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모를 미중 갈등.. '전략적 모호성' 시기는 지났다
국제사회 규범 따른 정확한 상황판단·정교한 정책 필요
[편집자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기치로 '핵심이익' 대만과의 통일 과업을 반드시 이룩하겠다 중국의 강한 의지와 대만을 최대 라이벌 중국을 견제하는 인도·태평양전략의 핵심 파트너로 인식하는 미국의 전략이 맞부딪히면서 둔탁한 파열음을 내고 있다. 특히 올해 들어 이어지고 있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5년 만에 추진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과 뒤이은 중국군의 대만 봉쇄 훈련,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이 결정되는 오는 10월 중국 공산당 대회 개최는 'G2(주요2개국)' 간 대립을 예사롭게 보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번 세기 전세계의 미래를 결정할 미중 충돌은 그간 '블랙스완'으로 여겨졌지만 이젠 발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중국은 과연 대만을 침공할까? 미국은 중국과의 정면 충돌도 불사할까? 대만은 어떤 대비를 하고 있을까? 양안 갈등이 한반도에 던지는 함의는 무엇일까? <뉴스1>이 대만 현지의 생생한 목소리까지 담아 '위기의 대만'을 심층 분석한다.
(서울=뉴스1)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 미국과 중국이 끝 모르게 갈등한다. 1970년대 데탕트를 통해 새로운 미중관계를 규정한 '키신저 질서'가 소멸하고 있다. 키신저는 평화적 관여를 통해 중국을 변화시켜 미국 주도 국제질서로 편입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2008년 미국이 금융위기를 겪자 중국은 덩샤오핑(鄧小平)이 당부한 '도광양회'(韜光養晦)를 넘어섰고, 2012년 시진핑(習近平) 등장과 함께 '화평굴기'(和平崛起)를 폐기하고 세계정치 맨 앞줄에 서겠다는 '중국의 꿈'(中國夢)을 노골화했다.
중국이 민족주의·중상주의·공세적 대외정책을 본격화하고, 결정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미국을 강타하자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본격적으로 '중국 때리기'에 돌입했다. 2020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시진핑 주석을 "파산한 전체주의 이데올로기 신봉자"로 규정하고 이념 대결을 선언했다.
"트럼프는 '아메리카 포스트'로서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훼손했다"고 신랄히 비판하면서 등장한 바이든 행정부지만, 대중(對中) 정책은 이례적으로 연속성을 천명했다. 트럼프 시기 냉전식 이데올로기 갈등 수준은 아니나, 바이든 행정부도 중국 정책에 근본적 문제를 제기하면서 '전략적 경쟁'을 선포했다.
양국 갈등이 고조되자 바이든은 2021년 11월 시진핑과 최초 회담에서 '안전대'(가드레일) 설치를 제안한다. 제도화한 미중 경쟁을 통해 군사적 충돌과 같은 안전대 이탈상황을 방지한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중국은 "경쟁의 규칙을 만들든 관계의 가드레일을 설치하든 어느 한쪽이 다른 쪽에 조건을 걸며 요구하지 않고 양측이 대등하게 합의해야 한다"면서 사실상 거부 의사를 표명했다. 중국의 사활적 이해를 건드리면 안전대가 무용함을 밝힌 것이다.
2022년 현재 바이든이 내세운 대중 정책의 기조인 '대립, 경쟁, 협력' 중 마지막이 보이지 않는다. '잠정 국가안보전략지침'을 포함한 다수의 공식 문건을 통해 중국과 경쟁하되 비확산·기후변화 등은 협력하겠다고 밝혔지만, 비확산의 대표 의제인 북핵 문제에서 양국 협력 모습은 전무하다. 오히려 미중 갈등의 최전선에 대만 문제가 등장하면서 긴장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젠 의도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바이든 대통령의 4차례 '대만 수호 의지',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대(對)대만 무기 판매 등은 '하나의 중국' 정책을 인정하지만 무력에 의한 현상 변경을 반대하는 미국의 정책을 현시한다. 분열된 미국 사회이나 82% 국민이 중국에 반감을 표출하고(퓨리서치 8월 조사), 정치권과 학계도 대중 강경책을 주문하므로 지속성이 크다.
이에 대해 시진핑은 "대만을 건들면 불에 타 죽는다"는 거친 언사를 정상회담에서 내뱉는다. 3연임을 앞두고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인한 피해, 악화한 경제 상황 등을 돌파하기 위해 시진핑은 대만 문제를 내세워 민족주의를 고취하고 있다.
미중 모두 대전략 차원은 물론 국내정치적으로 대만 문제는 타협이 불가한 의제가 돼 간다. 2021년 5월 '이코노미스트'지(紙)가 "지구상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대만을 선택하면서 "미중은 전쟁을 피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한 게 가시화되고 있다.
한국은 인도·태평양 지역 내 미국의 핵심 동맹국으로 대만 문제와 무관치 않다. 2021년과 22년 개최된 한미정상회담에서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 모두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동 의제에 연루를 선택했다. 그렇다면 한국은 정확한 상황 판단에 따른 정교한 정책을 준비해야 한다.
우선 대만 문제에 대한 국제정치적 입장이다. 한국 정부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존중하면서 안정과 평화를 강조하는 수사를 구사하고 있다. 그러나 대만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 심화할수록 보다 구체적인 한국 입장을 미중 모두 듣고 싶어 할 것이다. 미중 간 '제로섬 경쟁'에 내몰릴 수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한국은 원칙을 강조해야 한다. 대만해협 인근 '항행의 자유' 보장, 군사력에 의한 현상 변경 불가, 원칙 차원에서 '하나의 중국' 외교를 통한 문제 해결 등 지난 40여년간 유지돼온 국제사회 규범에 따라 태도를 밝혀야 한다.
미국의 동맹국이자 인도·태평양 역내 국가로서 한국의 군사정책도 정교하게 준비해야 한다. 최악의 상황인 미중 군사 충돌을 다양한 시나리오별로 일별해 대비해야 한다. 평시 동맹 차원에서의 역할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큰 틀에서 대만해협 위기가 발생할 경우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역할은 제한된다. 주한미군의 주 역할은 북한위협 대비에 맞춰져 있다. 최근 미국이 주한미군 1개 여단을 신속 이동이 가능한 스트라이커 여단으로 대체하고 있지만, 주 전력은 대만해협 투사에 적절하지 않다. 주한 미 공군 주력 전투기인 F-16은 전투 행동반경이 550㎞ 정도로 대만해협을 작전 반경에 포함할 수 없다.
대만 해협 위기시 해·공군 전력 위주로 대치할 가능성이 크므로 주한 미 지상군의 투사 가능성도 크지 않다. 한국 내 핵심 주한미군 기지인 평택 캠프 험프리스와 오산 공군기지도 거리상 대만해협 투사를 위한 거점기지로서의 역할은 제한된다. 작전 반경과 전력 구성 등을 고려할 때 미국은 주일미군 전력을 우선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펠로시 하원의장 대만 방문 때와 같이 주한 미 U-2 정찰기가 투사되거나 주한 미 공군 F-16 전투기를 일본 오키나와(沖繩) 가데나(嘉手納) 공군기지로 파견해 주일미군 전력으로 활용하는 방안 등은 고려될 수도 있다.
한국 입장에서 보다 심각한 도전은 대만해협 위기가 미중 간 재래전으로 확전하는 경우다. 이 때 캠프 험프리스는 베이징까지 직선거리 800㎞ 정도여서 중국 본토 공격의 최전방 기지가 된다. 중국은 캠프 험프리스를 '중국 심장을 노리는 비수'라고 부른다. 중국이 서해를 거쳐 남하하는 길목에 있기도 하다.
그러나 미국이 캠프 험프리스를 대중국 공격용 거점기지로 활용하려면 반드시 한국 정부의 동의가 필요하다. 종합할 때 군사적 차원에서 대만해협 위기는 한국에 제한적으로 영향을 준다. 확전할 경우 한국이 최전선에 노출되지만, 이런 상황이면 인도·태평양 핵심 국가 모두가 전쟁에 직접 영향 하에 놓이게 될 것이다.
대만해협 문제는 미중 갈등이 지속되는 한 위기로 발전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문제는 미중 갈등은 장기전이고, 점차 심화하는 양상으로 전개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대만해협과 관련한 보다 구체적인 외교·군사적 대응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현재 작성 중으로 알려진 한국의 '국가안보전략지침' '인도·태평양 전략' '국방전략서' 등엔 공개본은 아니더라도 대만 문제 대응 원칙과 방안이 포함돼야 할 것이다.
한국이 정한 정책을 미국과 협의를 통해 발전시킬 필요도 있다. 주제를 꺼내는 것 자체가 한국이 원치 않은 분쟁에 연루된다는 기존 주장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세계 차원에서 대만해협 문제가 구체적으로 논의되는 상황에서 한국도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전략적 모호성'의 시기는 지나가고 있다.
n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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