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맘대로 교부세 줄일 수 있다' 기정사실로 만드는 언론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2024. 10. 2.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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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의 경제기사비평]

[미디어오늘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서울 중구 하나은행에서 직원이 5만 원권을 펼쳐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도 30조 원의 세수가 부족할 것이라고 한다. 지난해 56조 원 세수결손보다는 조금 나아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작년을 제외하고 역사상 최악의 세수결손은 2013년 14.5조 원이었다. 즉, 30조 원의 세수결손은 작년을 제외하고는 역대 최악의 세수결손이다. 정부는 “세수 추계 오차를 축소하기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였다”면서 국세수입 부족은 “글로벌 복합 위기의 여파로 인한 2023년 기업 영업이익의 하락” 등에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특히, 기획재정부 출입기자들에게 세수결손의 원인은 정부의 감세가 아니라고 수없이 강조한다. 비록 정부의 감세로 세수가 줄어도 감세에 따른 효과는 이미 본예산에 반영되었다고 한다. 이에, 본예산 대비 세수결손은 감세와는 상관이 없다고 반복적으로 주장한다.

그러나 세수결손의 원인은 감세 탓이 크다. 정확히 말하면 정부의 감세 정책에 대한 효과를 본예산에 충실히 반영하지 않은 것이 세수 결손의 주요 원인이다. 만약 30조 원만큼 세수감소를 초래하는 감세 정책을 하면서도, 본예산 국세 수입 추계에 감세 효과를 10조 원만 반영했다면, 20조 원의 세수결손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기획재정부는 2022년 세법개정안의 세수효과가 -60조 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회예산정책처는 -73.7조 원이라고 계산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기재부 추산 내용을 다 참고하고 몇달 뒤에 변화된 경제 환경을 감안하여 계산한다. 기재부 추산보다 정확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기재부는 세법개정안을 발표할 때, 보수적으로 세수효과를 추계하는 버릇이 있었다.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매년 국회예산정책처보다 더 감세 효과를 과장했다.

이러한 기재부의 관행은 2022년부터 달라진다. 2023년에도 기재부 감액 추계보다 국회예산정책처 감액 규모가 더 커진다. 2022년부터 달라진 관행이 과연 우연의 산물일까? 추경호 전 경제부총리는 법인세율을 내려도 세수가 줄지 않는다는 기적의 논리를 펼쳐왔다. 세율을 내리면 기업의 투자가 늘고, 내수가 좋아져서 세수가 줄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기획재정부는 기획재정부 장관의 말과는 다르게 2022년 세법개정안이 통과되면, 5년간 60조 원 준다고 했다. 기재부 공식문서는 기재부 장관과 다르게 세수가 준다고는 했다. 그래도 세수가 줄지 않는다는 기재부 장관의 말이 있는 이상 세수 감소효과를 축소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더 큰 문제는 예측 실패가 아니라 대응실패다. 주식쟁이의 격언이 있다. 예측실패는 용서해도 대응실패는 용서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예측은 누구나 틀릴 수 있다. 그러나 예측이 틀렸을 때, 어떻게 대응하냐가 더 중요하다. 세수 결손이 30조 원이 발생했다. 방법은 세 가지밖에 없다. 첫째, 기금 등 여유재원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둘째, 국가부채를 추가 발행하는 방법, 셋째, 세출을 줄이는 방법이다. 기금 여유재원을 활용으로 세수결손을 매울 수 있다면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그러나 무려 30조 원의 여유재원이 있는 기금은 없다. 특히, 외평기금은 작년에 이미 가져다 썼다. 그리고 부담금 축소로 전력기금 등의 여유재원도 거의 사라졌다.

결국, 남는 방법은 두 가지다. 국가부채를 추가 발행하는 방법과 세출을 줄이는 방안이다. 그런데 국가부채를 추가 발행하고자 한다면 추경을 편성해서 국회에 세입 감액 추경안을 제출해야 한다. 그래야 국채 발행 한도액을 국회에서 늘릴 수 있다. 또한, 세출을 줄이고자 한다면 국회에 세출 감액 추경안을 제출해야 한다. 그래야 교부세, 교부금 또는 불요불급한 금액, 연말 불용 예상 사업 금액을 줄일 수 있다.

▲ 9월25일 정정훈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오른쪽 두 번째)이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년 세수 재추계 결과 및 대응 방향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2024년 국세 수입에 대한 재추계 결과, 올해 국세 수입은 전년 대비 6.4조원 감소한 337.7조원으로 예산 대비 29.6조원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합뉴스

그런데 정부는 추경 계획은 없다고 못 박는다. 추경을 하지 않고 국채를 추가 발행하거나 세출을 줄일 수 있는 법적인 방안은 없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아니 민주주의는 가끔 무너질 수는 있어도 최소한 전근대 국가를 벗어난 근대국가인 것은 확실하다.

근대국가란 무엇일까? 국민이 뽑은 국민의 대표가 정한 곳에서 세금을 걷고, 국민의 대표가 정한 곳에 지출을 하는 국가를 의미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여야 합의를 통해 올해 교부세 금액을 국회가 확정했다. 교부세 등 국회가 확정한 지출액을 행정부가 임의로 줄일 방법은 없다. 만약 교부세를 줄이고자 한다면, 정부는 교부세 감액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추경 없이 교부세를 줄이는 것은 국회의 예산 심의권에 위배되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일부 언론은 올해 세수결손에 따라 교부세를 줄일 수 있다는 정부의 주장을 기정사실로 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방정부와 교육청에 지급하는 교부세, 교부금 등을 추경조차 하지 않고 정부가 임의로 줄일 수 있는 법적인 근거와 관행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작년에만 발생한 잘못된 행동일뿐이다. 이에 작년 교부세 임의 삭감관련 현재 헌법재판소 권한쟁의심판청구가 진행 중이다. 정부가 국회 예산심의권이라는 삼권분립의 기본을 담은 헌법에 위배되는 행동을 한다고 했을 때, 언론은 정부의 계획을 그대로 비판 없이 전하면 안 된다. 불가능한 행정이라는 사실을 지적해야 한다.

국가의 예산서는 예측가능한 행정을 통해 경제 참여자들의 예측가능한 경제 활동을 담보한다. 국회가 여야 합의를 통해 A 사업에 보조금을 10억 원 주고, B지자체에 교부세를 1000억 원 준다고 치자. 그리고 B지자체는 받은 교부세로 100억 원의 사업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정부가 보조금을 10억 원 줄지 9억 원 줄지 아무도 모르게 되었다. 교부세를 1000억 원 줄지 950억 원을 줄지 아무도 짐작 가능하지 않다. 시장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예측가능성이 줄어드는 것이다. 예측이 불가능하면 소비도, 투자도 어려워진다.

한 걸음 더 나아가보자. 정부는 국가재정법 추경편성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추경 편성을 거부한다고 한다. 그러나 국가재정법 제89조는 국가재정법 제5장 재정건전화 장에 속한다. 즉, 국가재정법 제89조는 재정건전화를 위해 무분별한 세출 증액 추경의 요건을 담은 조항이지 세출 감액 추경의 요건을 담은 조항이 아니다. 이정도 수준의 심화기사를 담은 언론을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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