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설] 정약용과 정은경

"캄캄한 땅속에서 그대 능히 이 술을 마실 수 있겠는가." 전남 강진에 유배와 있던 다산 정약용. 그는 인근 백련사 혜장 스님과 곡차를 즐겼다. 들과 산을 가리지 않고 자리를 펼쳤다. 공동묘지도 자주 이용했다. 그는 권커니 잣거니 하며 무덤 속 고인들에게 말을 걸었다.
"그대가 세상에 있을 때 하찮은 티끌의 재물을 긁어모으느라 눈썹을 치켜 눈을 부릅뜨고 힘껏 움켜쥐려고만 했겠지." 질책에 그침이 없다. "육욕에 불타올라 하늘과 땅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지 조차 몰랐던 것 아닌가."
망자가 누구인지 관심 없다. 욕망의 노예가 된 인간 군상을 신랄하게 질타할 따름이다. 그리고 백골이 된 고인들에게 비수 같은 질문을 꽂는다. "그대 이승에서 하직할 때 손에 동전 한 닢이라도 지니고 갈 수 있었는지 모르겠네 그려."
2020년 초 세상은 공포로 파랗게 질렸다. 코로나19 대유행. 죽음의 검은 그림자가 덮치면서 세계인들은 '지구 최후의 날'을 상상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방역의 영웅'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이 있었다. 매일 아침 그의 브리핑을 들으면서 희비의 쌍곡선을 그렸다. 그가 초대 질병관리청장에 취임했을 때 모두 박수로 환호했다. 갈수록 희어지는 그의 머리카락과 수척해지는 얼굴을 보면서 한없는 미안함과 함께 신뢰를 보냈다.
그가 이재명 정부 첫 보건복지부장관 물망에 오르자 대부분 국민이 '최적의 인사'라고 수긍했다. 그러나 정 청장이 진단키트 사용과 마스크 착용을 독려할 때 그의 남편은 뒤에서 관련 수혜 주식들을 사들이며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결국 후보에서 낙마했다. 영웅 서사의 허망한 결말이다.
"지금 그대를 난처하게 함이 이와 같건만 능히 큰 소리로 날 꾸짖을 수 있는가." 다산은 잔을 놓고 휘청거리며 일어선다. 서산을 넘는 해가 길을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