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회장이 알려주는 부의 비결 5가지

정주영이 인천 부두에서 막일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노동자 합숙소에는 빈대가 늘 우글거렸습니다. 힘들게 일을 하고 나서 밤에 고단한 몸을 누일라치면 빈대가 극성을 부려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주영과 몇몇 노동자들은 빈대에게 물리지 않으려고 커다란 식탁 위에 올라가 잠을 청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빈대들은 탁자 다리를 타고 올라와 악착같이 피를 빨아먹었습니다. 그러던 참에 정주영이 한 가지 꾀를 냈습니다. 탁자 다리에 물이 가득한 양푼 네 개를 담가놓고 그 위에 올라가 잠을 청한 것입니다.

빈대들은 더 이상 탁자를 오르지 못했습니다. 탁자에 오르려면 양푼을 지나가야 하는데, 아무리 빈대라도 익사할 일을 하겠는가. 그날 밤, 정주영은 오랜만에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이틀 밤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빈대들이 다시 그의 몸을 물어뜯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놈의 빈대들이 어떻게 탁자 위로 올라왔을까?’ 고민하던 정주영은 불을 켜고 빈대들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정주영은 깜짝 놀랐습니다. 빈대들은 탁자 다리로 기어오른 것이 아니라, 아예 장애물을 피해 벽을 타고 천장으로 올라간 다음 공중낙하를 시도한 것입니다. 정주영은 잠시 생각했습니다. “빈대도 저렇게 전심전력으로 뜻을 이루는데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빈대만도 못한 인간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정주영의 ‘빈대철학’입니다. 그 후 정주영은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이 일을 되새겼다고 합니다.

1. 신문은 무조건 읽어라
경부고속도로가 한창 진행 중이던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정주영과 담소를 즐기던 중 이렇게 물었습니다. “정 사장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돈을 많이 벌었습니까?” 그러자 정주영이 말했습니다. “처음부터 부자가 될 생각은 없었고, 세끼 밥을 먹기 위해 열심히 일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소(초등)학교밖에 안 나온 사람이 쟁쟁한 대학 출신들한테 일을 시키려면 힘들지 않습니까?” “저는 신문대학 나왔습니다.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글자 하나 빼놓지 않고 전부 다 읽었습니다. 그 속에 수 많은 교수님들이 계시지요” 그는 늘 새벽 4시에 일어나 신문부터 꼼꼼히 정독하시는 게 첫 번째 일과였습니다. 특히, 사설은 빼놓지 않고 보며 그날그날 세상의 가장 중요한 흐름을 파악했습니다. 정주영은 “신문을 열심히 보는 사람은 실력으로 따지자면 명문대학보다 한 수 위다”라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2. “이봐 해봤어?” 실행이 답이다.
“이봐 해봤어?” “왜 그렇게 자신감이 없어?” 정주영을 나타내는 말이며, 정주영 회장의 행동철학이기도 합니다. 그의 말은 직접 실행에 옮겨보지도 않고 탁상공론만 일삼는 사람들에게 가한 일침이기도 했습니다. 한 번은 정주영 회장이 세계에서 제일 큰 조선소를 짓겠다고 하자 모두가 “미친 짓이다”라며 반대했습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상황에서도 그는 혼자서 울산 미포만 모래사장 사진 한 장과 외국에서 빌린 유조선 도면 한 장을 들고 유럽으로 향했습니다. 외국 사람들이 “조선소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 거북선이 새겨져 있는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 들며 “배를 사주면 그 돈으로 조선소를 짓겠다”고 대답했습니다. 50년 지난 지금 현대중공업은 세계 1위의 선박 회사가 되어 있습니다. 그의 삶을 한 마디로 단정하기는 어려우나,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를 찾으라면 바로 ‘도전정신’입니다. 정주영 회장의 철학처럼 도전하고 실행하는 것만이 답입니다.

3. 진심을 전하라
한 번은 정주영이 공사를 따내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점심때가 조금 지난 오후였는데, 도로를 달리던 운전사가 정주영 회장을 태운 채 갑자기 차를 멈추었습니다. 그러더니 차에서 깔개를 가지고 내려 메카 궁전을 향해 절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 있던 사우디아라비아 차량들은 모두 다 차를 멈춘 채 아스팔트 위에서 같은 행동을 취했습니다. 이때 정주영은 메카를 향해 올리는 종교적 행위임을 알았습니다. 뒷자리에 타고 있던 그는 슬그머니 내려, 양복을 입은 채 아스팔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운전사가 하는 동작을 그대로 따라 했습니다. 운전사는 다른 나라에서 온 귀빈이 자신의 행동을 따라 하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운전사는 궁전에 돌아와 정회장의 행동을 나와프 왕자에게 보고했습니다. 이내 소문은 사우디아라비아 왕실 전체로 퍼졌습니다.

호텔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정주영은 이틀 후 궁전으로 파이잘 국왕을 만나러 갔습니다. 정주영을 만나자마자 파이잘 국왕이 물었습니다. “당신의 종교는 무엇입니까?” “특별히 종교는 없습니다만.” “당신이 공황에서 왕실로 오는 길에 아랍 사람들과 함께 ‘싸라’ 시간에 메카궁을 향해 절을 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무슨 뜻이오?” 그러자 정주영이 대답했습니다. “신의 이름이 다르고 믿는 방법이 다를 뿐, 아랍인이 믿는 알라신이나 제가 믿는 신이나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남들이 자기 신에게 경배하고 있는데 가만히 보고만 있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왕실 사람들은 모두 정주영의 말에 감동했고, 12억 달러에 달하는 큰 공사를 정주영에게 맡겼습니다.

4. 직관력을 키우고 현장에서 답을 구하라
사실 정주영은 사업을 할 때 심사숙고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감각에 의존하여 빠르게 결정하는 것이 그의 경영 스타일입니다. 여기서 감각이라는 말은 직관이나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말하며, 이것은 공상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정주영은 역발상에 천부적인 소질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유엔공원묘지 사업에서 엄동설한에 파란 잔디를 구할 수 없었던 정주영은 단방에 묘안이 냈습니다.

바로 잔디 대신 겨울에 싹이 돋는 보리를 묘지에 심는 것입니다. 그는 책상에서 연구하는 스타일이 아니었습니다. 몸으로 뛰면서 쉽고 단순하게 생각해 해답을 찾았습니다. 이론적으로 배운 것이 너무 많은 지식인들은 때로 지나치게 형식에 얽매인 나머지 포화상태인 지식 속으로 파묻혀버린다고 보았습니다. 정주영은 현장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그의 아이디어는 현장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5. 몰입하는 힘을 길러라
정주영은 어려운 살림살이와 소학교밖에 다니지 못해 가진 것이라고는 맨주먹이 전부였지만, 언젠가는 가난에서 벗어나겠다는 집념으로 모든 일에 몰입했습니다. 정주영은 해결해야 할 중대한 사안이 있으면 며칠씩 고민하고 그것도 모자라 밤을 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집중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아하’하는 순간을 경험할 때가 많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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