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설 서울대 국문과 교수]
시민이 법을 지배하는 민주주의
다음 달의 대통령 선거는 한국 역사에서 두 번째로 중대한 변곡점이 될 것이다. 반만년 한국 역사에서 가장 큰 지각변동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있었다. 수천 년 지속된 전제 왕정이 민주공화제를 표방한 정부로 바뀐 것이다. 한 사람이 독점한 권력을 국민 전체가 균점하게 되었으니 비로소 백성들은 노예 상태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이는 주장과 이론일 뿐 현실은 오래 준노예 상태가 지속되었다. 국민이 통치자를 뽑았지만 그는 뽑히자 바로 임금처럼 행세했고 입법 권력인 국회를 무력화하고 사법부를 자기 마음대로 조종했다. 그런 다음 부정 선거로 민주주의를 껍데기로 만들었다. 우리 국민들은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 등의 저항을 통해 그 껍데기 민주주의에 알맹이를 채워나갔고 이는 1987년 대통령 직선제로 일단락되었다. 군사독재를 넘어서서 문민정부, 야당 집권으로 이어지며 왕정과 독재를 넘어서서 민주주의의 틀을 갖추어나가자 전에 보이지 않던 민주주의의 새로운 결함이 부각되었다.
민주주의는 시민이 주인인 정치체제다. 주인이란 무엇인가. 남에게 의존하지 않으며 자신의 삶과 자기가 속한 공동체를 지배하는 사람이다. 다수의 주권 시민에 의해 지배되는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법의 지배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법이 없는 민주주의는 야수의 정글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시민이 법을 지배하는 체제라 말할 수 있다. 왕이 법을 장악한 체제가 왕정이고 독재자가 자기 마음대로 법을 휘두르는 체제가 독재이듯, 시민이 법을 만들고 그에 따라 판단하는 체제가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시민이 입법자이자 재판관이 되는 정치체제인 셈이다.

시민이 재판에서 배제된 우리 민주주의
이런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에 비추어 볼 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큰 결함이 있다. 국회의원은 선거를 통해 뽑기에 입법 영역에는 어느 정도 국민의 영향력이 미친다 할 수 있지만, 행정부의 일원이지만 스스로 준사법부라 칭하며 상당히 독립적으로 권력을 행사해온 검찰과 사법부인 법원은 국민과 동떨어져 막강한 권력을 누려왔다.
한국은 국민이 법적 판단을 장악하지 못한, 결정적 결함을 지닌 민주주의 체제다. 시민의 지배라는 형식을 벗어난 형사사법 권력의 문제점은 검찰 정권인 윤석열 정부와 그 종착역이 된 계엄 사태로 온 천하에 폭로되었다. 군대를 동원하여 국회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만인이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뜻이 형사사법적 카르텔에 의해 막힌 모습을 분명히 본 것이다.
만장일치의 탄핵 인용을 이끌어낸 헌법재판소를 영웅화하지만 국민주권의 관점에서 보면 국민이 뽑은 대통령의 탄핵권을 헌법재판소가 가지는 것은 논리적 타당성이 없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 인용과 대법원의 이재명 공직선거법 위반 선고 파기환송을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민주주의의 관점으로 보면, 국민주권의 눈으로 보면, 모두 부당하다. 왕정에는 성군도 폭군도 있지만,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둘은 모두 배척되어야 할 독재자일 뿐이다. 시민이 배제된 재판이라면 어떤 재판도 민주주의적 정당성을 지니지 못한다.

이제 판단권력을 시민들이 돌려받아야
민주주의의 원류라 할 고대 아테네의 법정은 시민들 중에 추첨하여 재판관과 재판장을 뽑았다.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을 선고한 법정은 501인의 대규모 재판단이었으며,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사랑한 민주주의 공동체 동료 시민의 판단을 존중하여 사형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인 이소노미아, 곧 법 앞의 평등이란 판사가 피고를 동등하게 대우한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시민이 동등한 재판권을 지닌다는 뜻에 가깝다. 현대의 모든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어떤 형식으로든 이 원리를 받아들여 시민에게 재판권을 부여하고 있다. 심지어 근래에는 한국과 유사한 처지의 아시아 국가인 일본과 대만에서조차 시민에게 재판권을 부여한 재판원 제도를 도입했다.
올해 6월의 대통령 선거는 형사사법 제도 개혁세력 대(對) 반개혁세력의 대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혁세력이 승리하면 법원의 재판권은 물론, 검찰의 기소권, 경찰의 수사권까지 모든 판단권력을 시민이 돌려받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것이다. 다른 민주주의 선진국처럼 경찰, 검사, 판사의 임명과 징계에 시민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일부 법적 판단 과정에는 시민이 직접 참여할 것이다.
시민이 공동체의 중요한 일을 직접 결정하는, 진정으로 시민이 주인이 되는, 종전과는 완전히 다른 제2의 대한민국이 건국될 것이다.
※ 정병설은 서울대 국문과 교수로 한글소설을 중심으로 주로 조선시대의 주변부 문화를 탐구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동학, 특히 해월 최시형의 사상에 눈을 떴고, 바로 이어진 1년간의 베를린 안식년 체류에서 동학의 시각으로 독일 사회를 바라보면서 민주주의에 이르렀다. 그 결과물로 『시민 없는 민주주의』(문학동네, 2025)를 출간했다. 대표 저서로는 『나의 문학 답사 일지』, 『조선시대 소설의 생산과 유통』, 『권력과 인간-사도세자의 죽음과 조선 왕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