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형의 여행 '게르를 짓고 이동하는 유목민처럼'_타로카드럭키박스_김소라
2018년도 여름 한 달 간 중학생 아들과 몽골 여행을 한 적 있습니다. 한 달 정도 여행을 하기 위해 특별히 계획을 세운 것은 없었어요. 항공권과 비자를 준비했고, 한 달간 머물 수 있는 울란바타르 시내의 게스트 하우스 한 곳을 예약한 것이 전부입니다. 세부적인 여행 일정은 몽골에 가서 정하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아이가 초등학생 시절 여름방학과 겨울방학마다 긴 여행을 떠났고, 학원비 대신 여행에 돈을 썼습니다. 단 한 번도 학습지와 사교육 학원을 경험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경험을 하는 아이로 자라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중학생이 된 아이는 몽골여행을 떠나기도 전부터 가기 싫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이제는 여행보다 게임이 좋고, 집에서 친구들과 놀고 싶다고 했습니다. 엄마와 방학마다 떠나는 여행도 지겨워졌다고 하니 얼마나 제가 좌절감이 컸겠어요. 이게 다 누굴 위해서 하는 일인데...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와의 여행은 좀더 특별하다고 생각되었고, 어쩌면 아이와 청소년기 떠날 수 있는 마지막 여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었죠. 몽골은 도시화된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수도 울란바타르 이외에는 대부분 초원과 사막의 지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말, 양, 염소, 낙타 등 가축이 사람보다 많습니다. 도로 사정도 안 좋고, 숙박시설도 낙후되어 있습니다. 매일 이동하는 여행을 하면서 게르에서 잠을 자고, 유목민처럼 살아보았습니다. 처음에는 그토록 몽골 여행이 싫다는 아이는 막상 한 달 간의 몽골 여행이 끝난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몽골 여행은 잊을 수 없을 것 같아. 스무 살 넘으면 꼭 몽골을 다시 가보고 싶어. 사막 여행 한 것, 초원에서 별 본 거. 말도 신나게 타 보고, 자연 속에서 있었던 게 제일 좋았어. 사람들도 친절하고. 힘들면서도 재밌다는 게 이런 건가봐!”
몽골 여행은 아이와 저에게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을 알려준 시간이었습니다. 과거 몽골 사람들은 낙타 두 마리 정도에 짐을 싣고 초원을 이동하면서 유목생활을 했습니다. 떠나는 것은 언제나 자연스럽고 땅은 소유가 아닌 잠시 빌려쓰는 곳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새로운 곳으로 떠나고 이동하는 삶을 반복하면서 간소한 삶을 살아갑니다.
MBTI 성격유형에서 ‘어떤 라이프 스타일을 선택하는가?’에 대해서 두 가지 방식의 차이를 갖고 살아간다고 이야기합니다. 판단형과 인식형입니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의 차이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판단형은 결정과 판단을 내리는 본능적 충동이며, 인식형은 개방적으로 열린 자세를 취하며 판단을 유보합니다. 판단형은 결정된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일단 계획을 세우면 충실하게 밀고 나가는 편이며, 인식형은 일정 자체를 못 견뎌하면서 구속과 규율을 부자연스럽다고 여깁니다. 어떤 하나의 유형이 옳다고 말할 수 없기에 ‘라이프스타일’이라고 이름 붙여본 것입니다.
몽골여행을 하고 난 후 우연히 한 권의 그림책을 접했습니다. 몽골 작가가 그리고 쓴 『나의 집』이라는 그림책입니다. 유목민 가족이 수백마리의 양, 염소, 말 등을 데리고 이동하면서 살아가면서 그 와중에 ‘잘루’라는 남자 아이가 태어나고 가축들과 함께 튼튼하게 자라가는 스토리입니다. 유목민들이 계절의 변화에 따라 이동하는 모습 그리고 자연의 흐름에 따라가는 생활 습성을 보여줍니다.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유목민의 집 ‘게르’는 특별한 거주 형태입니다. 저 역시 몽골여행을 하면서 게르에서 머문 적 있습니다. 건물이나 집이 보통 네모 반듯하고 사각형으로 이뤄졌는데 게르는 둥근 원형입니다. 게르의 문을 열고 나가면 세상 천지가 앞마당입니다. 자연 그대로가 아름다운 정원입니다. 화장실이나 먹고 씻는 등의 불편함은 컸지만 쉽사리 경험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여행 중 다양한 에피소드가 많았으나 그 중 직접 양을 잡아서 전통요리인 허르헉을 만들어 먹었던 밤을 잊을 수 없습니다.
양을 키우는 사람들은 모두 양을 능숙하게 잡습니다. 그들의 전통적인 삶이기 때문이겠죠. 죽음과 삶은 항상 가까이에 있습니다. 죽음이 멀지 않기에 삶 역시 자연스럽습니다. 허르헉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심지어 양을 잡는 과정을 직접 눈 앞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30분이면 양 한 마리가 해체(?) 되고, 1시간 후에는 허르헉이 완성이 되어 요리를 먹을 수 있었어요. 심지어 피 한 방울 땅에 흘리지 않은 채 양고기 요리 허르헉이 내 눈 앞에 나타났다니 믿을 수 없었죠.
처음에는 양을 죽이는 것을 직접 보면 괴롭게 느껴질까봐 보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어린 시절 시골 계셨던 할머니는 모두 닭을 잡아서 식구들을 위해 요리하셨습니다. 가축을 키우는 것은 농사일에 도움을 주기도 하고, 가족들의 먹고 사는 일에 일조하는 일이기도 했죠. 지금처럼 마트에 가서 고기를 쉽게 살 수 없었던 시절에는 고기 먹는 날이 일년에 한 두 번 정도로 흔치 않았습니다. 저 역시 어린 시절 시골에서 할머니가 닭 잡는 모습을 보았어요. 식구들이 시골집에 오면 할머니는 집에서 키우던 닭을 잡아 백숙을 해 주셨습니다. 닭 목을 비틀어 금방 숨통을 끊고 어느 순간 우물가에서 닭을 손질하시던 할머니. “으악! 징그러워” 하면서도 할머니가 만들어준 삼계탕이나 닭죽은 순식간에 맛있게 먹어 치웠지요.
직접 양을 잡아 죽이는 과정을 눈으로 목격한 다음 양고기에 대한 거부감이 생길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결론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진지하고 숭고한 죽음의 의식에 참여한 듯했습니다. 또한 양이 죽어가는 장면이 그렇게 잔인하다고 느껴지지도 않았어요. 몽골의 중남부 지역의 한 유목민 집에서 직접 양 잡는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자연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모든 동물을 이상하리만큼 좋아하는 아이는 양 잡는 과정을 보고 난 후,
“생각했던 것보다 잔인하지 않았어. 그리고 이곳 유목민들은 다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거잖아. 가족처럼 몇 년 동안 같이 지냈긴 했지만. 서로 살기 위해 그런거지” 라고 이해해주면서 양고기를 가장 맛있게 먹었지요.
알고 보니 순대의 기원이 바로 몽골이었습니다. 순대와 내장탕 요리가 이곳에서 왔다고 하네요. 인간을 위해 양 한 마리는 아낌없이 자신의 몸 전체를 내어 준다는 것이 숭고하게 느껴졌습니다. 소나 말 등의 가축똥 말린 것, 나뭇가지를 함께 넣어 불을 때우면서 요리할 준비를 합니다. 흥미진진한 쇼를 보듯 가족 모두 옹기종기 모여 요리 과정을 지켜봅니다. 동그란 게르에서 동그랗게 모인 사람들이 허르헉을 기다린다. 큰 솥에 양파를 두 개 정도 썰어 넣은 다음 양고기를 몇 점씩 집어 넣고 뜨겁게 달군 검은 돌을 던져넣습니다. 그러면 치이익 소리와 함께 연기가 가득해집니다. 뚜껑을 덮었다 열었다 하면서 고기와 돌을 차례 차례로 넣습니다. 중간 중간 소금을 뿌리는 것이 양념의 전부입니다. 1시간 뒤 허르헉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리면 돼요. 이들에게 양을 죽이는 일과 먹는 일이 하나가 됩니다. 삶을 위한 모든 과정을 분리하여 생각할 수가 없지요.
완성된 허르헉을 주인이 내왔습니다. 솥에 가득 담긴 고기의 양은 한 눈에 보기에도 많아 보였는데, 고기 한 점을 뜯어 먹으면서 정말 맛있다고 생각했어요. 초원 가득한 풀을 먹고 자란 신선한 양고기. 그것도 조금 전 생을 마감한 양을 내 손으로 뜯어 먹고 있는다는 게 미묘하더라고요. 양고기로 만든 허르헉으로 만찬을 하고 밤새 별을 보았던 그날 밤. 10초마다 떨어지는 별똥별, 놀라운 우주쇼가 펼쳐졌습니다.
그림책으로 인해 몽골여행의 추억이 다시금 떠오르게 됩니다. 그림책 『나의 집』은 낯선 몽골이라는 나라의 전통문화를 알게 해 주는 책이에요.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이어갑니다. 여전히 말, 양, 소, 염소, 낙타 등과 함께 살아가는 몽골의 유목민은 자연의 일부로서 살아가죠. 땅을 소유하지 않기에 집을 짓는 것도 간소합니다. 동그랗고 아담한 몽골 유목민의 집 ‘게르’는 성인남자 두 명이 두 세 시간 정도면 짓을 수 있어요. 이동을 할 때면 또다시 집을 허물고 어디론가 떠나갑니다. 마음속에 길을 알고 있는 것인지 하늘의 별을 따라 새로운 곳으로 이동을 한 다음 또다시 게르를 짓습니다. 가족들 모두 키우던 가축들도 무리지어 이동을 하며 낯선 곳으로 떠나갑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들입니다.
정착생활을 하는 농경문화의 전통을 이어 받은 우리는 땅과 집에 대한 집착이 강한 것 같습니다. 내 소유의 무언가를 항상 주장합니다. 좁은 국토에서 어떻게든 더 큰 평수의 아파트와 빌딩을 소유하는 것이 일반적인 한국 사회에서 『나의 집』 같은 이야기는 몽환적이고 이룰 수 없는 꿈 같은 이야기일 것입니다.
다른 삶을 살아갈 용기는 없지만, 다른 삶을 보여주는 곳으로의 여행은 충분히 가능하겠죠. 몽골 여행 후 알지 못했던 삶이 내 안으로 쑥 들어온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그림책의 놀라운 이야기가 가슴에 스며들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여행 이야기로 흘러갔네요. 여행을 앞두고 J형은 하루 일정표나 예산 등을 꼼꼼하게 짜면서 움직이지만 P형은 일정 자체를 못 견뎌 한다고 하네요. 규칙적이고 예측가능한대로 사는 것을 좋아하는 판단형 반면 규칙을 구속이라고 여기고 갑갑해하는 인식형. 둘 모두 장점이 있고 이 세상에 필요한 유형입니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부러워할 수도 있고 나와 다른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편견이 생길 수도 있어요. 하지만 서로의 다름은 틀림이 결코 아니라는 걸 알게 되겠죠.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면서 우리에게 배움을 전해주는 타로카드는 바로 ‘운명의 수레바퀴’입니다. 메이저 10번 카드로 불리는 ‘Wheel of fortune’은 시간의 순환적 속성을 말합니다. 인간사 희노애락의 덧없음과 인생무상을 의미합니다. 삶이 어떠한 주기에 놓여있는가를 점검하라는 뜻이기도 하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마음으로 살라는 의미기도 합니다. 지금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습니다. 숫자 10은 한 주기가 반복될 때마다 나타납니다. 1-9번까지의 숫자를 모두 내포한 숫자가 10이기도 합니다. 10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새로운 반복을 위한 전환점을 뜻하기도 하죠.
예상치 못하는 여러 가지 변화가 생길 수도 있고, 그러한 변화를 막을 수 없기에 수레바퀴가 굴러가는대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바퀴가 아무리 굴러가지 않을 것을 결심한다고 해도 자연스레 돌아가는 속성이 있습니다. 돈이 없다가도 있을 수 있고, 연인이 떠나간 후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도 있으며, 건강이 나빴다가도 좋아질 수 있습니다. 지금이 영원하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 ‘운명의 수레바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변화의 속도에 지레 겁먹고 무섭다고 눈을 감으면 절벽으로 떨어질 수도 있겠죠. 그러니 변화를 롤러코스터라 생각하고 자신의 인생이 만든 놀이기구에 탑승하는 방법은 어떨까요.
글쓴이 : 김소라 작가
『타로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좋아하는 일을 해도 괜찮을까』 『여자의글쓰기』 『바람의끝에서마주보다』 『사이판한달살기』 『맛있는독서토론레시피』 등 다양한 책을 썼습니다. 수원에서 작은 책방 ‘랄랄라하우스’를 운영하며 타로카드로 마음공부하는 글을 씁니다. <타로카드 럭키박스>는 타로카드가 주는 의외의 기쁨과 성찰의 순간으로 위로받으며 잠시 쉼을 얻도록 도와주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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