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서류’에 보조금 30억 원 줄줄…정부 시스템 허점
■ "연구개발 보조금 부정 사용 막겠다"… 현실은?
"허위 영수증 제출이나 연구비를 다른 곳에 쓰는 것을 막겠다."
지난 2009년 당시 지식경제부(현재 산업통상자원부)는 연구비 사용의 투명성과 편의성을 높이고 부정 사용을 방지하는 등 관리를 강화하겠다면서 '실시간 통합 연구비 관리 시스템', RCMS를 도입했습니다.
RCMS는 금융기관과 연계해 연구비 지출 증빙자료를 온라인으로 제출하면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정산해 주는 시스템입니다.
정부는 이 시스템을 통해 연구비를 어떻게 쓰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검증할 수 있고, 증빙서류를 제출할 때 연구자나 기관의 업무 부담도 크게 덜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2014년, RCMS 도입 5년 차를 맞아서는 연구비 부정 사용 건수가 2010년 99건, 2011년 53건, 2012년 48건, 2013년 65건, 2014년 16건으로 감소하는 등 성과를 거뒀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스템 도입 이후에도 허술한 감시를 악용해 연구비를 부정 사용하는 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 '가짜 서류' 몇 장에 뚫린 정부 관리 시스템… "1명 주도로 30억 원 편취"
충북 청주시 오송읍의 한 의료기기 제조업체는 2014년, 산업통상자원부가 주관하고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관리하는 '경제협력권 산업 육성 사업' 주관 기관으로 선정됐습니다. 이 업체 부설 연구소장 정 모 씨가 이 국책 사업을 수행했습니다.
정 씨는 사업 수행 과정에 RCMS 시스템의 허점을 파악했고, 정부 출연금을 빼돌렸습니다. 동서가 운영하는 업체에서 국책 사업 연구를 위한 재료비 명목으로 가짜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도록 하고, 이를 RCMS에 첨부해 사업비를 신청하는 수법으로 2015년 5월부터 2019년 3월까지 30차례에 걸쳐 정부 출연금 5억 9천여만 원을 받아 챙겼습니다. 실제로 연구 재료를 주문하거나 받은 사실은 없었습니다.
RCMS의 허술한 시스템으로 큰돈을 챙긴 이들은 점점 대담해졌습니다. 아는 사람들이 운영하는 업체까지 찾아가 "가짜 세금계산서나 거래명세서 등을 작성해 주면, 이익을 보게 해주겠다"고 꾀어 RCMS로 사업비를 신청했습니다.
이렇게 정 씨가 다른 일당과 공모해 빼돌린 정부 출연금은 무려 30억 원에 달합니다. 실제 연구에 쓰지도 않은 돈을, '가짜 서류' 몇 장만으로 손쉽게 챙긴 겁니다.
청주지방법원 제22형사부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정 씨에게 징역 6년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정 씨의 범행을 도운 동서도 징역 4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범행은 산업기술 혁신을 촉진하고, 이를 통해 국가 혁신 역량을 높여 국민경제의 지속적인 발전 등을 이바지하기 위해 지원되는 정부 출연금을 편취한 것으로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 연구비 부정 사용 증가 추세… 환수율은 30%대
이처럼 연구자들의 편의를 도모하고, 부정 사용 감시를 강화하기 위해 도입한 관리 시스템마저 '가짜 서류' 몇 장에 무용지물이 되면서, 정부 보조금 부정 사용 사례는 근절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7월에도 청주지법에서 4억 9,200여만 원의 연구비를 횡령한 한국가스안전공사 전 연구원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 연구원도 앞서 정 씨 사례와 비슷하게, 정부 지원을 받는 연구 과제를 수행하면서 실험용 기자재 구입비 등을 허위 청구하는 수법으로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이종배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21년 5억 2,800만 원이던 연구개발 사업 지원금 부정 사용액은 2022년 21억 6,200만 원, 지난해 59억 9,000만 원으로 계속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올해도 지난달까지 59억 2,400만 원의 부정 사용이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최근 5년 동안, 부정 사용한 지원금의 환수율은 30%대에 그치고 있습니다.
이처럼 허술한 보조금 관리 시스템 문제는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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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근섭 기자 (sks85@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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