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전 영화에 서울역 길거리 행인으로 지나다닌 세계적인 톱배우

(Feel터뷰!) 영화 '1승'의 송강호 배우를 만나다
장선우 감독 '나쁜영화'
27년전 장선우 감독의 '나쁜영화'에서 서울역 행인으로 지나다녔던 배우 송강호. 현재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에서 세계적인 배우로 성장하며 새로운 도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번주 개봉하는 영화 <1승>이 바로 그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작품이다.

영화 <1승>은 이겨본 적 없는 감독 김우진(송강호)과 이길 생각 없는 구단주 강정원(박정민), 이기는 법 모르는 선수들까지 승리의 가능성이 1도 없는 프로 여자배구단이 1승을 위해 도전에 나서는 이야기다.

김우진은 어느 날 프로 여자배구단 핑크스톰의 감독을 맡게 되는데 대학팀으로 옮기기 전 대충 시간만 때우려는 면피용이었다. 파직, 파면, 파산, 대출, 이혼 경력은 있지만 우승 경험은 없는 게 새 구단주 강정원의 마음을 흔들게 된다. 1승만 하면 된다는 구단주 말에 오합지졸 팀의 감독직을 맡지만 1승은 저 멀리 아득하기만 하다.

국내 최초로 만들어진 배구 영화다. 각본가로도 활동한 신연식 감독의 장기가 발휘된 실화 같은 가짜 이야기다. 드라마틱한 반전 서사 보다 잔잔한 유머와 감동을 선사한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감동으로 마무리 짓는 전형적인 신파 구조를 따르지 않아 개운하다.

지난 2일 극 중 프로 경력 없는 감독 김우진을 연기한 송강호를 삼청동의 카페에서 만났다. 신연식 감독과 <거미집>, <삼식이 삼촌>, <1승>까지 세 작품을 협업한 송강호의 밝고 경쾌한 캐릭터가 펄떡인다. <기생충> 이후 가벼운 캐릭터에 갈증을 느꼈던 만큼 즐겁게 촬영하며 에너지를 얻은 듯 보였다

다음은 배우 송강호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글이다.


-2022년 개봉 예정이었으나 팬데믹 등으로 연기되고 배급사도 바뀌어 약 4년 만에 관객과 만나게 되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1승>이 관객과 만나게 되어 기쁘다. 배구인들에게 누가 될까 봐 늘 걱정이었는데 배구인이 영화를 보고 좋아해 줘서 기분이 좋다. 그동안 다른 영화도 선보이며 경과를 지켜봤다. 모두 열심히 했고 개봉으로 이어져 반가운 마음이 크다. 극장에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연이어 나와 선택의 폭이 넓어질 것 같다”

-<반칙왕> 이후 24년 만에 스포츠 영화를 만나 감회가 새롭겠다. 특히 배구를 좋아하는 마음이 영화 선택의 기준이 된 건가.

“배구 팬이라서 출연한 건 아니다. 한국 최초의 배구 영화라는 도전이 먼저였다. 성공한 사람, 멋진 슈퍼스타가 나오는 영화가 아니지만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신선했다. 핑크스톰은 넘치는 열정과 달리 현실에서 감싸주지 못해 늘 패배 의식에 젖어 있는 팀이다. 김우진은 거울을 보는 거 같았을 거다. 마치 김우진 스스로를 야단치고 있는 느낌으로 해석했고 마음이 뜨거웠다. 선수와 감독 함께 성장하는 느낌이 좋았던 것 같다

배구 선수로 캐스팅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고, 감독 포지션이 좋다. (웃음) 한 장면 제가 공을 치는 장면이 나오기는 하는데 쉬워 보여도 어려운 기술이라 공이 빵빵 소리 나고 쭉쭉 뻗어나갈 때까지 연습했다. 온 힘을 다해 훈련하는 후배들을 지켜보면서 안타깝기도 했지만 멋있었다”

-배구 경기를 보면서 김우진 캐릭터를 위해 어떤 팁을 얻어 캐릭터에 녹여 냈나.

“레퍼런스 삼은 롤 모델이 있다. 지금은 해설 위원이고 작년까지 GS 감독이었던 차상현 감독의 실제 작전타임 일화를 연구해 그대로 실렸다. 말투, 제스터도 유심히 봤다. ‘실수한 게 계속 남아 있으면 계속 실수하는 거야’라던 말을 인용했다. 감독은 선수의 심리 상황까지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동작이나 플레이만 보는 기술적, 기능적 지시나 체크가 아니라 선수의 실수를 바로 파악하고 고칠 방법을 바로 떠올린다. 이쪽에서 이런 작전을 쓰면 저쪽에서는 방어하면서 다채롭게 작전을 펼쳐내는 방식을 참조했다”

-배구를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가 있나. 배구 영화를 찍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배구의 매력은 무엇이 있을까.

“예전부터 좋아했다. 요즘은 시즌이기도 하니까 매일 본다. 배우는 파워, 에너지, 세밀한 작전, 팀워크 등 스펙트럼이 넓은 스포츠다. 다양성 속의 복합성이 좋다. 작전을 막아내야 하고 상대방의 작전을 읽는 것도 흥미롭다. 배구의 묘미는 알면 알수록 무궁무진하다. 더 활성화돼서 팀도 많아지고 양적 성장을 이뤘으면 좋겠다”

-김연경, 한유미, 이숙자, 신진식, 김세진 등 여러 배구 선수의 배우 도전을 어떻게 지켜봤나.

“김연경 선수는 뭐.. 촬영 때 시즌 중이었는데 충남 보령까지 눈 많이 오는 겨울에 그 장면을 찍고 바로 돌아가더라. 대사도 있고 연기도 하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아쉽긴 하다. 아마 신연식 감독이 더 큰 부탁을 하기가 미안했나 보더라. (웃음) 제일 가까운 곳에서 직관했는데 스파이크 파워에 뒤로 밀릴 듯했고, 긴 랠리 속에 절로 물개박수가 나왔다. 에너지가 그 큰 경기장에 가득했다. 역시 스포츠는 직관이라는 걸 실감했다. 시은미는1인 2역까지 하지 않나. 연기가 처음이라는데 준수하게 해내서 놀라웠다. 한유미, 이숙자, 이동건도 연기 잘해서 놀랐다”

-신연식 감독과 <거미집>, <삼식이 삼촌>, <1승>까지 세 작품을 협업했다. 그가 만들어간 이야기에 매료된 것 같은데. 연이어 함께 하게 된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

“<동주>를 보면서 놀랐다. 윤동주의 아름다운 시를 배우고 외우고 공부해 왔지만 한 번도 삶의 발자취나 뒤안길, 예술가의 열정과 아픔을 생각해 본 적 없었으니 말이다. 색다르게 윤동주를 펼쳐 내서 항상 신연식이 궁금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새로웠다.

상업 대중 영화지만 영화를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쾌감을 주고 싶어 하는지 읽혔다. 현장에서는 흔히 생각하는 감독의 이미지와는 정반대다. 현장을 진두지휘하고 메가폰을 쥐고 큰 소리로 외치는 모습이 연상되나, 말수도 없고 점잖게 지켜보는 스타일이다. 담담하게 만져 나가는 모습이 선비 같았다. 저보다 나이가 9살 어리지만 선배 같고 그 철학이 놀랍다고 생각 해왔다”

-기자간담회에서 박정민이 연기자가 되겠다는 경심을 굳힌 롤 모델로 꼽았다. 자신을 존경하는 후배와 호흡을 맞춘 소감도 궁금하다.

“뭐 박정민이야. 제가 <파수꾼> 때부터 광팬이었다. 캐릭터 해석력과 표현력이 탁월하고 장면 장악력이 엄청나다. 이번에도 임팩트, 에너지 넘치게 연기하니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놀랐다. 재능도 있겠지만 유심히 보니 내외적으로 수양하는 배우인 것 같았다. 사람, 세상에 관한 것을 켜켜이 쌓아 올린다. 출판사 운영도 단순히 인문학적 지식을 담기보다 세상과 소통하려는 방법인 거 같다.' 그걸 찾아나가는 지점이 대단하다. 다만 내년에는 1년 정도 쉰다고 해서 팬으로서 아쉬울 따름이다. (웃음)”

-<관상> 이후 조정석과도 재회했다. 오랜만에 맞춰 본 호흡은 어땠나.

“조정석은 박정민과는 또 다르게 장면 장악력을 가진 대단한 배우다. 개인적으로 친한 후배지만 또 흔쾌히 특별출연을 해줘서 감사하다. 다면 좀 더 길었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있다. (웃음) 조정석 캐스팅이 신의 한 수인 게 실제 배구 감독은 장신의 배구 선수 출신이 있을 거 같아도 조정석 같은 체형의 감독이 많다. 극 중에서는 친한 후배로 설정되어 있어서 조롱하면서 티격태격하지만 실제는 스타플레이어다. 알고 보면 더 무서운 실력자인 셈이다”

-핑크스톰은 흔히 말하는 언더독이고 김우진도 비슷한 처지다. 실제 배우로의 삶과 괴리감이 있을 법하다.

“아니다. 한정된 시간 동안 캐릭터의 특성을 보여줘야 해 비약한 지점이나 단편적인 것만 보여서 그렇지 길게 보면 저로부터 나온 인물이 김우진이다. 배우는 관객에게 평가받는 사람이지 스스로를 평가하지 않는다. 살다 보면 답답하고 위축되고 자신감을 잃어버릴 경우가 항상 있지 않나. 30년 동안 카메라 앞에서 일하다 보면 뭘 해도 잘될 때도, 관객과 소통이 안 될 때가 있다. 좋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는 오락가락한 게 바로 인생이다. 영화를 보면서 ‘나에게 작은 1승은 뭘까’ 생각해 본다면 가치 있는 영화가 될 거라 장담한다. 구불구불한 리듬 자체가 인생의 축소판이다. 1승이 100승이 되고 1000승이 되는 거다”

-영화 속 선수들처럼 피 땀 눈물 끝에 첫 번째 승리를 맛본 순간이 언제였나.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아마 <초록물고기> 출연이었을 거 같다. 데뷔작인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때는 이루지 못했다. 그때는 연극 공연하면서 동시에 단역으로 3일 촬영을 했었다. 이후 <초록물고기>를 하게 되었는데 비중이 커진 거다. 96년에 촬영해서 97년 초에 개봉했다. 영화 연기를 제대로 처음 해봤던 때다. 그때가 바로 제 인생의 1승 같은 느낌인 거다. 당시 연극 연출 감독의 배려로 제 역할에 대타를 구하고 제대로 영화 연기에 올인을 하게 되었다”

-영화 속에서 이기기 위해 포기한 게 뭐냐고 묻는 장면이 등장한다. 승리를 위해 포기한 게 있나.

“승리도 포기도 살면서 없었지 싶다. 그저 배우의 삶을 성실하고 묵묵하게 걸어왔을 뿐이다. 굳이 따지자면 제안 들어온 작품을 거절한 거다. 분명 성공이 보장되는 시나리오였지만 안전한 선택을 포기했다. 대신 새로운 시도를 했다거나 작품 흥행이 보장되지 않는 위험하고 두려운 것들이었다. 계속 그런 선택의 반복이었다. 좋은 결과도 있고, 최근처럼 좋지 않은 결과도 있지만 결코 후회는 없다고 말하겠다. 저도 사람인지라 잘 안된 결과가 아쉽기는 하다. 그렇다고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거 같다. 걷다 보면 다양한 골짜기도 나오고 산 정상도 나오듯이, 걷다 보니까 좋은 길도 만나는 과정이 인생이지 싶다”

-올해 <삼식이 삼촌>으로 첫 드라마에 도전하며 신인배우로 활약했다.

“정말이지 올해 드라마틱한 한 해를 보냈다. 드라마, 영화의 성공과 실패 여부를 떠나 장르는 뛰어넘는 인물을 연기해 볼 수 있었다. 결과까지 좋으면 금상첨화겠지만 <삼식이 삼촌>, <거미집>, <1승> 모두 도전이자 성취였다.

어쩌다 보니 <거미집>에서는 영화감독, <1승>에서는 배구 감독을 연기했다. <거미집>에서는 예술가로서의 고뇌와 집착, 이상한 광기가 뭉쳐진 열정 가득한 감독이었다면, <1승>에서는 스포츠인으로서 순수한 마음이 터져 나오는 듯한 감독이라 상반된 캐릭터였다. 올해는 <1승>으로 마무리하고 내년에서 4월 초부터 드라마 <내부자들>(가제)를 촬영할 예정이다. 영화 <내부자들>이 인물이 등장하는 과거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세계관의 확장 같은 격이다.

-요즘 간절히 바라는 1승은 무엇인가.

“지금 당장은 영화 <1승>이 관객에게 사랑받는 목적이겠지만. (웃음) 진정한 1승은 앞으로도 심장이 뛰는 작품을 만나는 거다. 심장이 고동치는 소리가 들리는 작품을 만난다는 게 요즘 더 간절한 1승 같다. 아직도 첫 촬영 때는 잠이 안 올 정도로 두렵다. 매번 긴장되고 두근거린다. 그런 자극이 없으면 배우 생활이 힘들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건 다른 배우도 마찬가지일 거다”

-구단주 강정원처럼 <1승>의 공약을 건다면. (웃음)

“공약 걸 것도 없는 재미없는 사람이다. (웃음) 다만 관객분들에게 당부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1승>은 단순한 스포츠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영화에는 익살과 풍자, 해학이 저변에 깔려 있다. 무겁고 심각한 영화가 아니다. 팝콘도 먹으면서 즐겁게 보면 되는 영화다. 전문 배우, 배구 선수 출신, 무용 전공 배우, 모델 등 기괴한 시너지가 발생했다. 작은 위안, 위로, 용기가 되어줄 것 같다. 결코 1시간 46분이 아깝지 않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

글: 장혜령
사진: (주) 키다리스튜디오, (주) 아티스트유나이티드

1승
감독
출연
이동근,나현우,신연식
평점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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