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20%가 말하는 것 [김지현의 정치언락]
● “지지율 20% 이하는 레임덕 신호탄”
통상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국정 지지율 20%’를 대통령 레임덕이 시작되는 신호탄으로 봅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내각제 국가에선 지지율 30% 선이 무너지면 내각이 총사퇴하고 총선을 다시 치른다. 대통령제에선 20%를 레임덕의 기준으로 본다. 공무원들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뭘 해도 국민이 받아들이지 않는 상징적인 숫자”라고 했습니다.
지지율 20%, 그것도 아직 임기 반환점도 돌지 못한 시점에 저런 수치가 나온 것은 상당히 이례적입니다. 윤 대통령이 2022년 3월 대선에서 48.56%로 당선됐던 점을 고려하면 2년 반 만에 30%포인트 가까이가 빠진 셈이죠. 1987년 민주화 이후 당선됐던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낮은 지지율이기도 합니다. 비슷한 취임 2년 무렵 문재인 전 대통령은 47%, 박근혜 전 대통령은 33%였습니다. 그 이전에도 이명박 전 대통령(44%) 노무현 전 대통령(33%) 김대중 전 대통령(49%), 김영삼 전 대통령(37%) 모두 30~40%대였고요. 심지어 노태우 전 대통령도 28%였습니다.
정치권에선 연휴까지 이어진 의료 공백과 명절 직전 터진 김건희 여사의 총선 공천 개입 논란을 고려할 때 이번 주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그나마 윤 대통령에겐 불행 중 다행 격으로 여론조사 발표가 한 주 쉬어간 거죠.
그동안 역사 속에서 대통령 지지율 20% 선이 무너지면 사실상 국정 운영이 어려운 지경이 됐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2017년 10월 최순실 국정 개입 의혹이 본격적으로 터져 나오면서 10월 3주 차 25%에서 한 주 만에 17%로 떨어져 처음으로 10%대를 기록했습니다. 그 뒤로 11월 내내 평균 5%를 보이다가, 결말은 모두가 아시는 바와 같고요.
박 전 대통령 외에도 갤럽 조사를 기준으로 재임 중 한 번이라도 10%대 지지율을 기록했던 대통령은 모두 다음 대선 때 야당에 정권을 뺏겼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집권 5년 차이던 1997년 2~5월 외환위기 직격탄을 맞고 14% 지지율을 기록했죠. 그 해 5~8월엔 지지율이 7%대까지 떨어졌고요. 그 결과 다음 대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정권을 넘겨줬습니다. 임기 4년 차 때 16%를 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결국 정권을 내줘야 했습니다.
체코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윤 대통령의 이번주 갤럽 지지율이 어찌 될지 아직 단정하긴 어렵습니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19∼20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선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30.3%로, 일주일 전 최저치(27.0%) 결과 대비 3.3%포인트가 오르긴 했더군요. 산적해 있는 의료공백 문제 등을 해결하지 못하는 이상 딱히 드라마틱하게 반등할 만한 요인은 없어 보입니다.
●20% 틈타 거부권 무력화 노리는 野
김민석 수석 최고위원은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18일 ‘추석 민심과 향후 정국’을 주제로 기자간담회를 열고 “윤석열 정권 국정 지지도는 긍정 20%, 부정 70%로 회복 불가 상태가 고착되고, 이재명 대표의 차기 지지도는 40%대 초반으로 국민의힘 어떤 후보에 대해서도 안정적 우위가 고착화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 지지도 20%대는 정권 붕괴 전조에 해당됐다”며 “체감 민심과 여론조사를 종합해 보면 현재는 국민 분노가 임계점에 달해 ‘심리적 정권 교체가 시작된 초입 국면’”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다음날 진성준 정책위의장도 “20% 지지율로는 개혁은커녕 국정 운영도 어려운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고요.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20일 당 회의에서 “대한민국을 무법천지로 만들려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정권의 몰락만 앞당길 뿐”이라며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강력 건의하겠다며 정신 못 차리는 국민의힘에도 경고한다. 분노한 민심에 불을 지르는 어리석은 행동을 중단하라. (중략) 몰락하는 정권과 운명을 같이 하지 말고, 이제라도 민심을 따르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박성준 원내수석부대표도 “민심의 큰 흐름은 특검법을 수용하라는 것이다. 민심의 최접점에 있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이 문제를 그냥 넘어갈 수가 있겠느냐. 저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고 본다”고 했고요. 당 법률위원장인 박균택 의원은 KBS 라디오에서 “재표결이 이뤄지면 이번엔 통과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하고 있다”고 했고요.
정치권에선 윤 대통령이 24일경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거부권을 행사한 그날 저녁 한동훈 대표와 만찬을 갖고 여당 의원들의 표 단속에 나서지 않겠냐는 거죠. 과연 20%라는 숫자가 지난 추석 연휴 동안 윤 대통령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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