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치질도 척척'... 초등학생들이 직접 집을 지으며 배우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스스로 무언가 만들 일은 거의 없다. 각자 영역에서 일한 대가로 필요한 물품을 사면 되기 때문이다. 취미로 간단한 가구·모형을 조립하는 게 아니라면 건축 행위도 말할 것 없다. 그런데 아직 조그마한 어린이들이 키의 2배쯤 되는 건축물을 직접 지어올리는 곳이 있다. 어른 도움을 받긴 하지만, 못질부터 바닥 시공까지 스스로 한다. 지난 4일 산청 도산초교를 찾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집짓기 체험' 현장을 둘러봤다.

도산초교 학생 11명과 꿈을짓는학교 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4명이 지난 4일 집짓기 체험학습 전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창우 기자

◇꿈을 짓는 아이들 = "드림! 빌더스!" 아직 볕이 뜨겁지 않은 오전 9시 45분. 도산초교 정문 앞에서 어린이 11명과 어른 4명이 모여 구호를 외쳤다. 이 학교 고학년(4~6학년) 학생들과 '꿈을짓는학교' 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들이다. 구호 뜻은 꿈을 지어보자는 뜻이다. 아이들은 저마다 안전모, 장갑, 건축현장용 작업 조끼·벨트 등을 착용했다. 작업 조끼에는 삼각자·줄자·망치·수평계 등 다양한 장비가 들었다.

매주 화요일은 아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집짓기'를 체험하는 시간이다. 학교 정문 오른쪽 나무데크 위 2평 남짓한 '건축물'이 눈에 들어왔다. 편백나무로 마감한 외벽에는 커다란 통창이 났고, 검은색 삼각 지붕도 올라갔다. 지난 8주간 공정 일정에 따라 아이들이 직접 지어올린 결과물이다. 망치질, 톱질 등 공구 활용도 어른들 지도 하에 아이들이 손수 해냈다. 이날 오전 공정은 바닥 마감과 외부 페인트칠이었다.

도산초교 학생들이 직접 지은 2평 건축물 내부 바닥에 나무타일을 끼워넣고 있다. /이창우 기자

4~5명의 아이들은 집 내부로 들어가 단열재 위에 나무타일을 깔았다. 먼저 어른들이 타일을 적절한 크기로 잘라오면, 아이들은 타일 사이 홈을 이어붙여 한 줄씩 바닥에 끼워넣었다. 한 아이는 이미 끼운 타일이 고정되도록 위에서 무게추 역할을 하고, 나머지 아이들은 시공에 열중했다. 끼워넣는 타이밍이 맞지 않거나, 타일 사이 공간이 들뜨는 등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이내 전문가 작업한것처럼 완벽한 결과물이 나왔다.

같은시간, 외부에서는 3명의 아이들이 나무 외벽에 '오일스테인' 페인트를 발랐다. 나무 벽이 곰팡이나 습기로 훼손되지 않도록 방지하는 작업이다. 솔질에 열중하던 양예리엘(10) 학생은 "역시 망치질이 제일 재미있는 것 같다"라며 "나중에 스스로 집 한 채 지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6학년 담임 이석희 교사는 "체험학습이 보통 일회성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은 데 이 수업은 12주 과정이고, 성취물을 직접 볼 수 있는 형태다 보니 아이들 호응도가 좋다"고 말했다.

도산초교 학생들이 직접 지어올린 2평 건축물 외벽에 페인트칠을 하고 있다. /이창우 기자

◇건축 체험에서 배우는 '공동체' 가치 = 이 체험 학습은 사회적 협동조합 꿈을짓는학교가 운영하는 12주 과정이다. 이제껏 30여 학교 학생들과 다양한 형태의 공간을 지어왔다. 산청군청소년상담복지센터가 이런 작업을 눈여겨보다 도산초교와 협동조합을 연결했다. 조미애 상담사는 "스마트폰·게임 탓에 집중력을 기르기 힘든 시대이고, 아이들을 상담하다 보면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힘이 크게 떨어짐을 느낀다"라며 "긴 호흡의 체험 과정에서 본인의 한계를 깨부수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집짓기는 생경한 경험이지만, 그 안에서 얻어가는 것들이 적지 않다. 학생들은 커나갈수록 정적인 공간 안에서만 머물거나 성적으로 우열을 가리는 경쟁에 젖어들게 되는데, 집짓기는 한정된 울타리 밖 가치들을 깨닫는 계기를 제공해준다.

구관혁 꿈을짓는학교 사회적협동조합 대표는 "건축은 누구 한 사람이 잘해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라 모두가 참여해서 해내는 작업"이라며 "상위 10% 아이들만 칭찬받고 나머지는 열패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 각자 본인의 역할을 가지면서 집단 성취감을 느끼게 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구 대표는 "'집을 직접 지어봤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부러움을 한몸에 샀다며 연락오는 졸업생들도 많다"라며 "아이들의 인생에서 하나의 자부심으로 자리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구관혁 대표와 도산초교 아이들이 집짓기 현장체험 직후 인성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이창우 기자

현장체험을 한 뒤에는 매번 1시간 가량 인성 교육을 병행한다. 이날 교육 주제는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였다. 스스로의 '인생'을 설계하는데 긍정적인 마음,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 겸손한 태도 등 내면의 아름다움을 기초로 다져야 한다는 내용이다. 평범한 이야기지만, 그동안 체험한 작업들을 자연스레 연상하도록 짜였다. 데크를 깔고, 골조를 올리고, 지붕을 얹는 과정에서 기초를 튼튼히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 체득했기 때문에 이해가 쉽다.

건물이 완성되는 12주째 수업 때는 준공식이 열린다. 아이들이 직접 가위로 테이프를 자르며 자축하는 행사다. 도산초교는 향후 공간 활용 방안도 아이들과 함께 고민해나갈 계획이다. 6학년 남유이(12) 학생은 "직접 지은 집안에서 언니 동생들하고 보드게임을 하며 놀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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