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조의 아트홀릭] "현실감 넘치는 가상공간에서 진짜 나를 찾는다"

2024. 10. 17.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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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정승조 아나운서 ■

공간(Space).

여기에 주목하는 세계적인 아티스트 듀오가 있습니다.

바로 '마이클 엘름그린(Michael Elmgreen)'과 '잉가 드라그셋(Ingar Dragset)'입니다.

이들은 진짜 같은 가상공간으로 우리에게 익숙하고도 색다른 경험을 선사하는데요.

엘름그린과 드라그셋의 아시아 최대 규모 전시가 아트홀릭 독자들을 기다립니다.

'정승조의 아트홀릭'은 엘름그린 & 드라그셋의 'Spaces'을 기획한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손유경 큐레이터'를 만났습니다.

▮ 엘름그린 & 드라그셋. 듀오 활동을 언제 처음 시작하게 되었나요?

덴마크 출신의 마이클 엘름그린(Michael Elmgreen)과 노르웨이 출신의 잉가 드라그셋(Ingar Dragset)은 1994년에 처음 만났고, 1995년부터 아티스트 듀오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인이었던 엘름그린과 연극 작업을 했던 드라그셋은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며 예술적 협업에 이르게 되었고요. 화이트 큐브 공간을 거침없이 해체하는 초기 퍼포먼스와 조각 작업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건축적 요소를 작업에 도입하며 점차 영역을 확장한 두 사람은 사막 한복판에 프라다 매장을 세운 영구 설치 작업 (2005)와 전시장을 공항, 기차역, 병동 등으로 전환한 작업들을 통해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공간에 대한 독창적 시각을 제시해 왔습니다.

▮ 1995년부터 협업한 이들이 선보이는 이번 전시 'Spaces'가 특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고요.

Elmgreen, Dragset, Untitled(the kitchen), 2024, mixed media, Courtesy of the artists, Photo : Andrea Rossetti

《Spaces》는 작가들의 작업 30년을 돌아보고 기념하는 아시아 최대 규모 전시이고요. 최초로 그들의 공간 작업을 한자리에서 조명하는데요.

실제 크기에 버금가는 집, 수영장, 레스토랑이 전시장 내에 들어섭니다.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와 형태의 대형 설치 작품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데요.

마치 소셜미디어에서 불특정 다수의 이미지를 스크롤 하듯 불연속적으로 펼쳐지는 공간은 물리적 현실과 디지털 세상을 오가는 현대인의 일상을 살펴보게 합니다.

각 공간 안에는 크고 작은 조각 작품 50여 점과 연출품이 공존하는데요. 이는 작가들이 심어놓은 서사를 확장합니다. 관람객은 공간 곳곳을 돌아다니며 숨겨진 내용을 암시하는 단서들을 찾고 조합하여 작가들이 시작한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 엘름그린 & 드라그셋은 익숙한 공간을 독특한 방식으로 소개하는데요. 이번 전시에서 무엇을 전하고 싶었을까요.

엘름그린 & 드라그셋은 디지털 세계와의 관련성이 지속해서 증가하는 현실 속에서도 매일 우리가 물리적으로 마주하는 환경에 대해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시간을 온라인에서 보내고 있지만, 여전히 실제적인 만남에 대한 강한 열망은 존재합니다. 작가들은 이번 전시를 통해 디지털 상호 작용의 특징과 대조되는 감각적인 경험을 방문객에게 선사하고자 하였습니다.

▮ 그 경험이 가능한 작품인 'Shadow House(그림자 집)'은 140제곱미터(약 42평) 규모로 크기가 상당합니다. 내·외부 모두 실제 집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Elmgreen, Dragset, Shadow House, 2024, mixed media, Courtesy of the artists, Photo: Andrea Rossetti

엘름그린 & 드라그셋은 이번 전시를 통해 최초로 거실, 주방, 침실, 서재, 화장실까지 갖춘 완전한 규모의 집을 선보였습니다.

사실 가족 관계와 일상 생활의 중심이 되는 ‘집’이라는 영역은 작가들의 공간 작업 안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이자 반복적으로 다뤄온 소재이기도 한데요.

듀오는 공간적 전환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설치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무대 연출을 하듯 공간에 정교함을 더해왔습니다. 이렇게 안 곳곳에는 이야기의 단서가 될 만한 요소들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현관에 있는 거울과 시든 꽃, 거울에 적힌 알 수 없는 메시지, 남겨진 코트와 가죽 재킷, 구멍 뚫린 장화 등은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들을 암시합니다. 의도적으로 누락된 서사는 엘름그린 & 드라그셋 작업의 대표적 특징인데요. 작가들은 관람객이 주어진 작품 속의 상황에서 스스로의 이야기를 완성해 나가도록 초대합니다.

▮ 집의 거실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소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I(나)'라는 작품인데요. 무엇으로 만들어졌습니까?

Elmgreen, Dragset, I, 2023, silicone figure, clothing, Emmanuel Perrotin Collection, Photo: Andrea Rossetti

실리콘 소재로 제작되었습니다. 소년의 손가락은 성에 낀 창문 위에 머물러 있으며, 알파벳 'I'를 유리창에 쓰고 있는데요.

듀오는 어린 시절의 순수함이 가진 힘을 이용하여 존재론적 영역을 탐구합니다. 유리 위의 덧없는 입김은 때론 일시적이면서도 심오한 자아 탐색의 여정을 은유하지요.

작가들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어린이들은 자아와 사회의 복잡한 미로를 탐험하는 아바타입니다.

▮ 관객들은 집안의 다양한 공간을 탐색할 텐데요. 엘름그린 & 드라그셋은 왜 이렇게 공간에 주목하게 되었을까요?

엘름그린 & 드라그셋은 집, 수영장, 지하철역, 병동, 사무실 등 보편적이라고 여겨지는 공간에 내재된 권력 구조나 위계 질서에 대한 비판을 담은 작품들을 선보여왔습니다.

극도로 사실적이지만 무언가 조금씩 어긋나 있는 그들의 작업 안에서 관람객은 장소를 낯선 방식으로 경험하며 기저에 깔린 사회적 역학을 인지하게 됩니다. 작가들은 관람객이 상상을 통해 공간의 대안적 현실과 변화의 가능성을 떠올리며 사람들의 고유한 역할이나 주체성을 반추하도록 의도합니다.

▮ 이번에도 외부로부터 빛이 차단된 전시 공간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는 것이 전시의 출발점이었다고 들었습니다.

Elmgreen, Dragset, The Cloud, 2024, mixed media, Courtesy of the artists, Photo: Andrea Rossetti

작가들은 2년 전 미술관을 처음 방문했을 때 빛이나 소음 등 어떠한 외부 요소로부터 독립된 전시 공간의 특징에서 온전한 창작의 자유를 느꼈다고 합니다.

자연스럽게 현대인의 일상과 관련된 주제들을 제안할 수 있는 일련의 공간 작업을 떠올렸고, 마침내 전시장 전체를 집, 수영장, 레스토랑, 주방, 작가의 아틀리에에 이르는 5개의 몰입형 환경으로 전환했습니다.

전시장 내에서 관람객은 단순히 공간 내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적극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데요. 이들은 손님, 침입자, 탐험가 또는 탐정이 되어 작가들이 전개하는 이야기에서 공동 창작자로서의 역할을 부여받습니다.

작가들은 이번 전시를 통해 육체와 분리된 디지털 상호 작용의 특징과 대조되는 감각적인 경험을 선사하고자 합니다.

▮ 익숙하고도 색다른 경험은 두 번째 전시실의 작품 'The Amorepacific Pool(아모레퍼시픽 수영장)'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만 없지 대형 수영장을 그대로 옮겨놓았더군요.

Elmgreen, Dragset, The Amorepacific Pool, 2024, Lights, stainless steel, tiles, paint, Courtesy of the artists, Photo: Andrea Rossetti

물이 빠진 수영장은 듀오의 작업에서 반복되는 모티프입니다.

오늘날 공공장소의 쇠퇴와 공동체의 상실을 암시하는데요. 수영장 주변의 조각들은 같은 공간에 존재하지만 각자가 자신만의 세계에 몰두해 있으며 상호작용하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 그래서 더 호기심을 갖고 지켜봤지 싶습니다. 특히 수영장 주변의 백색 조각들 말이지요.

열 지어 서 있는 대형 기둥 사이에 위치한 을 무대로 고전 작품을 연상시키는 백색의 조각들이 등장하는데요.

이는 ‘현대의 남성성과 고립 및 성장’이라는 실존적 질문들을 던집니다. 듀오는 역사적으로 정립되어 온 것과는 다른 대안적인 남성성을 보여주기 위해 대리석으로 제작된 고전 조각의 느낌을 구현하되 그 소재를 비틀어 작품으로 선보여왔습니다.

▮ 그 중 'The Screen(화면)'이란 작품을 보면 한 소년이 창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고 있더군요.

Elmgreen, Dragset, The Screen, 2021, bronze lacquer, light-box display, 225 X 145 X 40cm, Collection of Amorepacific Museum of Art, Photo Elmar Vestner

의 소년은 창 너머의 하늘을 들여다보며 바깥세상의 모든 가능성과 신비를 향한 갈망의 눈빛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대부분의 사람이 유년 시절 경험했을 만한 순간을 묘사합니다. 관계의 고립과 단절로부터 느끼는 외로움, 슬픔, 또는 지루함을 담고 있죠. 작품은 이러한 어린 시절의 보편적인 감정을 소환하며 우리가 어릴 적 경험했던 외로움과 갈망을 떠올리게 합니다.

▮ 'The Conversation (대화)'이라는 작품 속 인물 역시 '실제 사람인가?'라고 할 정도로 강렬했습니다.

레스토랑 테이블에 홀로 앉은 여성이 영상 통화에 깊이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대화하는 가상의 친구는 최근 실패한 연애에 대해 독백을 이어가는데요.

이 장면은 기술이 우리의 물리적인 환경과 상호 연결된 디지털 세계 사이의 경계를 어떻게 흐리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는 물리적으로 존재하지만, 정신적으로나 감정적으로는 다른 곳에 있을 수 있다는, 우리가 경험하는 존재-부재의 동시성에 관한 질문을 제기합니다.

▮ 마지막으로 엘름그린 & 드라그셋의 'Spaces'가 아트홀릭 독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길 바라는지 궁금합니다.

Elmgreen, Dragset, Watching, 2024, bronze, lacquer, 290 X 105 X 85cm, Courtesy of Pace Gallery, Photo Elmar Vestner

물리적, 개념적 경계를 확장시켜 전시 공간 자체가 작품인 엘름그린 & 드라그셋의 작업을 통해 현대사회의 고착화된 단면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는 기회를 제안하고자 합니다.

특히, 현대 미술에 관심을 갖고 계신 분들에게는 이번 전시와 같은 대규모의 공간 전환 작품과 전시는 개최도 관람의 기회도 드물기 때문에 꼭 한번 살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울러 두 작가가 창조한 공간 속에서 다양한 이야기 요소들을 발견하고 스스로 새로운 의미를 찾아 나아가는 주인공이 되어 보시길 바랍니다.

■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현대미술 기획전 'Spaces'

- 장소 : 아모레퍼시픽미술관

- 일정 : 2024년 9월 3일~2025년 2월 23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 휴관)

- 관람료 : 유료

정승조 아나운서, 문화 예술을 사랑하는 방송인으로 CJB 청주방송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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