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투매에 전쟁 선포한 日…美와 환율 방어 연합전선 꾸린다
다카이치 총리·日銀 총재 등 만나
엔화 약세 대응책 집중 논의할 듯
지난달 엔·달러 환율 160엔 뚫자
日당국 5조엔대 매수해 환율 개입
美 국채매도 차단·금리인상 압박
회담 앞서 에너지 등 의제 조율도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다음 주 일본을 방문해 엔화 가치 ‘추락’을 막기 위한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미국이 최근 엔·달러 환율이 160엔을 넘을 정도로 엔화 가치가 하락하자 최소 수십조 원 규모의 시장 개입을 단행한 일본과 공조에 나서는 것이다. 이달 14~15일로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 직전에 미일 간 의견을 먼저 조율하려는 목적도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7일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베선트 장관이 이달 11일부터 3일간 일본을 방문한다고 보도했다. 베선트 장관은 방문 기간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와 가타야마 사쓰키 재무상,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 등과 만날 예정이다. 닛케이는 양측이 엔화 약세 대응, 희토류를 비롯한 핵심 광물, 에너지 등 경제안보 현안과 이란 문제 등을 의제로 다룰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 가운데 엔화 약세 대응이 핵심 안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일본 당국이 엔화 가치를 부추기는 투기적 매도와 ‘전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환율(종가 기준)이 160.41엔까지 치솟고 다음 날인 30일에는 장중 160.70엔으로 더 뛰며 심리적 저항선인 160엔이 무너지자 가타야마 재무상은 “단호한 조치를 취할 시점이 가까워졌다”며 포문을 열었다.
그의 발언 직후 30일 환율 종가는 156.59엔으로 전날보다 2% 이상 뚝 떨어졌다. 시장에서는 일본 외환 당국이 5조 엔(약 46조 4625억 원)에 달하는 엔화 매수로 환율 개입에 나섰다고 추정했다. 일본 당국이 환율 개입을 단행한 것은 2024년 7월 이후 약 1년 9개월 만이다. 닛케이는 이달 1일부터 전날인 6일까지 이어진 연휴 기간을 이용해 최소 세 차례 환율 급락(엔화 가치 상승)이 발생했다고 짚었다. 전날에는 환율이 한때 155엔대로 2개월여 만에 엔화 가치가 그나마 회복됐다.

일본 당국이 개입해 막을 정도로 엔화 가치는 강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0.75%로 30년 만에 최고로 인상했지만 환율은 150엔대 후반으로 오히려 높아졌다. 인상 이후에도 금리는 여전히 0%대여서 엔화 매수 수요를 자극하기에는 역부족인 탓이다. 물가 상승률을 반영하면 실질금리는 여전히 마이너스이기 때문이다. 안전자산이던 엔화의 위상이 이란 전쟁의 여파로 내려간 것도 한 원인이다. 요미우리신문은 “세계적인 위기 발생 시 엔화를 매수하는 움직임은 이제 과거의 일”이라고 분석했다.
엔저는 미국에도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일본 기준금리 인상 후에도 엔저가 계속되면서 미 국채에 투자했던 일본 투자자가 국채를 팔고 국내로 돌아올 수 있다. 글로벌 헤지펀드 역시 이 같은 흐름을 예상하고 미 국채를 먼저 던지게 된다. 닛케이는 “일본의 기준금리 인상과 엔저가 동시에 진행된다면 투기적 움직임을 강화시켜 미국 국채 매도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래서 미국은 지난해 9월 ‘과도한 변동성을 제한하는 목적에 한해’ 일본의 환율 개입을 승인하는 합의를 맺었다. 올 1월 미국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외환 딜러를 대상으로 이례적인 ‘레이트 체크(환율 점검)’를 실시하며 엔화 안정을 돕기도 했다. 베선트 장관이 일본을 찾는 것 자체가 엔화 투매를 주도한 기관투자가에 ‘환율에 신경 쓰겠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베선트 장관이 일본을 찾는 이유에는 공조뿐만 아니라 개입하려는 목적도 크다. 일본 정부가 환율 개입 ‘실탄’을 마련하기 위해 미국 국채를 대량으로 매도하면 국채 가격 하락(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는 일본 정부가 30회가량 시장에 개입할 수 있는 여력을 갖추고 있다고 봤다.
이 때문에 미국은 일본의 금리 인상이 엔저를 되돌리기 위한 근본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압박하고 있다. 일본은행도 올해 금리를 인상한다는 기조지만 다카이치 정부의 속내는 복잡하다. 기존 국가부채가 쌓여 있는 상태에서 확장재정을 추구하고 있는데 금리를 올리면 정부의 이자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조양준 기자 mryesandn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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