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별·이]20년간 '풍장' 연작시 써온 서애숙 시인①
유년시절 본 진도 씻김굿과 초분 강렬한 기억
"시로 쓰지 않고서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토로
"이보다 더 나은 작품을 쓸 수 없겠다 싶어 절필"
'풍장', 시신을 짚이엉으로 덮어 모시는 장묘문화
[남·별·이]20년간 '풍장' 연작시 써온 서애숙 시인①
'남도인 별난 이야기(남·별·이)'는 남도 땅에 뿌리 내린 한 떨기 들꽃처럼 소박하지만 향기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여기에는 남다른 끼와 열정으로, 이웃과 사회에 선한 기운을 불어넣는 광주·전남 사람들의 황톳빛 이야기가 채워질 것입니다. <편집자 주>
제가 먼저 이곳에 누울 줄 알았다면
당신 등 뒤에 풍경소리라도 남기고 올 걸
초분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없어 더 아픕니다
(서애숙, 죽림 풍장 53 中)
이 시는 전남 목포 출신 서애숙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죽림 풍장』 연작 53번 작품 중 마지막 연입니다.
◇ 수 차례 고쳐쓰기를 거듭한 끝에 완성
지금은 전통 공동체 문화가 사라지고 화장이 일반화되면서 더 이상 풍장을 볼 수 없습니다.
서 시인이 죽음이라는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풍장에 꽂힌 이유는 유년 시절의 강렬한 기억 때문입니다.
그녀의 외가는 진도군 임회면 죽림리였는데 틈틈이 목포와 외가를 오가며 자랐습니다. 그리고 외가에 지낼 때 상여 나가는 모습과 들판에 짚으로 덮인 풍장 묘(초분)를 스스럼없이 접하며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 어린 눈에 무서움과 호기심 스며들어
유년 시절 목격한 죽음의 의례는 어린 눈에 무서움과 더불어 호기심으로 스며들었습니다.
그 후 어머니의 형제 10명 중 9명이 죽고 모친만 남은 데다, 자신도 2남 1녀의 형제 중 한 명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 의식 속에는 죽음의 서사가 꿈틀거렸습니다.
이토록 켜켜이 쌓아 올려진 죽음의 서사는 그녀의 가슴 속에 옹이로 박혀 무의식 세계를 억누르며 힘들게 했습니다. 그녀는 "어찌나 풍장의 기억이 강렬한 지 시를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어요, 숨을 쉴 수가 없었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망자를 저승으로 떠나보내는 씻김굿을 하듯 한 편 한 편 써 모은 것이 '죽림 풍장' 연작시로 탄생 되었습니다.
◇ 논산 조용한 작업실에서 명상하며 집필
그녀는 "밤새 시를 쓰면서 무섭기도 하고 여러 번 울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죽림 풍장』 연작시를 본 시인들은 한결같이 '산 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망자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이 시집을 출판한 '문학과경계' 이진영 시인은 "망자의 혼이 스며들지 않고는 이런 시가 나올 수 없다"고 평했으며, 김준태 시인은 "귀신이 씌어서 쓴 것 같다"고 말했다고 밝혔습니다.
독자들 또한 '이 시집을 읽으면 무섭고 너무 슬프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전북 정읍에 사는 한 독자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안되어 이 시집을 접했는데 밤새 읽고 울다가 또 읽고 울고 세 번이나 읽었다"고 전했습니다.
반면에 회갑을 기념해 이 시집을 출간했을 때 그녀의 어머니는 "이제 망자의 혼에서 풀려나 모든 고뇌를 떨치고 편안하게 살아갈 것이다"라고 덕담을 건넸다고 전했습니다.
시집 표제는 처음에는 '풍장'으로 하려 했지만 1995년에 나온 황동규의 시집 '풍장'이 있어 죽림이라는 마을 이름을 붙여서 '죽림 풍장'으로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서애숙 시인은 "내가 죽어서 누군가 풍장으로 장례를 치러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고 풍장 문화에 대한 각별한 의미를 피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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