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예순여섯인 나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10년 가까이 단체방을 유지하고 있다. 매일 대화를 나누는 것은 아니지만 누가 여행을 가면 사진을 올리고 생일이면 축하도 하며 가끔 동창회 날짜를 잡는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40년 넘게 알고 지낸 친구 한 명이 아무 말도 없이 단체방을 나갔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그날 저녁 따로 전화를 걸었다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친구들끼리 다툰 줄 알았다
그 친구는 원래 단체방에서 가장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누가 사진을 올리면 농담을 하고 모임 날짜가 잡히면 제일 먼저 참석한다고 답하던 친구였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나갔으니 친구들도 이상하게 생각했다.
"누구랑 싸웠나?"
"우리가 뭐 실수한 거 있어?"
하지만 아무리 대화를 다시 읽어봐도 특별한 일은 없었다.
나는 결국 친구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야, 너 왜 방 나갔어? 무슨 일 있냐?"

친구는 처음에는 휴대전화가 귀찮아서라고 했다
친구는 웃으며 별일 아니라고 했다.
"단톡방 알림이 너무 많이 와서 그냥 나왔어."
하지만 이상했다. 우리는 하루에 대화가 몇 개 올라오지도 않는 방이었다.
조금 더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다음 동창회에는 꼭 나오라고 하자 친구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한참 뒤에야 말했다.
"나 요즘 모임 같은 데 좀 안 나가려고."
이유를 묻자 친구는 또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회사 그만두고 일이 좀 꼬였어."

친구가 단체방을 나간 진짜 이유는 돈 때문만이 아니었다
퇴직 후 친구는 지인의 권유로 작은 사업을 시작했다가 모아둔 돈을 상당 부분 잃었다고 했다. 아내까지 아파 병원비가 계속 들어가면서 생활도 많이 줄였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친구를 힘들게 한 것은 돈이 아니었다.
"단톡방 보면 누구는 해외여행 갔다고 사진 올리고 누구는 골프 치러 갔다고 하고 손주 선물 사줬다고 하잖아."
친구는 잠시 말을 멈췄다.
"친구들이 잘사는 게 싫은 건 아닌데, 그걸 보고 있으면 자꾸 내가 실패한 사람 같더라."
그러고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모임 나가면 밥값 몇 만원도 부담되는데 괜찮은 척 웃고 있는 것도 이제 힘들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친구가 단체방을 나간 이유를 누군가와 싸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는 사람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라 예전과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친구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힘들었던 것이다.

나는 친구에게 다음 모임에 꼭 나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그럼 동창회는 나오지 마. 나랑 둘이 국밥이나 먹자. 이번에는 내가 사고 다음에는 네가 커피 사."
잠시 조용하던 친구가 웃었다.
"커피 정도는 내가 살 수 있다."
며칠 뒤 우리는 정말 둘이 만났다. 예전처럼 비싼 식당도 아니었고 술도 마시지 않았지만 오히려 몇 년 만에 가장 긴 이야기를 나눴다.
이 이야기는 실제 중년과 노년 세대의 동창 모임과 인간관계에서 있었던 여러 사연과 경험을 바탕으로 일부 내용을 재구성한 실화다. 나이가 들면 친구가 멀어지는 이유가 꼭 정이 떨어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때로는 달라진 형편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에 가장 오래된 사람들에게서 먼저 숨어버리기도 한다.
좋은 친구는 왜 모임에 나오지 않느냐고 따지는 사람이 아니라, 모임에 나오지 못하는 이유까지 말하지 않아도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Copyright © 성장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