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찬 패싱·공격 사주 의혹…윤-한, 루비콘강 건너나
한, 고소·고발 검토-용산은 ‘고사작전’…막다른 길 치달아
대통령실 전 선임행정관이 연루된 ‘한동훈 공격 사주’ 의혹 보도의 후폭풍이 가뜩이나 위태로웠던 ‘윤-한 관계’를 막다른 길목으로 몰아가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공격 사주’ 의혹의 핵심 인물인 전 선임행정관 김대남씨에 대해 당 윤리위원회 조사를 지시한 2일, 윤석열 대통령은 한 대표를 빼놓은 채 국민의힘 핵심 인사들을 대통령실로 불러 만찬을 했다. 친한동훈계가 ‘공격 사주’의 배후로 용산 대통령실을 의심하고 있었던 만큼, 한 대표의 이날 윤리위 조사 지시는 ‘용산을 향한 선전포고’로 받아들여졌다. 당 안팎에선 두 사람 모두 서로를 향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한지아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대통령실 행정관 출신 김대남 서울보증보험 감사가 좌파 유튜버와 나눈 녹취가 공개됐는데, 김씨는 국민의힘 당원”이라며 “보수정당 당원이 소속 정당 정치인을 허위사실로 음해하기 위해 좌파 유튜버와 협업하고 공격을 사주하는 것은 명백하고 심각한 해당행위이자 범죄”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한 대표의 지시로 당 윤리위를 소집해 진상조사를 벌일 계획이었지만, 김씨가 이날 국민의힘을 탈당하자 당 차원의 고소·고발을 검토하고 있다.
친한계는 김씨의 ‘한동훈 공격 사주’를 용산과 친윤석열계의 조직적 행동으로 의심하고 있다. 신지호 전략기획부총장은 이날 채널에이(A) 유튜브에 출연해 “김씨의 행위가 단독플레이였는지 조직플레이였는지, 이게 굉장히 중요한 거 아니냐”며 “김씨가 단독으로 하기에는 정황상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친한계 당직자는 한겨레에 “김씨가 얘기한 총선백서 여론조사 얘기는 당시로선 도저히 공개될 수 없는 내용이다. 총선백서 티에프(TF) 위원장인 조정훈 의원은 친윤계 이철규 의원이 당 인재영입위원회 위원장을 할 때 부위원장을 하던 사람이다. 석연찮은 부분이 있다”고 했다.
친한계의 이런 반응은 김씨가 서울의소리 기자와 통화하면서 ‘총선백서에 (총선 기간에) 70억원을 여론조사 하는 데 썼다는 부분이 있는데, 여론조사 두건은 한동훈이 대선 준비용으로 한 것으로 (당비) 횡령’이라고 한 말을 겨냥한 것이다. 통화 녹취에는 김씨가 “서울의소리에서 (한동훈을) 치면 (김건희) 여사가 좋아하겠는데”라고 말하는 대목도 있다.
대통령실은 사실 관계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는데 한 대표 쪽이 ‘배후’부터 언급한 것에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대응할 가치가 없다. 한 대표 쪽이 조급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날 만난 기자들에게 “(김씨가) 변호인을 통해 입장을 밝혔듯이 스스로 자기 발언을 허황된 실언이라 하지 않았냐. 우리가 볼 때 (한동훈에 대한 김씨 발언은) 일방적 주장일 뿐”이라고 했다.
친윤계도 가만있지 않았다. 한 친윤계 의원은 “(친한계가) 입만 열면 거짓말하고 있다. 조직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었으면 왜 이 사건이 터진 뒤 대응도 제대로 못 하고 있겠냐”고 했다. 영남권의 또 다른 친윤계 의원도 “헛소리다. 자기들이 조직적 플레이를 하니까 남들도 그렇게 하는 걸로 보이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대통령이 이날 추경호 원내대표 등 원내지도부와 당 소속 국회 상임위원장·간사단과 따로 만찬을 한 것도 심상찮은 신호였다. 지난달 24일 한 대표가 대통령실 만찬 뒤 홍철호 정무수석을 통해 거듭 청한 대통령 독대에 대해선 일주일이 넘도록 묵묵부답이기 때문이다. 이날 원내대표단 만찬에서 윤 대통령은 한동훈 대표에게 별도의 발언 기회도 주지 않았던 지난달 만찬 때와 달리 추 원내대표에게 따로 말할 시간을 주고, 마지막엔 ‘우리는 하나다’라는 구호까지 함께 외쳤다. 만찬에 소요된 시간도 지난달 만찬에 견줘 1시간 가까이 길었다.
대통령실의 잇따른 ‘한동훈 패싱’을 두고 당 안팎에선 윤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 문제와 채 상병 특검, 의-정 갈등 같은 이슈에서 건건마다 반기를 든 한 대표를 고립·고사시키기로 작정한 거 같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 대표가 직면한 문제는 ‘김대남 고소·고발’ 외에 뚜렷하게 쓸 수 있는 카드가 없다는 데 있다. ‘원외’라는 신분의 한계가 뚜렷한데다, 그를 공개적으로 지지해줄 당내 세력도 미미하기 때문이다. 현재 한 대표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개인 팬덤과 우호적인 보수언론에 호소하거나, 용산과 친윤의 영향권에 소속되지 않은 당내 비주류와 손을 잡는 것 정도다. 한 대표가 연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지지층을 규합하고, 7일 열리는 원외 당협위원장 행사에 참석해 스킨십을 강화하는 것도 결국엔 ‘속절없이 당하거나 고사당하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으로 풀이된다.
4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뤄지는 쌍특검법(채 상병, 김건희 특검법) 표결은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관계가 ‘완전한 파탄’으로 갈지, 지금처럼 들끓는 여론을 감수하며 지리멸렬한 ‘저강도 공방’을 지속하는 국면으로 갈지를 가늠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친한계가 ‘완전 결별’을 작심하고 재의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문제는 특검법 가결의 후폭풍을 윤 대통령과 한 대표 모두 감당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이런 이유로 친한계는 극단 선택을 하기보다 상황을 관망하며 여론을 우호적으로 바꿔가는 데 주력할 가능성이 높다.
서영지 장나래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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