 잘 안 맞아요. 저는 되게 즐거운데 상대방은 ‘어?’ 이런 느낌이더라고요. 그래서 늘 조심해요. 분위기를 다운시킬 수 있으니까 보통 조용히 하고 있습니다.
NC 시절, 후배들이 모르는 게 없는 선배라고 칭하던데요.
후배들이 상대적으로 너무 몰랐던 건 아닐까요? 우리가 야구를 하니까 스포츠면만 보는데 ‘9시 뉴스만 챙겨봐도 세상 돌아가는 건 대충 알 수가 있다’ 늘 이렇게 얘기를 해요. 근데 사실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저는 야구 외적인 부분에도 관심이 많아서 그에 대한 얘기를 하다 보니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것 같아요. (야구는 어떤 식으로 공부하나요?) 저는 여러 사람의 얘기를 많이 들어요. 아나운서님이나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 전력 분석팀의 이야기 그리고 팬분들의 이야기까지 들으려고 해요. 이런 얘기를 하면 다큐 같은 느낌인데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세이버메트릭스 붐이 일었잖아요. 세이버메트릭스라는 게 야구를 안 하는 사람들이 야구에 통계학적 이론을 접목한 거예요. 야구를 시작한 지 우리나라는 40년이 됐고 다른 나라는 100년이 됐는데 가장 많은 변화가 일어난 게 세이버메트릭스가 나온 후부터예요. 야구인들끼리 모여서 이야기한다고 야구가 발전하는 게 아니거든요.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줄 수 있는 여러 사람의 시선을 가지고 이야기하다 보면 거기에서 힌트를 얻어요.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거죠.
오늘 인터뷰가 이렇게까지 깊어질 줄 예상을 못 하고 왔는데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마지막으로 올 시즌 개인적인 목표가 궁금해요.
저는 개인적인 목표는 없어요. 고참의 입장에서 야구를 하다 보면 팀이 잘 돼야 개인적인 영광도 따라오는 거기 때문에 키움이 올라갈 수 있는 최대한 높이 올라가는 게 제 개인적인 목표입니다. (이제 베테랑이다 보니까 몇 살까지 야구를 할지에 대한 생각도 궁금해요.) 항상 하루하루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어요. 이렇게 생각하지 않고 하면 제가 쉽게 지치고 욕심을 내더라고요. 마음을 비우고, 경기에 나서는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네요.
임창민 선수를 응원하는 히어로즈 팬분들께 한 마디 해주세요.
지금 키움이 조금 고전하고 있는데, 사실 여기에 있는 선수들은 작년도 그렇고 매년 어려운 순간을 극복해 낸 선수들이에요. 제가 이 팀에 왔을 때 그런 부분이 참 매력이라고 느꼈습니다. 언젠가 다시 올라갈 거니까 지금처럼 계속 응원 열심히 해주시고 믿어주시면 그 믿음에 보답하는 시간이 금방 올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3년 146호 (6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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