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홍천, 경기 양평에 공유별장 짓는 스테이빌리티
세컨하우스 열풍이다. 과거 소수 부유층의 사치재로 여겨지던 별장이 이제는 누구나 갖고 싶어하는 대상으로 떠올랐다. 세컨하우스를 주제로 한 예능 프로그램이 생기는가 하면, 주중 5일은 도시에서 주말 2일은 세컨하우스에서 보내는 오도이촌을 꿈꾸는 이들도 늘고 있다. 올해 초 50년 만에 별장 중과세 규정이 폐지되기도 했다.
정민혁(33) 스테이빌리티 대표는 일찍이 이런 흐름을 읽고 별장 하나를 여럿이 소유할 수 있는 공유별장 서비스를 내놨다. 별장 소유권을 여러 명이 나눠 가져 비싼 매입비, 관리비 등을 분담할 수 있다.
지난 2월 강원 홍천의 별장 ‘밀리언 그라운드’ 공동 소유자 12명을 모았는데 한달여 만에 완판이 됐다. 구매 명단에는 대기업·외국계 기업 임원과 국내외 유명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올랐다. 이 별장은 12월15일 문을 열 예정이다. 인기에 힘입어 10월31일부터는 경기 양평에 대지면적 1531m²(463평) 별장의 공동 소유자를 모집한다. 정 대표를 만나 창업기와 공유별장의 미래를 들었다.
◇창업만 다섯번째, 정착지는 빈집 리모델링과 공유별장
스테이빌리티가 운영하는 공유 별장 ‘밀리언 그라운드’는 별장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모아 지분등기 형태로 별장 소유권을 판매한 후 일정 기간 공유하는 방식이다. 같은 별장의 소유자들은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시간이 겹치지 않게 예약해 이용할 수 있다. 별장 소유자가 이용하지 않는 날은 일반 여행객 대상으로 숙박 예약을 받는다.
정민혁 대표는 경북대 09학번으로 경제통상학을 전공했다. 아이폰이 한국에 상륙했을 때 대학생 새내기였다.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의 다큐멘터리를 수십 번 반복해 보며 창업의 꿈을 키웠다. 2014년 스마트벤처창업학교 지원사업에 선정된 것을 계기로, 실시간 순찰 관리 모바일 앱으로 첫 창업을 했다. 당시만 해도 종이에 손으로 쓰던 경비, 순찰 일지 등을 스마트폰으로 관리할 수 있게 했다. 대기업 연수원, 공항, 경찰서 등에서 필수 앱이 될만큼 인기를 얻었지만 수익화에 실패하며 2년 만에 서비스를 접어야 했다.
내친 김에 두번째 사업에 도전했다. 대학생 대상 익명 커뮤니티 앱이었다. 앱을 홍보하기 위해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 다양한 콘텐츠를 올렸는데, 이게 이외의 결과를 낳았다. 페이스북 페이지 팔로워수가 10만명을 넘어서며 광고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세번째 사업인 광고대행업으로 직원 3명이서 한해 10억원이 넘는 매출을 낼만큼 잘나갔다. 하지만 이마저 2년 만에 관뒀다.
- SNS 광고 사업이 꽤 잘나갔는데, 왜 그만뒀나요?
“안과, 성형외과 등에서 광고 문의가 많이 들어왔는데요. 2018년 페이스북 등 SNS에 게재되는 의료광고도 사전심의가 필수가 되면서 타격을 입었습니다. 계속해서 광고대행업을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내 일이 아니란' 생각을 하던 참이었거든요. 스물 일곱, 여덟 때 또래에 비해 큰 돈을 벌어 여행을 자주 가고 외제차도 몰고 그랬지만 맘 속은 공허했어요. ‘사업가병’이었던 것 같아요. 창업자가 초반에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면 자만심이 가득해진다 하더군요. 하지만 그 다음 계획은 보이지 않는 상태인 거죠.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떠난 스페인 여행에서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어요. 건축가 가우디가 사후에 꿈을 이루는 모습을 보고 ‘나도 진짜 꿈을 찾자’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광고대행업에 이은 네번째 창업은 사진관이었다. 사진 작가인 친구가 시작했는데, 정 대표가 돕기로 한 것이다. ‘복고웨딩’을 주제로 한 사진관은 금세 인기를 얻어 경북대에서 시작해 부산 광안리, 서울 홍대와 가로수길까지 확장을 했다. 하지만 2019년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면서 매장을 정리해야만 했다.
다음 창업 아이템은 ‘빈집 리모델링’이었다. 도심공동화 영향으로 빈집으로 방치된 집은 동네 경관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지역 쇠퇴화를 가속화한다. 빈집을 살아있는 공간으로 리모델링하면 지역을 살리면서 공간 수요를 창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실패를 연달아 맛봤는데 또다시 창업을 했네요.
“새 사업을 할 때마다 배움이 있었어요. 경비앱을 만들었을 땐 수익화가 중요하단 걸 깨달았고, 광고사업과 사진관을 할 땐 ‘콘텐츠’ 자체의 힘이 중요하단 걸 배웠습니다. 광고비를 많이 태우지 않아도, 알맹이 콘텐츠가 좋으면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걸요. 배우는 게 있다는 생각에 좀 힘들어도 바로 털고 일어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인테리어 사업이라니 좀 갑작스럽습니다.
“사진관을 할 때 대표인 친구랑 반셀프 인테리어를 했어요. 인테리어 업체에 의뢰를 하면 돈이 많이 드니까 직접 했죠. 페인트나 벽지는 저희가 하고, 어려운 작업은 목수를 직접 불러서 했습니다. 매장을 확장하면서 점차 저희가 직접 하는 비중이 늘었고요. 마지막 매장인 가로수길만 인테리어 업체를 끼고 했는데, 코로나 직격탄을 맞아 버렸네요. 어쨌든 어깨 너머로 배운 상업 공간 인테리어 실전 지식을 빈집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데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 어떻게 빈집을 활용하기로 했나요.
“2018년 같은 학교 건축공학과를 나온 최상찬 이사와 빈집 리모델링 사업을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포트폴리오를 쌓기 위해 직접 대구 지역의 빈집을 찾아다니며 카페로 만드는 작업부터 시작했죠. 더 이상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집을 찾아서 매입한 후 뜯어고쳤습니다. 그랬더니 사용하지 않는 상가 등의 폐공간을 리모델링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더군요. 코로나 사태로 국내여행 수요가 늘면서 독채, 풀빌라 등의 숙소로 작업 반경을 확장했습니다. 제주도 독채 풀빌라 ‘달리야드’와 경주 한옥 풀빌라 ‘사시산색’이 저희의 대표적인 작품이죠”.
- 비전공자라 쉽지 않았을 거 같은데요.
“네 시행착오를 겪었죠. 그간 제가 했던 사업에선 늘 돈을 벌었는데, 인테리어 사업을 하면서 한동안 돈이 없어서 고통을 겪었으니까요. 초반에는 견적을 잘못 내서 적자 보고 공사를 했어요. 1억원은 받아야 하는데 9000만원만 받은 식이었죠. 몇개월 간 적자가 누적 돼서 지인에게 돈을 빌리고 은행 대출도 많이 받았어요. 빚만 3억~4억원이 됐을 땐 포기하고 싶었어요.”
- 그런데 포기를 안 했네요.
“누가 그러던데 사업가와 사기꾼은 종이 한장 차이래요. 결과가 성공이면 사업가이고 실패면 사기꾼인 거죠. 누군가 날 믿고 인테리어 해달라고 맡긴 건데 포기하면 사기치는 거잖아요. 다행히 회사 직원 분들이 저를 많이 믿어줬어요. 제가 어떻게든 영업해서 한달에 100건씩 건축 문의가 쌓이게 만들었거든요. 고객도, 직원도 제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보려는 모습을 좋게 봐준 거 같아요.
시행착오에서 수업료를 내면 가장 많이 배우는 건 대표입니다. 공사 잘못해서 AS 한번 해주면 500만원 나가는 건 순식간인데요. 500만원이면 직원들이랑 제주도 가서 워크숍 할 수 있는 돈이에요. 대표는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니 하나의 실패에도 교훈이 뼈에 각인돼요.”
◇공동 소유권만 구매하면 매입비, 관리 부담 없어
2021년 7월 사업 확장을 위해 스테이빌리티 법인을 설립했다. 비그로브, 사시산색, 달리야드 등 스테이빌리티가 리모델링한 공간은 입소문이 나서 예약을 시작하면 금세 마감된다. 풀빌라 건축으로 경험을 쌓으면서 새로운 수요를 찾았다.
5일씩 숙소에 머물다 가거나, 같은 숙소를 여러번 방문하는 여행객을 발견한 것이다. ‘공유 별장’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휴식을 위해 값비싼 돈을 주면서 숙박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별장 수요가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 기존 별장 개념과 무엇이 다른가요?
“별장을 보유한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별장을 실제로 이용하는 기간이 1년에 한 달 정도입니다. 11개월은 텅 비어있는 겁니다. 비싸게 주고 샀는데 이용일수가 너무 적으니 결국 별장을 없애게 됩니다. 이런 문제를 발견하곤 폐공간을 별장으로 리모델링 한 후, 여럿이서 공유하게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별장 소유권을 나눠 가지면서 비용도 분담하는 형태로요.”
- 별장을 공유하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별장이 지어질 장소와 예상 디자인을 구현한 3D 조감도를 공유해 선착순 신청을 받습니다. 1년간 별장을 공동 소유할 12명의 인원을 모집해 출자금을 모으죠. 이후 건축 인허가를 받고 건축 면허를 보유한 인부들이 공사합니다. 완공 후 소유자들은 전용 앱을 이용해 원하는 기간에 예약한 후 별장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공유별장 소유권은 부동산처럼 다른 사람에게 팔 수도 있어요.”
- 별장 소유자는 어떤 이점을 누릴 수 있나요.
“혼자서 별장을 소유할 때 드는 물리적 시간과 비용을 크게 절약할 수 있습니다. 토지, 매물을 찾는 데 드는 시간과 관리비, 청소비까지 비용이 어마어마하죠. 별장을 공유하게 되면 12명이서 별장 매입비를 나눠내니까 비용 부담이 줄어듭니다. 또 저희가 청소, 운영, 관리 등 모든 걸 도맡기 때문에 별장 소유자는 따로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아파트로 치면 저희가 관리사무소의 역할을 수행해주는 거예요.”
- 수익 구조는요.
“건축주로부터 신축 혹은 리노베이션 작업에 대한 건축비를 받습니다. 거래 수수료에서도 수익이 발생하죠. 별장 소유자들에게는 출자금을 받고요. 별장 소유자가 이용하지 않는 기간에는 저희가 일반 여행객 대상으로 예약을 받아서 수익을 내기도 합니다.”
강원 홍천에 이어 경기 양평에 지을 공유별장의 신청을 받고 있다. 강원 홍천, 경기 양평 모두 서울에서 차로 1시간30분 거리다. 사람이 많지 않으면서 불편하지 않은 입지조건을 따졌다.
‘밀리언 그라운드 양평’의 건축면적은 173.47m²(52.47평)이다. 사계절 온수가 나오는 수영장, 바비큐장, 와인바, 테라스, 요가존 등 고급 풀빌라나 리조트에서 볼 수 있는 시설을 갖출 예정이다. 정 대표는 “다른 데서 경험하기 힘든 감성적인 인테리어가 특징”이라며 “동급 호텔의 경우 1박에 최소 200만~300만원하는 고급 숙박시설”이라고 했다.
밀리언 그라운드 양평을 한 명이 부담하는 가격은 1억원대다. 서울 웬만한 오피스텔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최고급 별장을 소유하는 것이다. 정원인 12명을 모두 모집하면 공사에 착수할 계획이다. 내년 11월 초 준공, 11월 말 오픈이 목표다.
- 언뜻 리조트 회원권과 비슷해보이는데요.
“리조트 회원권의 경우 연간 회원권을 사고도 숙박비가 1박에 30만원, 많게는 100만원 넘게 들어요. 실제 사용 일수는 한해 10일 내외이고요. 저희 공유별장의 경우 별장 소유자들에게 30박을 우선 예약할 권한이 있어요. 10박 사용료는 없고 이후 20박만 추가 숙박료가 있어요. 무엇보다 리조트와는 숙박 경험이 다릅니다. 별장을 지을 때마다 이 공간만 가질 수 있는 인테리어를 고민해요.”
◇”여러 장점이 모여 경쟁력을 갖춘 게 우리 특장점”
2022년 한해 발생한 건축 프로젝트 수주액만 40억원이다. 연 매출액은 23억원. 같은 해 4월에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가 주최한 창업경진대회 ‘디데이’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대구경북벤처기업인상도 받았다. 누적투자금액은 공개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투자에 참여 한 곳은 수이제네리스파트너스, 인포뱅크 등이 있다. 우아한형제들 창업자 김봉진 의장는 스테이빌리티에 개인적으로 연락해 투자했다.
- 사람들이 스테이빌리티가 만든 별장을 찾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제로투원’이라는 책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경쟁하지 말고, 독점하라’. 독점할 수 있는 조건은 여러 장점을 교집합 했을 때를 말합니다. 디자인만 잘하는 곳, 건축만 잘하는 곳은 많겠지만 저희는 디자인, 건축, 광고, 마케팅, 관리와 운영 등을 전부 평균 이상은 잘하는 회사예요. 각 분야 다 잘하는 회사 찾기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저희는 여러 장점들이 교집합이 돼서 숙소 건축 시장에서 경쟁력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장점은 저희 회사에서 각기 잘하는 사람이 모여서 이룬 것이고요. 저는 인테리어 건축 분야에서는 대표라는 이유로 쉽게 아는 척 하지 않습니다. 저는 마케팅, 경영에 강점이 있는 거고 다른 임직원분들은 인테리어와 건축에 특장점이 있는 거니까요.”
- 코로나 사태가 끝났지만 숙박업은 여전히 어렵다고 합니다.
“‘공유 별장’은 숙소 시장이 커지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아직은 생소하지만 곧 급격히 커질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없던 아이템’으로 창업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숙소 사업은 30년 전에도 있던 시장입니다. ‘여행’이라는 건 금전적인 요소보다 시간 제약이 더 커요. 가족여행을 할 때 예산보다 시간부터 맞추는 게 우선이죠. 결국 돈을 좀 더 주더라도 가고 싶은 공간, 가치 있는 숙소를 찾게 됩니다. 인원수대로 N분의 1 하면 되니까 부담은 덜어지고요. 공유 별장 사업은 이런 맥락에 부합하죠.”
- 스테이빌리티의 앞으로 계획은요?
“공유별장 ‘밀리언 그라운드’ 멤버십이 있으면, 저희가 지은 다른 숙소나 별장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등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 있어요. 활성화되지 않은 지역을 유명 별장, 숙소 때문에 방문하면서 그 지역이 새로운 관광지가 되는 것이죠. 요즘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님이 음식으로 지역을 살리고 계신데, 저는 숙박문화로 일조하고 싶습니다.”
/이연주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