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마세라티 그레칼레 트로페오 '미친 서스펜션만 믿고 밟아봐~'
마세라티의 자사 두번째 SUV 그레칼레 트로페오를 타보기 전엔 미처 몰랐다.
그저 기존 SUV 르반떼 보다 살짝 동생급이겠지 했던 선입견 정도였다. 포르쉐로 치면 카이엔의 아우격인 마칸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선입견은 완전히 깨졌다. 형제격인 르반떼는 물론 포르쉐 SUV 형제를 능가하는 차체 크기와 움직임에 깜짝 놀랐다.
외관을 먼저 감상할 필요가 있다. 전체적 실루엣은 그냥 흑표범 그 자체다. 마치 슈팅 브레이크 스타일을 연상시키는 용맹한 모습이다. 게다가 무광 그레이 컬러를 선택한 엄청난 존재감을 뽐낸다.
먹잇감을 집어 삼킬 것 같은 대형 음각 그릴에 적당히 빵빵한 근육질 뒷태는 예술에 가깝다. 3홀짜리 에어 브리더와 트로페오 만의 디자인인 레드컬러 포인트 삼지창 로고는 세련미와 강인함을 동시에 뿜는다.
차체 크기는 적당히 크다. 포르쉐 마칸과 카이엔의 중간쯤으로 보면 된다. 길이 4850㎜, 너비 1980㎜, 높이 1665㎜의 차체로 운전이 부담스럽지 않다. 휠베이스는 오히려 카이엔 보다 살짝 긴 2901㎜다.
실내는 이탈리아 감성이 잔뜩 흐르는 호화판이다. 자국의 다양한 브랜드들과 협업해 질 좋은 가죽으로 대시보드와 도어패널을 감쌌고, A필러엔 블랙 스웨이드가 부드럽다. 도어와 센터콘솔엔 날 것 그대로의 카본으로 야성미를 더했다.
표면에 유광 코팅을 하지 않은 생짜 카본 그대로의 감성을 손끝으로 느낄 수 있다. 사운드도 이탈리아 명품오디오 소너스 파베르가 21 스피크로 세팅돼 차원이 다른 음을 낸다.
12.2인치 디지털 계기판과 12.3인치 센터 디스플레이는 벤츠의 실내를 보는 듯하고, 센터 하단으로 이어붙인 공조 조절용 8.8인치 디지털 화면은 다양한 기능을 담아냈다. 상단에 블루컬러의 디지털 시계가 멋스럽게 배치돼 포르쉐를 연상시킨다.
본격 시승에 나설 차례다. 우선 제원을 확인해 보면 V6 3.0 트윈터보로 530마력을 뿜는 파워에다 그를 뒷받침 하는 에어 서스펜션이 제대로 호흡을 맞춘다.
스티어링휠에 붙어있는 시동버튼을 누르자 '우르릉~' 흑표범이 깨어난다. 레이싱 DNA를 담아 운전대 왼쪽 하단쯤에 시동버튼이 자리하고 있고, 기어변속은 센터페시아 중앙에 수평형 버튼식으로 숨겨지듯 배치돼 있다.
지난번 타봤던 낮은 트림 GT(2.0터보. 300마력)와 중간 트림 모데나(2.0터보. 340마력)를 탔을 때와는 전혀 다른 초고성능 트로페오만의 힘을 지녔음을 금세 눈치챌 수 있다.
항시 으르렁거리면서 언제든 튀어나갈 준비가 돼 있다는 기분좋은 배기음과 진동을 준다. 주행모드는 컴포트, GT, 스포츠, 코르사, 오프로드로 5가지가 있는데 역시 레이싱 버전인 코르사 모드가 발군이다.
중저속에서 컴포트 모드로 편안하게 예열을 한후, 스포츠와 코르사 모드를 바꿔가며 악셀을 깊이 밟아보니 정말 표범 등에 올라탄 기분이다. 모드를 바꾸면 계기판 좌측 하단에 차체 높낮이를 수시로 오르내리는 표시가 뜨면서 스스로 안정감도 찾는다.
직진 구간에서는 에어서스펜션을 단단하게 만들어줘 롤링없는 가속감을 즐길 수 있다. 또한 고르지 못한 노면과 급코너링 구간에선 차량의 네 귀퉁이에 각기 다른 힘을 가하면서 운전자를 수평으로 유지시켜 준다. 날으는 양탄자를 타고 운전자가 원하는 방향 어디든 튀어나가도록 돕고 있는 것.
마법에 가까운 에어 서스펜션은 그레칼레 기본모델부터 적용돼 있어 낮은 트림에서도 펀드라이빙의 감성을 즐길 수 있다. BMW로 검증된 ZF사 7단 미션은 그레칼레를 아무리 극한의 상황으로 내던져도 쫀쫀하고 부드러운 파워트레인을 유지시킨다.
거기다 최신 SUV답게 반자율주행 기능에서도 상당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클러스터를 보면 테슬라와 유사하게 주행라인을 스스로 맞춰가고, 좌우 차선에 어떤 차량이 달리고 있는지 보여주며, 심지어 오토바이까지 모습을 인지하고 구현해 보여준다.
상남자의 멋과 파워, 그리고 안전까지 모든 걸 쏟아부은 그레칼레의 유일한 단점은 실연비 7ℓ/㎞ 수준 정도로 보면 된다. 기본형 GT 트림의 가격은 1억200만원, 모데나는 1억3700만원, 고성능 트로페오의 가격은 1억7410만원이다.
/지피코리아 김기홍 기자 gpkorea@gpkorea.com, 사진=지피코리아, 마세라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