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 NH농협 강호동 회장이 꼭 해야할 일
관료에게 농협금융 회장직 주는 관행 고쳐야
NH투자증권 방치해선 곤란…제대로 통합해야
주인이 주인답지 못하면 마름·머슴이 주인행세
강호동 농협중앙회 회장과 이석준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이 갈등을 빚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까지 나섰던 NH투자증권 CEO 인사는 두 회장이 밀었던 후보들은 모두 탈락하고 내부 출신의 윤병운 사장으로 결정됐습니다.
17년 만의 직선제를 통해 농협중앙회장 자리에 오른 강호동 회장은 취임 첫 인사부터 모양새를 구겼습니다. 관료 출신 중 윤석열 대선캠프에 최초 합류했고, 경제부총리 하마평까지 올랐던 이석준 농협금융 회장은 중앙회와 갈등만 노출했습니다. 더욱이 내년 1월이면 2년 임기가 끝나는 상황에서 입지가 약화돼 연임을 장담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총선을 앞둔 시점에 ‘농민 대통령’을 상대로 칼을 휘둘러 강호동 회장이 추천한 비전문가의 NH투자증권 진입은 막았지만 또 다시 관치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금융권에서는 이복현 원장의 스타일을 감안할 때 총선이 끝나면 농협중앙회에 대해 제대로 손을 볼 것이라는 관측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려면 관련 법 개정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일개 증권사 사장 인사를 놓고 농협중앙회장 NH농협금융지주회장 금감원장이 충돌한 데는 NH농협금융지주만의 독특한 지배구조 때문입니다. KB 신한 하나금융은 지주사가 바로 계열 금융사를 지배하는 데 비해 농협의 경우 중앙회와 금융계열사들 사이에 NH농협금융지주가 있습니다. NH농협금융지주는 농협중앙회의 100% 자회사입니다.
2012년 이명박 정부는 산업자본이 은행을 소유하지 못하는 금산분리 원칙을 적용해 반강제적으로 농협중앙회를 신용(금융)부문과 경제(유통)부문으로 쪼개는 ‘신경분리’를 단행합니다. 이를 통해 NH금융지주가 금융당국의 감독을 받고, 회장이나 계열사 CEO 선임도 금융 관련 법을 따르게 함으로써 NH금융 계열사들의 독립경영이 가능토록 했습니다. 따라서 현행법과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NH농협금융 계열사 사장 인사에 대해서는 중앙회장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현실은 달랐습니다. 다른 금융지주사나 재벌그룹에서 자회사 손자회사 가리지 않고 회장이나 오너가 인사를 하듯이 농협도 중앙회장이 모든 인사권을 행사했습니다. 선거를 통해 중앙회장이 새로 선임되면 경제지주 계열사는 물론 금융지주 계열사 사장들도 재신임을 받거나 물갈이 됐습니다. 강호동 회장도 이런 관행에 따라 NH투자증권 사장 인사를 하려 했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윤석열 정부의 실세 이복현 감독원장한테 제동이 걸린 것입니다.
NH투자증권 인사 파동은 관련 법이나 규정을 떠나 세련되게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강호동 회장이 증권업 경력이라곤 전혀 없는 최측근 선거 공신이 아닌 증권전문가를 추천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입니다. 경제사업이라면 몰라도 신용사업에 대해서는 자기 사람을 심더라도 전문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번 인사 파동과 관련해 농협중앙회 내부에서조차 강 회장이 무리수를 뒀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윤석열 정부나 금감원 입장에서도 잘한 것만은 아닙니다. 윤석열 정부는 대선 선거 공신인 전직 관료 이석준을 NH농협금융지주 회장으로 앉혔습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제는 농협금융지주 계열 금융사 인사에 농협중앙회가 개입을 못하게 합니다. 농협중앙회 입장에서 보면 결과적으로 핵심인 금융계열사 인사권을 관료한테 전부 빼앗긴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면 강호동 회장은 이제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농협금융지주 회장으로 굳이 관료 출신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습니다. 관료라고 해서 모두 대단한 금융전문가는 아닙니다. 관료 출신이 오면 정부나 금융당국과의 관계가 부드럽고 원만하겠지만 투명경영으로 해결하면 그만입니다. 실제로 전임 이성희 중앙회장 시절 농협금융 회장에 자신의 최측근인 내부 출신 손병환 농협은행장을 앉혔는데 문제없이 경영을 잘했습니다. 지금도 내부 출신 중에 농협금융 회장직을 맡을 만한 금융전문가는 널려있습니다. 이석준 회장 임기는 10개월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강호동 회장은 이석준 회장 연임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강호동 회장은 이번에 문제가 된 NH투자증권에 대해서도 단지 인사권만이 아니라 그룹의 핵심 계열사로서 제대로 통합하고 계열사간 시너지를 어떻게 낼지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강 회장은 취임사에서 “금융부문의 혁신과 디지털 경쟁력 증진으로 농축협의 성장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렇게 하려면 NH투자증권을 지금처럼 놔둬서는 안됩니다. 업에 대한 전문성과 독립성 보장도 중요하지만 다른 금융계열사들과 시너지도 내지 못하고 협업도 하지 않는, 사실상의 방치상태라면 곤란합니다. 대우증권을 인수한 미래에셋그룹과 현대증권을 인수한 KB금융그룹이 어떻게 통합작업을 했는지를 보면 압니다. 필요하다면 현재 56.8%인 NH투자증권 지분을 100%로 높이고, 상장을 폐지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합니다.
금감원은 NH농협금융과 농협은행 NH투자증권에 대한 검사를 통해 중앙회가 과도하게 NH금융지주로부터 농협지원사업비(명칭 사용료)나 배당금을 받는 건 아닌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금감원은 이로 인해 NH금융 계열사들의 자산 건전성이 위협받는 건 곤란하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매년 금융지주 순익의 50% 정도가 중앙회로 넘어가 농협의 지도·지원 사업과 경제사업 등에 투입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리한 수준은 아닌 듯합니다.
결국 농협중앙회 입장에서 보면 NH투자증권 인사 파동이 던진 과제는 얼마나 효율적으로 NH농협금융과 산하 계열사들을 관리하고 통제할 것인가로 귀결됩니다. 관리 통제가 제대로 안되기 때문에 인사권도 행사하지 못하고 계열사간 시너지 효과도 못내는 것입니다. 17년 만에 직선제로 자리에 오른 강호동 중앙회 회장이 제일 먼저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농협중앙회의 핵심인 금융지주와 금융계열사를 방치해서도 안되고 더 이상 관료 등 남의 손에 맡겨서도 안됩니다.
2012년 3월 출범한 NH농협금융지주는 벌써 12년이 넘었습니다. 이제는 제대로 주인 노릇을 해야 합니다. 주인이 주인답지 못하면 마름이나 머슴이 주인 행세를 하는 게 세상 이치입니다. NH농협금융의 주인은 정부도 아니고 관료도 아니고 금융전문가도 아닙니다. 주인은 210만명의 농민 조합원입니다.
박종면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