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진보 조정자' 남재희 前 노동부 장관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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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와 진보의 경계를 넘나들며 교류에 힘써 '체재 내 리버럴'이라는 별명을 얻은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이 15일 오전 8시10분께 서울의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유적이 16일 전했다.
1979년 민주공화당 후보로 국회의원(서울 강서)으로서의 첫 발을 내딛은 고인은 13대까지 강서구에서 내리 4선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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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와 진보의 경계를 넘나들며 교류에 힘써 ‘체재 내 리버럴’이라는 별명을 얻은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이 15일 오전 8시10분께 서울의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유적이 16일 전했다. 향년 90세.
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청주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58년 한국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발을 들여놓은 고인은 1962년~1972년 조선일보에서 정치부장 편집국 부국장을 지냈으며 1972년부터 서울신문으로 자리를 옮겨 편집국장, 주필 등을 역임했다.
1979년 민주공화당 후보로 국회의원(서울 강서)으로서의 첫 발을 내딛은 고인은 13대까지 강서구에서 내리 4선을 지냈다. 1980년 민주정의당 창당에 참여,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정책위의장을 역임하는 등 제5공화국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1993,1994년 김영삼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냈다.
특히 노동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시절 현대중공업 노사 타협을 이끌고, 노태우 정부 인수위원회 격인 민주화합추진위원회에서 국민 통합 분과를 맡아 1980년 5월 광주를 ‘민주화 운동’으로 명명하기도 했다. 이처럼 보수 핵심 인사이면서도 진보 진영을 아우른 공로를 인정받아 청조근정훈장 등을 받았다.
고인은 ‘아주 사적인 정치 비망록’(2006), ‘남재희가 만난 통 큰 사람들’(2014) 등 다수의 저서를 냈다. 올해 초에도‘내가 뭣을 안다고(잊혀간 정계와 사회문화의 이면사)’를 출판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변문규씨와 남화숙(미국 워싱턴주립대 명예교수)·남영숙(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남관숙·남상숙과, 사위 예종영(전 가톨릭대 교수)·김동석(KDI 국제정치대학원 교수)씨 등이 있다. 발인은 오는 19일 오전 5시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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