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재래시장에서 무는 가장 흔한 채소 취급을 받습니다. 국 끓일 때 들어가는 육수 재료, 김치 담글 때 곁들이는 부재료, 찌개 바닥에 깔아두는 그것. 가격도 제철에는 한 개에 500원에서 1,000원 남짓입니다. 마트 한 귀퉁이에 무더기로 쌓여 있다가 팔리지 않으면 버려지는 신세입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이 무가 '다이콘(大根)'이라는 이름으로 완전히 다른 대접을 받습니다. 오뎅 전문점에서 다이콘은 별도 메뉴로 판매되고, 덴푸라 식당에서는 반드시 간 무를 곁들여 냅니다. 넘베오(Numbeo)의 도시 물가 비교 자료에 따르면 서울의 식료품 물가는 도쿄보다 평균 34% 높지만, 무만큼은 일본이 한국보다 서너 배 이상 비쌉니다.

가격 차이가 벌어진 이유 중 하나는 생산 구조입니다. 한국은 전국 어디서나 무가 재배되고 수확량이 많아 공급이 넘칩니다. 반면 일본은 고품질 다이콘 산지가 제한돼 있고, 아오쿠비다이콘·미노와리다이콘 등 품종별로 브랜드화가 이루어져 있습니다. 같은 흰 무인데 한쪽은 무더기로 쌓아두고, 한쪽은 품종과 산지를 따지며 삽니다. 한국산 무가 일본 시장에서 수출 식재료로 유통되는 경우가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입니다.

일본이 무를 귀하게 여기는 이유
무에는 디아스타제라는 소화 효소가 풍부합니다. 탄수화물 분해를 돕고 위장 부담을 줄여주는 이 효소 덕분에, 일본에서는 기름진 튀김 요리 옆에 간 무를 곁들이고 구운 생선 옆에 무 채를 올리는 식습관이 수백 년간 자리 잡았습니다. 비타민 C도 풍부해 면역력 강화에 기여하고, 칼륨이 나트륨 배출을 도와 혈압 안정에도 이롭습니다. 무청에는 베타카로틴과 칼슘이 집중돼 있어, 무청까지 먹는 것이 영양 면에서 훨씬 유리합니다.

무가 어떤 재료와도 조화를 이루는 것도 일본에서 높이 평가받는 이유입니다. 국물 요리에서 무는 자체 수분을 천천히 내어 육수를 깊게 만들어주고, 고기나 생선과 함께 조리면 잡내를 잡는 역할까지 합니다. 특유의 단맛이 오래 끓일수록 국물 전체의 풍미를 끌어올립니다. 일본 오뎅이 무를 핵심 재료로 쓰고, 오뎅집에서 무 단품을 따로 파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가장 쌀 때, 가장 많이 먹어야 합니다
무의 제철은 가을과 겨울입니다. 이 시기에는 당도와 수분이 높아져 달고 아삭하며, 여름 무와는 맛이 완전히 다릅니다. 잎에 가까운 윗부분은 달고 부드러워 생채와 무침에 적합하고, 끝부분으로 갈수록 매운 맛이 강해져 조림과 국물 요리에 어울립니다. 껍질 바로 안쪽에 단맛과 영양이 집중돼 있어 너무 두껍게 깎으면 손해입니다.

국물 요리에는 무를 가장 먼저 넣어 충분히 끓여야 감칠맛이 올라옵니다. 볶음에 넣을 때는 두껍게 썰어 센 불에서 빠르게 조리하면 아삭한 식감이 살아납니다. 일본에서는 오뎅집 단골 메뉴이자 고급 일식당의 별도 요리로 나오는 그 식재료가, 한국에서는 지금 이 계절 재래시장에서 천 원에 살 수 있습니다. 제철에 가장 싸고, 제철에 가장 맛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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