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정은에게 봉준호 감독은 늘 예상 밖의 제안을 건넸다.

처음은 영화 마더. 극 중 김혜자와 드잡이를 벌이는 장면에서, 이정은은 피해자 가족으로 짧게 등장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옥자. 이번엔 대사도, 모습도 없다.
봉준호가 조용히 건넨 대본의 한 구석엔 믿기 어려운 캐릭터가 적혀 있었다.
“돼지 역할 좀 해줘.” CG로 만들어질 슈퍼돼지 ‘옥자’의 목소리를 부탁한 것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기생충. 봉 감독은 이정은에게 다시 연락해 이렇게 말했다.
“아주 이상한 영화 하나 있어.”
처음엔 스케줄 때문에 거절 의사를 전했다. 당시 드라마 <아는 와이프> 촬영이 한창이었기 때문.

그러나 봉준호 감독은 포기하지 않았다.
직접 이정은의 소속사 대표까지 불러 “당신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게 이정은에 맞춰서 모든 스케줄이 조정됐고, 결국 이정은은 ‘국문광’을 연기한다.

이름부터 낯설다.
국문광. 그러나 그 이름이 가진 괴이함은 곧 영화의 흐름과 맞물리며 중요한 장치가 됐다.
처음 등장한 인터폰 장면은 많은 관객에게 충격을 안겼고, 이후 지하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비밀과 반전은 영화의 서사를 완전히 뒤집었다.

문광이 지하실에서 남편에게 젖병을 물리는 장면. 많은 이들이 낯설고 기괴하게 느꼈지만, 이정은에게는 자연스러운 감정의 연장이었다.
“그 사람은 4년 넘게 남몰래 키운 존재잖아요. 아이를 돌보는 것처럼.”
이정은은 이 장면을 단순히 충격을 위한 설정이 아니라, 인물의 진심으로 접근했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연기는 극의 분위기를 한순간에 바꾸는 힘을 가졌다.

그녀가 꼽은 가장 짜릿한 순간은 의외로 짧은 장면이다. 계단을 올라가며 과외 교사를 흘겨보던 문광의 모습.
“나도 그 집에 얹혀 사는 주제에, 뭐라고 그랬을까 싶지만 그 장면에서 묘한 희열이 있었어요.
이 작품 안에 내가 있다, 하는 확신 같은 것.”

사실 이정은은 한때 영화와 거리를 두고 살았다.
첫 영화였던 와니와 준하 촬영 당시, 카메라 앞에서의 긴장감 때문에 연기를 망쳤다고 느꼈고, 이후 10년 가까이 영화계에서 불러주는 이도 없었다.
그 시절 그녀는 연극 무대에서 스태프로 일하며 조연출까지 소화했지만, 연기자로서의 자신은 자신 없어 했다.

전환점은 이경규가 제작한 전국노래자랑이었다.
이정은은 울렁증을 극복하기 위해 학생들의 단편 영화에 여러 차례 출연하며 몸을 풀었고, 오디션을 통해 전국노래자랑에 합류했다.
현장에서 느낀 자유로움과 새로운 분위기는 그녀에게 다시 카메라 앞에 설 용기를 줬다. 그때부터다. 영화계에서 그녀의 존재를 알아보기 시작한 건.

“끝나고 나면 늘 그래요. 또 작품을 할 수 있을까,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좋은 감독님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지만, 마음 한편엔 늘 불안이 있어요.
봉준호 감독님은 촬영 현장에서 ‘오케이’보단 ‘좋아요’라는 말을 자주 하시거든요.
괜찮다는 뜻인데도, 괜히 내가 뭘 잘못했나 싶고, 뭔가 부족한가 생각하게 되죠.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런 순간들이 제 안의 가능성을 넓혀준 시간들이었던 것 같아요.
기생충 같은 작품을 또 한 번 만날 수 있다면, 주저 없이 다시 해보고 싶어요. 정말 즐겁고, 잊을 수 없는 작업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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