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조 왕건’, ‘광개토대왕’, ‘대조영’, ‘불멸의 이순신’. 대하사극에서 장군 역할이라 하면 늘 등장하던 배우 김관기.

장군의 칼을 휘두르던 그가 요즘은 대구의 한 곰탕집 주차장에 선다. 손님 차량을 안내하고, 테이블을 정리하고, 화장실을 청소하며 하루를 보낸다.
이 식당은 장인, 장모가 운영하는 곳.
김관기는 어느덧 15년째 처가살이 중이다.


평생을 서울에서 살며 연기만 해왔다.
결혼하고 대하사극에 출연하기 시작했을 때도 그랬다.
촬영으로 집을 비운 사이 도둑이 들었다. 불안해진 아내와 어린 아이들을 두고 계속 서울에서 연기를 이어가기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때 장인어른이 제안했다.
“연기 그만하고, 대구로 내려와 식당 일을 배우면서 가족과 함께 지내보라”고.
결국 가족을 위해 서울을 떠났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이제는 주차장 관리부터 서빙, 계산, 화장실 청소까지 어느 것 하나 못 하는 일이 없다.
손님이 몰리면 말없이 뛰어나가 도움을 주고, 계산 실수를 하면 본인이 알아서 수습한다.

하지만 식사시간마다 장인어른과 마주 앉으면 여전히 눈치가 보인다.
15년이 흘렀어도 장인의 존재는 늘 부담스럽다.

대구 생활이 길어지면서 방송 출연도 끊겼다.
그러다 주변 권유로 트로트 음반까지 내게 됐다. 장인 장모는 격려했지만 아내는 강하게 반대했다.
결국 준비 부족으로 실패했고, 투자한 돈까지 잃었다.
실패의 충격은 컸다. 김관기는 그때를 떠올리며 “세상 끝나는 줄 알았다”고 털어놓는다. 우울증과 공황장애까지 겹쳤던 힘겨운 시절이었다.

지금도 가끔 행사장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른다. 무대에 서면 한순간이지만 다시 배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피어오른다.

연기 이야기가 나오면 마음 한구석이 늘 허전하다. “배우라는 이름이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는 말에는 미련이 짙게 배어 있다.

주변 선배들은 조심스럽게 말한다. “가게 일을 놓지 말고, 연기 기회가 오면 작은 것부터 다시 시작하라”고.
케이블 광고, 단편 영화, 작은 배역이라도 놓치지 말라고 조언한다.

김관기는 말한다.
“꿈을 잊고 살기엔 아직 젊단 말이에요.”
실패도 있었고, 좌절도 많았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작은 배역이든, 새로운 기회든, 다시 연기로 돌아갈 날을 스스로 기다리고 있다.
처가살이 15년, 여전히 묵묵히 하루를 버티고 있지만, 언젠가 ‘배우 김관기’라는 이름을 다시 듣게 될 날을 기대해본다.
모든 사진 출처: 이미지 내 표기
Copyright © by 뷰티패션따라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컨텐츠 도용 발각시 저작권 즉시 신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