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끝나지 않는 절규 소리의 정체 [김수현의 THE클래식]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탄탄한 전개·완벽한 표현력
울분에 가득 찬 바이올린 소리로…고도의 긴장감 유발
“오르간의 저음이 흘러나오고, 마침내 그 카랑카랑한 바이올린의 절규가 쏟아졌다. 그날 우리는 술 한잔 걸치지 않은 맨정신으로 말 한마디 없이 울 수 있었고, 그럼으로써 이 곡이 ‘세상에서 제일 슬픈 곡’이라는 점을 긍정한 셈이 되었다.” -음악 평론가 조희창, 바이올리니스트 야샤 하이페츠 연주 비탈리 '샤콘' 음반 해설지 中 일부
인간이 겪는 단장(斷腸)의 슬픔을 애절한 선율로 담아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이라 불리는 작품 비탈리의 ‘샤콘’을 이 시점에 조명하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650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코로나19 사태, 수십만명의 사상자가 잇따르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하루에도 수십번씩 자식을 잃은 아픔에 속앓이하고 부모의 부재에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의 아픔이 잊혀가는 오늘, 작품이 전하는 울림의 깊이는 이전과 다를 것입니다. 무거운 분위기 속 극단적 고통을 그대로 옮겨적은 듯한 선율이 단순한 애도의 감정을 넘어 우리의 가슴을 저미도록 하는 음악, 비탈리의 ‘샤콘‘을 가까이 들여다보겠습니다.
100년간 잠들어 있던 ‘비탈리 샤콘‘, 불후의 명작으로 깨어나다
먼저 작곡가 토마소 안토니오 비탈리(Tommaso Antonio Vitali, 1663~1745)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비탈리는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이탈리아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로, 아버지의 음악성을 물려받아 어릴 적부터 특출난 음악적 재능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의 아버지가 당대 유명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한 지오반니 바티스타 비탈리였던 영향이었습니다. 음악에 대한 기본적 소양을 아버지로부터 배웠다면 비탈리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한 데에는 작곡가 안토니오 마리오 파치오니의 영향이 컸습니다.
파치오니는 비탈리에게 바이올린 고유의 매력적인 음색을 벨칸토 풍 선율로 표현하도록 가르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의 서정성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익히도록 함으로써 비탈리만의 개성 있는 음악을 구축하는 데 실질적인 역할을 한 셈입니다. 이밖에 비탈리의 생애에 대한 정보는 전해진 바가 거의 없습니다. 불행히도 그는 생전에 작품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으며 명성을 크게 얻은 작곡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비탈리가 세상을 떠난 시점부터 수백 년이 지난 현재까지 전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서 불후의 작곡가로 남은 것은 ‘샤콘’이라는 작품 덕분입니다. 샤콘은 바로크 시대에 사용된 기악 형식 중 하나로 3박자 계열로 이루어진 화성 주제를 기초로 한 변주곡을 의미합니다.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비탈리 샤콘은 바로크 시대 최고의 작곡가 바흐 샤콘에 대적할 만한 유일한 악곡으로 평가받습니다. 비탈리 샤콘은 오랜 기간 빛 바란 악보, 좀처럼 무대에 오르지 않는 악곡으로 남아있다가 1867년 독일의 저명한 바이올리니스트 페르디난드 다비드에 의해 편곡 연주되면서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바이올린 특유의 애절한 음색과 유려한 선율, 긴장감 넘치는 악곡 구성 등에 청중으로부터 끝없는 찬사가 이어졌죠. 그러나 위기는 있었습니다.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등장한 비탈리 샤콘을 두고 클래식 음악계에서 진위 논란이 일었기 때문입니다. 바로크 시대에 작곡된 것으로 보기엔 선율이 너무나 강렬하고, 대담한 변조가 여럿 등장한 탓에 일어난 의혹이었습니다. 비탈리의 자필 악보가 존재하지 않는 것 또한 의혹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악보에 ‘토마소 비탈리’라는 표기는 있었으나 이것이 작곡가를 뜻하는 것인지 연주자를 의미하는 것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도 비탈리 샤콘을 둘러싼 논쟁에 명확한 판결이 나온 것은 아닙니다. 다만 문헌 감정 결과 악보 필적이 비탈리가 살아있는 동안 활동한 인물의 것이란 점이 확인되면서 적어도 바로크 시대 또는 그 이전에 작곡된 작품이란 점은 증명된 상태입니다. 페르디난드 다비드가 편곡 당시 직접 작품의 원 작곡가가 비탈리라고 밝혔던 점 또한 그의 작품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싣고 있죠.
완성도가 높고 진행되는 선율이 타종을 불허할 정도로 매혹적인 탓에 바이올리니스트라면 누구나 무대에 올리고 싶은 악곡 중 하나로 꼽히지만 모든 연주자에게 쉽게 허용되는 작품은 아닙니다. 비교적 단순하게 이어지는 피아노 또는 오르간 반주 선율에 홀로 고난도 기법과 완벽한 표현력을 구사해 작품 속 극한의 감정을 끌어내야 하는 만큼 연주 역량이 온전히 노출되는 악곡이기 때문입니다. 주선율이 여러 번 반복되는 만큼 이를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발전적인 전개로 풀어나가는 것 또한 연주자의 실력으로 평가될 수 있어 혹평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작품으로도 여겨집니다.
까다로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유명 공연장에서 끝없이 연주되며 명실상부 바이올린계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매혹의 작품 비탈리의 ’샤콘’. 무거운 분위기 속 울분에 가득 찬 바이올린 선율이 이어지면서 청중으로 하여금 극도의 긴장감과 격정적인 감정 변화를 불러일으킨다는 음악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끝나지 않는 강렬한 선율과 극적인 표현력…휘몰아치는 감정 변화
‘단, 단, 단, 단’ 작품은 피아노(또는 오르간)의 묵직하고도 암울한 선율로 시작됩니다. 긴 음표가 끝없이 떨어지는 구간을 지나 다시 상행하면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면 바이올린이 강렬한 화음으로 첫 등장을 알립니다. 애절한 바이올린 선율이 고음으로 연주되면서 심장을 찌르듯 고통스러운 애상을 표현해내면 다소 진정된 상태에서 다음 선율이 이어지는데, 이때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내듯 선율이 분리되어 오르면서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연출됩니다. 이어 선율이 고음으로 여러 번 도약하면서 감정을 서서히 고조시키면 두 개의 현이 교차 연주되면서 북받쳐 오르는 슬픔을 온전히 드러냅니다.
그러면 주제 선율이 아주 낮은 저음으로 다시 표현되면서 무겁고도 고독한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흐느끼듯 작은 소리로 서서히 상행하던 선율은 트릴(trill·연속된 두 음을 교대로 빠르게 연주하는 주법)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참았던 슬픔을 터뜨리듯 격렬해지는데, 이때 주체할 수 없는 고통을 표현하는 화음까지 더해지면서 극도의 긴장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이후 맑은 선율의 스타카토 연주를 지나 연속된 화음이 고음에 도달하는 순간에는 격한 활 움직임과 비탄으로 가득한 선율이 최절정에 달하면서 오케스트라 연주 못지않은 극강의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뒤이어 나오는 주제 선율은 바이올린 하나로 자아낼 수 있는 가장 폭발적인 에너지를 구현해내는 구간으로 바이올리니스트의 해석 또는 연주 역량에 따라 표현의 간극이 뚜렷이 나타나는 부분입니다. 이후 기교적인 선율이 등장하면서 다소 가벼운 분위기를 연출하면 긴 음표로 이어지는 화음이 나타나는데, 두 음정이 서로 다르게 움직이면서 위아래로 안아주는 듯 서글프면서도 포근한 감정을 자아냅니다. 이어 아주 밝은 분위기의 선율이 등장하는데 과거를 회상하듯 아주 잠시만 연주될 뿐 이내 모든 소리가 멈추고 다시 어두운 선율로 연주되면서 감정 변화를 끌어냅니다. 이후 차분하고도 메마른 소리의 서정적인 선율이 계속되면 이를 받은 주제 선율이 그간 감춰왔던 모든 감정을 토해내듯 절망감에 가득 찬 연주로 표현되면서 청중을 압도합니다.
그 뒤로 중음 주법과 도약 진행으로 이뤄진 최고난도 기교가 등장하면서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아주 격렬한 선율로 쏟아냅니다. 이후 하나의 점을 향해 달려가듯 연주가 속도를 내면 무겁게 쌓아 올린 옥타브가 아주 빠른 속도로 반음씩 떨어지는 구간이 나타나는데, 그 소리가 마치 동물이 포효하는 것과 유사해 청중으로 하여금 극강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합니다. 이어 화음으로 점철돼 폭발적인 에너지를 분출하는 구간을 지나 마지막 주제 선율이 시작되면 남은 모든 고통을 분출하듯 거대한 화음이 휘몰아치는데, 이때 계속되는 바이올린의 화려한 선율에 피아노의 묵직한 화음이 연이어 포개지면서 작품은 막을 내립니다. 이는 심장이 땅 밑으로 꺼지듯 좌절감에 가득 찬 한 인간의 심정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g단조의 무겁고도 어두운 음색과 인간 감정의 최극단으로 치닫는 강렬한 선율 진행으로 청중으로 하여금 모든 제어력을 잃게 만든다는 세기의 명작 비탈리 ‘샤콘’.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으로 불리는 이 작품이 상실의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인간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작은 발걸음이 될 수 있길. 오늘만큼은 하루가 다르게 차갑게 식어가는 사회적 시선에 따르지 않고 그들의 아픔을 온전히 헤아려볼 수 있길. 소중한 사람의 부재 속 삶을 견디는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공감하고자 하는 노력을 잊지 않는 사회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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