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에서 전해오는 가구 디자이너의 최신 트렌드 ①
매년 유럽 밀라노 가구 박람회를 발 빠르게 탐방하는 가구 디자이너가 특파원의 눈으로 전하는 전원주택을 위한 가구 최신 TIP & TREND. 그 첫 번째 시간은 주택에 맞춰 디자인된 가구들과 그 특성을 짚는다.
실력 있는 건축가들이 많아짐에 따라 예술적인, 또는 가치 있는 주택 건축물이 눈을 즐겁게 하고 지성을 채운다. 천편일률적인 아파트를 벗어나 아름답고 지적인 전원주택, 또는 단독주택이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 우리나라의 건축기행도 세계 어디 못지 않을만한 콘텐츠를 담고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건축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건축가 또는 건축주들은 건축물 내장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막상 건축가 또는 건축주들이 주택에 가구를 넣으려 하면 막막한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우리나라 가구 시장은 아파트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고급 현장일수록 가구를 건축의 한 영역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으며, 해외의 유명한 가구 디자이너들은 건축가 출신인 경우가 많다. ‘주택’이라는 작품은 건축가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인테리어 또는 가구의 마감에 이르기까지 설계, 감리에 개입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도화지처럼 새로 맞이하는 ‘주택 가구’라는 세계는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해외 박람회를 매년 가면서 힌트를 얻는 것은 ‘아파트와 주택은 전혀 다르다’라는 것이다. 유럽의 명품이라고 하는 주방가구 브랜드들을 보면 비교적 수평과 수직의 레이아웃에서 자유롭다. 그래서 더 다양하고 확장된 디자인이 나온다. 따라서 건축주가 나의 멋지고 고유한 주택 라이프를 누릴 수 있는 삶을 꿈꿀 때 딛고 올라가야 할 첫 번째 디자인적 한계는 수직이다.
주택 가구를 설계할 때에는 아파트의 층고 2,400㎜를 잊어버려야 한다. 물론 우리나라 입식 주방가구의 보급화는 아파트에서부터 이루어졌으니, 합리적으로 블록화되어 있는 공식에서 벗어나는 게 쉽지는 않다. 또한, 대부분의 규격화된 합판 사이즈는 4×8(자)(1,200×2,400㎜)이기 때문에 브랜드 가구에서도 천장고의 높이를 2,400㎜으로 가정하여 규격화되어 있다.
합리적인 공정과 예산을 위하여 주방이나 가구가 들어가야 하는 공간은 층고를 제한하기도 하지만 최근의 주택 설계의 층고를 보면 높이 2,500~3,000㎜까지 다양해진 것을 볼 수 있다. 개방감 있고 근사한 공간을 얻기 위하여 층고를 올렸으나, 그때부터 건축주들은 채워야 하는 공간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게 된다. 기성 가구 업체에서는 그때부터 비규격 영역이 되기 때문에, 건축주의 직접적인 디자인 개입이 필요해지는 순간이다.
공간 제약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의 주택을 짓기로 마음먹은 이상, 부담감을 가지기보다는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 새롭게 생긴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높이만 달라져도 전혀 차원이 다른 공간이 된다. 해외의 멋진 레퍼런스 사진을 수집하다 보면, 마음에 두었던 자료들 모두 층고가 아주 높고, 그 높이를 가구로 잘 활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높은 층고는 그 자체가 주는 압도적인 미가 있다. 또는 공간과 공간의 구분을 없애기도 한다. 주방과 거실이 마주하고 있는 대면형 주방에서 높은 층고를 공유하고 있다면, 어디까지가 주방이고 어디까지가 다이닝인지, 어디부터가 거실인지 구분을 하는 작업을 의미 없게 만든다. 그 자체가 하나의 확장된 공간으로 공유되기 때문이다.
아래의 사례는 김제 현장이다. 고객과 건축가,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실내외 공간감에 대한 가치관을 공유하며 외부의 광할한 느낌을 실내로 들이는 작업을 하였고, 마찬가지로 가구에서도 기존 주방에 대한 틀을 깨기를 원하였다.
층고가 아주 높았기 때문에 비교적 큰 사이즈의 아일랜드는 밑으로 착 가라앉은 느낌을 주고, 바닥재와 세라믹의 질감 및 톤을 맞추어 통일감을 주었다. 주방처럼 보이지 않고 규모와 무게감이 있는 서재와 같은 느낌으로 연출한 것이 특징이다.
주방과 연결되어있는 거실 공간이 같은 층고를 공유하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주방이고 어디부터가 거실인지는 중요한 주제가 아니다. 높은 층고를 꽉 채우는 브론즈 유리장은 무게감 있는 전체 콘셉트에 절제된 화려함을 더해준다. 아일랜드 조리대는 말 그대로 ‘섬’같은 느낌을 연출하는 것이 포인트인데, 마치 단정한 겨울산에서 오랫동안 묵직하게 자리잡은 바위같은 느낌을 연출한다.
주방의 디자인은 주방에서 끝나지 않는다. 질감과 컬러를 맞춘 맞은편 거실장은 하단에 같은 세라믹으로 알콜 벽난로 자리를 만들어두고, 띄운 책장 및 수납장을 통해 뒤집힌 공간감의 변이를 준다.
두 번째 사례는 파주 현장이다. 마찬가지로 높은 층고를 꽉 채운 현장인데, 메인주방이지만 정원을 바라보는 홈바로 연출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눈여겨 볼 레이아웃은 주방의 위치이다. 현관에서부터 거실을 지나 건물의 맞은편을 관통하는 유리창이 보이는 곳에 주방이 위치한다. 주방에서 마주 보이는 곳은 멋진 조경을 품고 있는 정원이며, 그 아래로는 동네가 내려다보이는 트인 장소이다.
주택 부지를 선정하고자 하는 예비 건축주 중에 풍광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가 아파트에서 벗어나 주택으로 가고자 하는 데에는 넓고 높은 자연을 품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높은 대지의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주택지에 자리를 잡고 난 후,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외부의 공간을 들여올 수 있다는 것은 전원주택에서 누릴 수 있는 축복이다. 따라서 정면의 창호는 통창으로 되어있으며, 층고도 꽤 높게 시공이 되어 있다.
그러나 주방의 특성상 생활감을 드러내야 해 파주 현장의 경우에는 벽면에 포켓 폴딩도어를 이용하여 평소에는 인덕션이 있는 공간을 벽면 월처럼 가릴 수 있도록 디자인하였다. 아일랜드에는 개수대가 있는데, 조리하며 정원을 바라볼 수 있되, 바깥에서는 조리대 공간이 보이지 않도록 높은 바 테이블을 설계하였다. 클라이언트의 키가 크고 손님이 많이 오는 공간인 만큼, 실내 주방의 느낌이 아니라 야외와 연결되어있는 높고 확장된 주방으로 완성이 되었다.
한편, 높은 층고의 느낌을 오히려 살리고, 상부를 띄우는 디자인을 고민해볼 수 있다. 다음 사례는 청라의 단독주택이다. 청라 주택도 천장고가 2,900㎜에 이르렀다. 천장을 모두 채워 장엄하고 규모있는 느낌을 고민하였지만, 결국은 건축주의 미니멀하고 단정하며 유니크한 취향을 고려하여 상부장의 높이를 제한하였다.
보통 가구가 천장까지 가지 않는다면 비어있는 상부 공간을 막을 생각을 하지만, 오히려 높은 층고를 드러내기 위하여 윗 공간에 조명을 넣어 높이를 더욱더 극대화하는 연출을 선택했다. 특히 이 주택은 건물의 구조가 독특하였고, 주방이 건물의 꺾인 면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리을’자 느낌에 가까운 유니크한 공간을 갖게 되었다. 해외 명품가구, 브랜드 가구에서도 현장을 하기 위해 디자이너들이 방문하였지만, 비규격 가구로 유기적인 응대를 하기가 어려워 국내 디자인 키친을 찾은 사례이다.
이와 같이 상부를 띄우고 기형적인 건물 구조의 유니크함을 살리기 위해 선택한 주안점은 단순화한 마감재에 있다. 상판과 도어, 벽면 자재까지 모두 통일할 수 있는 ‘클린터치’ 소재를 이용하여 톤앤매너에서 하나의 메시지만 전달할 수 있도록 선택과 집중을 하였다.
마지막 키친 사례 중 하나는 프렌치 스타일의 클래식한 주방이다. 우노의 본사 쇼룸에 세팅이 되어있는 모델인데, 클래식한 몰딩으로 가구를 두르고 천장면에서 띄워 디자인했다. 천장까지 모두 올려 클래식한 디자인을 고수할 때에는 고풍스럽고 육중한 느낌이 드는 주방을 연출할 수 있고,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도 유니크한 주방을 연출하고 싶을 때는 아래와 같이 띄운 디자인의 가구에 스포트라이트를 더 비춰주는 것도 방법이다.
특히 클래식한 주방의 경우에는 장식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가므로, 모던과 섞여야 하는 현대적인 주택일 때 천장면을 일정 부분 비움으로 다소 미니멀하고 귀여워 보일 수 있도록 연출할 수 있다. 격자 유리 상부장이나 왕관 몰딩이 고루한 느낌보다는 현대적이되 평범하지 않고 정성 들여 작업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물론 높은 천장면을 채울 때는 전통적인 디자인이 가능하다.
전원주택에서의 높은 층고는 주방이나 거실에 구애되지 않는다. 층고를 가장 극대화하며 느낄 수 있는 공간은 의외로 계단이다. 아래의 사례는 광탄도서관 현장인데, 주택에서도 계단 난간이나 4m쯤 되는 거실을 모두 책장으로 채우는 식으로 시도한 사례가 꽤 많다.
기억에 남는 건축주 중에는 오랜 학자 생활을 은퇴하고 아주 많은 책을 가진 교수, 4명의 자녀에게 놀이방 같은 책방을 연출하고자 하는 부모 등 서재에 대한 여러 니즈를 갖고 있는 클라이언트가 많았다. 서재 공간을 극대화하여 연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높은 층고가 효과적이다. 1층부터 4층까지의 계단 난간을 모두 책장으로 활용한 사례도 있고, 벽에 붙은 계단의 참마다 모두 책장으로 연출하는 사례도 있다.
주택에서 누릴 수 있는 나만의 확장된 공간감은 천장 높이에 달려있다. 건축법상 평면 계획에서는 여러 한계가 있으나, 천장의 높이는 제한된 평수보다는 조금 더 자유롭게 건축주의 의지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높은 천장은 오늘 사례로 보았던 주방이나 서재뿐 아니라 모든 공간에서 가구 디자인의 레벨 장치를 하나 풀 수 있는 키가 된다. 같은 드레스룸이라 하더라도 층고가 높다면 멋진 양복점이나 명품관 같은 연출이 가능하다. 침대, 서재, 드레스 공간이 모두 들어가야 하는 자녀 방의 경우에는 층고만 허락한다면 단차를 두어 하나의 방 안에 여러 층위의 가구 연출을 하여 상상력을 한계 없이 만들어낼 수 있다.
높은 공간을 채우고, 비우고, 디자인하고, 완성하는 것은 가구다. 나는 ‘가구가 실내 디자인의 꽃’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가구는 설계에 따라 몇 발짝의 수고로움과 심미적 만족도, 더불어 공간을 향유하는 데 가장 중요한 도구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블록화된 가구의 사이즈에서 벗어나 나의 취향을 드러낼 수 있는 유니크한 가구를 꿈꾸길 바란다.
글과 자료_ 고은애 실장 : 맞춤가구우노
기획_ 신기영
ⓒ월간 전원속의 내집 2025년 1월호 / Vol.311 www.uuj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