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철옹성 무너뜨린 팝의 여제
![2일 그래미 어워즈에서 수상한 비욘세가 딸과 포옹하며 기뻐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2/08/joongangsunday/20250208003711864bffn.jpg)
대신 비욘세가 컨트리 부문에서도 수상했다는 게 놀랄 일이다. 컨트리 음악은 백인들이 철조망을 높게 쳐둔 텍사스 목장 같은 장르다. 비욘세가 ‘레모네이드’ 앨범에서 ‘대디 레슨스’라는 컨트리 곡을 내놓았을 때 그래미는 이 곡을 컨트리 음악 카테고리로 받아주지 않았다. 그래미는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올해 그래미는 비욘세 ‘카우보이 카터’에게 컨트리 앨범상을 수여했다. 1964년 해당 부문이 신설된 뒤 처음으로 흑인이 받았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상을 린다 마텔에게 바친다”고 했다. 미국 유명 컨트리 라디오 방송 그랜드 올 오프리에서 공연한 첫 흑인 여성이다. 비욘세는 주석(註釋) 자리로 밀린 흑인 여성을 컨트리 음악 역사의 본문에 다시 썼다.
‘백인 남성들의 잔치’라는 비판을 받았던 그래미가 2010년대 후반 들어 변화를 모색한 결과다. 61회 그래미 어워즈(2019년)는 전환점이었다. 여자 가수 알리샤 키스가 단독 진행을 맡았다. 4개 주요 부문상(올해의 레코드·앨범·곡·신인상) 중 2개를 여성이 수상했다. 나머지 2개도 미국 사회를 비판하는 가사로 유명한 흑인 래퍼 차일디시 감비노에게 돌아갔다.
올해 그래미도 그런 맥락 안에 있다. 후보 발표 때부터 감지됐다. 올해의 레코드상과 앨범상 후보 8개 팀·개인 중 6개 팀·개인이 여성 솔로 뮤지션이었다. 지난해 ‘파워 퍼프 걸’로 불리며 팝 시장에서 우뚝 선 채플 론, 찰리xcx, 사브리나 카펜터가 모두 포함됐다. 이들은 그래미에서도 ‘엣지’를 잃지 않았다. 채플 론은 올해의 신인상 수상 소감에서 “레이블은 뮤지션에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임금과 건강 관리를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2014년 데뷔한 중고 신인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래미 후보에 투표하는 사람들이 음악 산업 관계자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과감한 소감이기도 했다. 찰리xcx는 하늘에서 속옷이 떨어지는 가운데 춤을 추는 공연을 보여줬다. 뉴욕타임스는 “최고의 온스테이지 준(準)레이브 파티”라고 평가했다.
이번 그래미는 그런 식으로 다양성과 포용을 상징하는 그림을 많이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위켄드의 ‘그래미 복귀’는 음악 팬들이 가장 반길 만한 순간이었다. 그는 2020년 앨범 ‘애프터 아워스’로 이력의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그래미는 어느 부문 후보에도 그를 올리지 않았다. 그는 그래미를 ‘보이콧’하고 떠났다. 흑인 차별이라는 말도 나왔다. 이번 시상식에서 하비 메이슨 주니어 그래미 회장은 위켄드 무대에 앞서 “지난 몇 년간 그래미를 향한 비판을 귀담아 듣고, 달라지려 했고, 행동에 옮겼다”고 했다. 그래미는 시상식이면서, 그 자체로 메시지를 품고 있는 쇼이기도 하다.
![록 앨범상을 받은 롤링 스톤스를 대신해 앤드류 와츠가 수상하며 기뻐하고 있다. [AP=연합뉴스]](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2/08/joongangsunday/20250208003713246iqmv.jpg)
그렇게도 지난해 들을만한 록 앨범이 없었을까. 아니다. 뱀파이어 위켄드의 ‘온리 갓 워즈 어버브 어스’는 밴드의 앞선 앨범 사운드를 차곡차곡 쌓아올린 걸작이었다. 미국 음악 잡지 피치포크는 “밴드가 가장 잘하는 것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요약했다”며 지난해 최고의 신보로 꼽았다. 그러나 그래미는 록(얼터너티브 포함) 부문에 이 앨범을 후보로도 올리지 않았다.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엔 “그래미와 상관 없이 이 앨범을 계속 사랑할 것”이라는 글이 있었다. 상은 어쩌면 도착하지 않는 연서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설렘이 없었던 건 아니다. 실컷 그래미 상 얘기를 하고 이렇게 말해서 민망하지만, 수상 여부와 상관 없이 좋은 음악은 그냥 좋은 음악이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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