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모레퍼시픽이 지난해 프랑스 향수 브랜드 '구딸'의 현지법인을 청산한 데 이어 최근 지식재산권(IP) 매각을 결정했다. 구딸은 글로벌 향수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아모레퍼시픽이 처음으로 인수합병(M&A)한 해외 브랜드였지만 니치향수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해외법인의 재무구조 개선이 어려워지면서 결국 매각을 선택했다.
19일 아모레퍼시픽에 따르면 회사는 최근 글로벌 향수 기업 인터퍼퓸과 구딸 IP 양도 계약을 체결했다. 2011년 341억원에 인수한 지 14년 만이다. 이에 따라 유럽법인의 글로벌 상표권, 도메인, 사업 관련 노하우 등은 인터퍼퓸에 넘어가게 된다. 회사 관계자는 “인터퍼퓸에 구딸 라이선스 이용료를 지급하고 브랜드 사업을 지속할 예정”이라며 “인터퍼퓸이 다수의 글로벌 향수 브랜드 상표권을 보유한 만큼 구딸의 브랜드 가치를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1981년 프랑스에서 설립된 구딸은 당시 아모레퍼시픽이 진행한 첫 M&A 사례로 주목 받았다. 회사는 1997년부터 20년간 운영했던 향수 브랜드 ‘롤리타렘피카’의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향수 라인업을 다각화하고 글로벌 시장을 확대하려는 전략을 세웠다.
이 같은 기대와 달리 국내외 니치향수 시장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구딸 프랑스법인은 설립 이후 투자비용 등의 영향으로 2012년부터 지속적인 적자를 기록했다. 최근 5년간(2019~2023년) 평균 순손실만 약 34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프랑스법인을 청산하고 유럽법인으로 통합했으나 재무구조 개선이 어려워지면서 결국 IP 매각을 결정했다.
업계에서는 아모레퍼시픽이 일찍 진입한 향수 시장에서 안정적인 라인업을 구축하지 못한 것을 아쉬운 부분으로 평가한다. 회사는 1980년부터 향료연구팀을 운영하며 향수 시장에 뛰어들었고, 롤리타렘피카 계약 종료 이후 2019년에는 구딸 리브랜딩과 자체 브랜드 향수 라인업 강화에 집중했다. 2021년에는 창사 이후 첫 향수 전담 사업부인 ‘프라그랑스팀’을 출범시켰다. 그러나 니치향수를 겨냥해 론칭한 ‘필보이드’가 2년 만에 사업을 종료하는 등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현재 회사의 주요 향수 브랜드로는 구딸, 헤라퍼퓸, 롱테이크퍼퓸 등이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아모레퍼시픽이 향수 시장에 일찍 뛰어들었지만 기초 스킨케어나 색조화장품과 비교했을 때 핵심 사업 분야로 자리 잡지 못했고 공격적인 투자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최근 향수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상황은 아니어서 스킨케어나 설화수 같은 핵심 브랜드에 집중하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니치향수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러 경쟁이 치열해진 것도 구딸의 입지를 좁힌 요인으로 분석된다. 2010년대 이후 조말론, 르라보, 메종프란시스커정 등이 전성기를 이끌었고 최근에는 탬버린즈, 논픽션 등 K뷰티 기반의 개성 있는 향수가 급부상하고 있다.
국내 패션·뷰티 업계도 향수 사업을 적극 확대하는 흐름에서 구딸이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딥티크, 바이레도, 산타마리아노벨라 등 14개 향수 브랜드를 보유했으며 한섬과 LF는 각각 ‘리퀴드퍼퓸바’와 ‘조보이’라는 니치향수 편집숍을 운영하고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니치향수가 국내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시장이 급성장하며 다양한 브랜드가 생겨났지만, 현재는 인지도가 높은 일부 브랜드만 남아 있다”며 “구딸 역시 국내 시장에서 입지가 좁아진 상황에서 브랜드력이 강한 글로벌 기업에 맡겨 부담을 줄이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유리 기자
Copyright © 블로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