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문제는 ‘동력’이다

김재태 편집위원 2024. 9. 2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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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29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브리핑이 끝난 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현안 중 하나인 의·정 갈등과 관련한 한 기자의 질문을 받고 이런 답을 내놓았다.

여러 병원을 취재한 후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면 들을수록 현실은 더 절망적"이라고 한 정윤경 기자의 표현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현장의 관계자 여러분께서 정말 헌신적으로 뛰고 계시기 때문에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계속해서 자신감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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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김재태 편집위원)

지난 8월29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브리핑이 끝난 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현안 중 하나인 의·정 갈등과 관련한 한 기자의 질문을 받고 이런 답을 내놓았다. "(기자는) 증원을 완강히 거부하는 분들의 주장을 말하고 있다. 지역 종합병원 이런 데를 좀 가 봐라." 이 장담처럼 한국의 의료 현장은 정말 안심해도 괜찮을 상황이었을까.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 시사저널 취재진은 대통령의 '이런 데를 좀 가 봐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이미 현장을 꼼꼼히 들여다봤다. 그 결과가 지난 1820호 커버스토리에 실린 '위기의 의료 현장, 추석이 두렵다' 기사다. 기자들이 현장에서 목격한 응급의료체계는 심상치 않았다. 여러 병원을 취재한 후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면 들을수록 현실은 더 절망적"이라고 한 정윤경 기자의 표현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9월4일 경기도 의정부시 가톨릭대학교의정부성모병원을 찾아 응급 의료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 같은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현장의 관계자 여러분께서 정말 헌신적으로 뛰고 계시기 때문에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계속해서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응급의료의 현실은 의료진의 그 '헌신'에만 기대고 있어도 좋을 만큼 녹록하지 않았다. 오히려 예후는 더 나빠졌다. 당장 응급 환자의 증가가 예상되는 추석 연휴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고, 현장 곳곳에서 경고음이 잇따라 터져 나왔다. 기저질환을 앓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연휴 기간에 응급 상황이 닥칠까 두려워하는 이도 늘어났다. 불안과 공포는 그렇게 늘 실제 사태 전개보다 빠른 속도로 사람들의 영혼을 잠식하기 마련이다.

이처럼 시시각각 깊어지는 의료 대란 위기 앞에서 많은 사람이 전전긍긍하는 사이, 추석 연휴 전에 성사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키웠던 여·야·의·정 협의체는 헛바퀴만 돌다 무산됐다. 대통령은 그런데도 의료단체들의 협의체 불참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9월13일에 또다시 의료 개혁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나섰다. 한 행사에 참석해 "반개혁 저항에도 물러서지 않고 연금·의료·교육·노동의 4대 개혁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면서 "자유의 가치를 수호하고 개혁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겠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윤 대통령이 연이어 강조한 그 개혁을 떠받쳐줄 국정 지지율은 바로 그날 나온 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취임 후 최저치인 20%로 떨어져 있었다. 부정평가 또한 최고치를 찍으며 70%에 달했는데, 가장 큰 이유로 꼽힌 항목은 역시 '의대 정원 확대'였다.

물론 국가 내부에 낡고, 곪고, 뒤틀린 부분이 있을 때 개혁을 통해 바로잡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만큼 "윤 대통령은 지지율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업적을 남긴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싶어 한다"는 대통령실 참모진의 말대로 대통령으로서 특별한 성과를 내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 업적을 업적답게 이루려면 국정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지지가 필수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지율에 발목 잡힌 지도자가 추진하는 개혁은 설령 성공한다 할지라도 일방통행 혹은 사상누각으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 지도자의 추진력이란 민심의 궤도 위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에만 제대로 효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동력 배가 파도에 휘말려 표류하기 십상이듯 동력이 부족한 채로 서둘러 진행되는 개혁은 민심의 바다 위에서 똑바로 나아가기 힘들다, 이번 추석 연휴에 의료 위기를 두고 나타난 국민들의 불안은 그런 위험을 알려주는 신호일 수 있다. 연휴 기간의 어려움을 의료 관계자들의 노력으로 힘들게 막아냈지만, 그 '헌신'의 지속 가능성이 여·야·의·정의 선택에 달려 있는 상황은 여전히 그대로다. 

김재태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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