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봐줄 사람이 도무지 없어 가게에 둘러업고 나왔던 여자들 이야기

박꽃 이투데이 문화전문기자 2024. 10. 3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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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꽃의 영화뜰]

[미디어오늘 박꽃 이투데이 문화전문기자]

▲ 영화 '열개의 우물' 스틸컷.

“등에 업은 아이가 너무도 힘들어 가게에 내려놓으면, 아이는 어느 사이에 산낙지 다라에 들어가 앉아 있다. 낙지들이 어린아이의 몸을 휘감아 조여들면 낙지를 떼어내려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사람들은 쳐다보며 깔깔대고 웃어대면 아이는 놀라며 울어버린다.”

사방을 둘러 찾아봐도 애 봐줄 사람이 도무지 없어 기어코 가게에 둘러업고 나왔다. 제 자식 예쁜 줄 모르는 엄마야 별로 없겠지만 이런 상황은 영 난감하고 답답하다. 그에겐 신화와 같은 모성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생존이라는 무거운 숙제가 함께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이에게 생업만큼 큰 숙제는 없다. 그런데 아이는 팔기 위해 바가지에 담아둔 낙지와 뒤엉켜 있고, 헐레벌떡 그 작은 몸에 들러붙은 낙지를 떼어내는 꼴을 본 사람들은 킬킬 웃어댄다. 직접 겪지 않은 일이라도 관객은 상상만으로 충분히 아득해진다. 이 넓은 세상에 도움 청할 곳 하나 없이 내팽개쳐진 누군가의 초라하고 난망한 감각을 공유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건 80년대 인천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이 모여 살았다던 만석동과 십정동 여자들 이야기다. 다큐멘터리 전문 김미례 감독이 30일 극장에 선보이는 신작 '열 개의 우물'이 소환한 누군가의 고단했던 과거다. 각자의 남편들이 어느 곳에서 무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스스로 일하지 않으면 결코 먹고 살 수 없었던 이 여인들에게 '아이를 키운다'는 과업까지 오롯이 떠넘겨져 있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지금처럼 '나라가 나서서 아이를 키워줘야 한다'는 일말의 의식조차 없던 시절, 그들은 자구책을 찾아야만 했다. 그렇게 아이 돌보는 일을 도맡은 단체 해님공부방이 결성됐다. 지금껏 인천에서 운영되는 해님지역아동센터의 원형이다.

▲ 영화 '열 개의 우물' 포스터.

구태여 '운동권스러운' 표현으로 정의하자면 이건 탁아운동이고 동시에 여성운동이자 빈민운동일 것이다. 다만 김 감독이 이들 이야기를 보여주는 방식은 그런 도식적인 접근에 국한돼 있지 않다. 빈민에 강압적이던 80년대 사회 분위기 안에서 인천 달동네로 흘러온 이들은 '기댈 곳이 없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영화는 아내로서 엄마로서 생계노동자로서 지나치게 과중한 역할에 노출돼 있음에도 누구 하나 연민으로 거들떠보는 이 없었던 이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그 결과가 '우리끼리 모여서 어떻게든 해결해 보자'는 자발적 문제해결로 이어진 셈이다. 사회 운동으로 분류될 수 있는 모든 활동의 시작은 본질적으론 주어진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한' 방법을 찾아가는 이들의 여정과 맞닿아 있다.

'열 개의 우물'을 연출한 감독은 본래 분투하는 사회적 소수자를 스크린 앞에 데려다 놓는 데 관심이 많은 창작자다. 목적 역시 일관적이다. 지극히 평범한 경험치를 지닌 관객이 조금은 낯선 주인공에게 기어코 공감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평생 공사장 형틀목수로 일하며 '노가다꾼'으로 불린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초기작 '노가다'(2005)부터 전범기업 미쓰비씨 본사에 폭탄을 터뜨린 일본인을 다룬 최근작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2020)까지, 보는 이가 직접 경험한 적 없는 입장과 상황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도록 유도하는 기술은 특히 훌륭하다. 20여년 전 연출한 '노가다'에서 감독은 이렇게 표현했다. “비가 내린다. 아버지가 일을 안 나가는 날이다. 눈이 내린다. 아버지는 한동안 일을 안 나갈 거다. 해가 짱짱한 날에도 일이 연결이 안 되면 일을 못 나간다. 언제나 예고 없이 실업이 닥친다.” 그 내레이션 끝에 관객은 보편적인 부녀관계를 통해 감독이 제기하는 노동문제의 근본을 인식하게 된다.

▲ 영화 '열개의 우물' 스틸컷.

이번 작품 '열 개의 우물'에서도 감독은 그 시절 인천에 살았던 여인들의 삶과 고충을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펼쳐 나가는 데 공을 들였다. 당시에는 무척 치열했지만 이제는 한 때의 경험정도로 남아버린 시절을 덤덤하게 회고하는 한 여인의 마지막 장면에는 특히나 현실감이 묻어난다. 그는 말한다. “동학농민운동 책을 읽는데 이런 내용이 나오더라고. 총 들고 온 일본 놈들하고 싸우는 데 따라갔던 시골 청년이 진격하는 무리 앞에서 꽹과리 치는 역할을 맡은 거야. 옆 사람들은 피 터져 죽고 하는데 자기는 거의 정신이 나가서 눈도 못 뜨고 꽹과리를 두드리는 거지. 근데… 나도 비슷하지 않았나? 모르면서… 무섭고.”

그 즈음 관객은 감독이 전하고자 했던 이들의 삶에 대해 어렴풋이 알게 된다. 그 시절 인천 만석동과 십정동을 근거삼아 활동하던 여인들의 시간은 '성공'이나 '실패'와 같은 단편적인 표현으로는 정리할 수 없는 실생활의 누적된 경험이었고, 이제사 섣부르게 자부심을 느낄만한 일도 그렇다고 치욕스럽다고 치부할 일도 아닌 채로 남았다는 걸. 그럼에도 두려움과 막막함을 견디며 그저 잘 살아내보기 위해 부단히 애썼던 시간이었던 것만큼은 분명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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