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이 배신할지라도, 한승택은 기다린다

KIA 타이거즈의 홈구장인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 전경. <KIA 타이거즈 제공>

자신에게 프로 야구 선수가 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면 어떤 포지션을 선택할 것인가?

이 질문을 현역으로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는 선수들에게 물어보더라도 많은 이들의 대답은 비슷할 것이다.

투수 그것도 압도적으로 선발 투수를 이야기할 것이다.

반대로 가장 하기 싫은 포지션을 물어봐도 대답은 비슷할 것이다.

‘안방마님’으로 불리는 선수들 대부분도 “다시 태어난다면?”이라는 질문에 ‘선발투수’를 이야기할 것이다. 물론 “야구는 안 한다”는 답변이 우선일 것이다.

굳이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팬들은 포수의 고충을 잘 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더운 여름에도 이것저것 보호장비를 챙겨 입고,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해야 한다.

운이 좋다면 1이닝에 3~4명의 타자만 상대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과 싸우는 금쪽같은 우리 투수까지 상대해야 하는 날이 더 많다.

어디 그뿐인가. 홈으로 달려오는 거대한 주자들을 보면서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고, 경로를 이탈한 투수의 공이나 타자의 파울볼에 맞는 날도 많다. 미트를 끼는 손은 돌덩이 같다.

또 수비가 ‘우선’인 포지션이지만 통산 3할 타자인 두산 양의지와 타자로서도 위협적인 삼성 강민호 등 베테랑 선배들의 타격 실력 덕분에 팬들의 타격 눈높이도 높아졌다. 포수들이 할 일이 많아졌다.

가장 힘든 것은 경쟁일 것이다.

매년 KBO리그에서 주목받는 ‘고졸 루키’들이 탄생하고 있다.

패기로, 스피드로 선배들 틈에서 기회를 엿보는 투수와 타자는 많다.

하지만 ‘신인 포수’를 1군 경기에 내세우기는 쉽지 않다

전체적인 경기를 끌고 가야 하고, 투수와 야수와도 호흡이 중요한 어려운 포지션이다.

그렇다 보니 포수는 경험이 가장 중요한 포지션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경험을 쌓기 가장 어려운 포지션이기도 하다.

포수들은 숙명처럼 기다림의 시간을 보낸다.

화려한 순간을 경험했던 KIA 포수 한승택에게도 기다림의 시간은 길었다.

화끈한 타격을 앞세운 한준수의 깜짝 등장으로 한승택은 지난 시즌 팀의 우승 질주를 뒤에서 지켜봐야 했다.

올 시즌에도 9월이 오기 전까지 12경기에서 20타석을 소화하는 데 그쳤다.

한승택의 마지막 경기는 5월 13일 롯데전. 이후 KIA의 포수 엔트리 자리에는 변동이 없었다.

1군에서 625경기를 뛴, 2017시즌 우승반지도 보유하고 있는, 어느새 13년 차 선수가 된 30대 포수.

이렇다 할 동기부여가 없던 시즌이지만 한승택에게는 어느 때보다 설레는 기다림이었다.

한승택은 “내 것을 만들고 싶었다. 1군 선수들을 보면 다 자기 것이 있다. 지나고 보니까 내 것이 많이 없었던 것 같다. 야구 선수가 야구를 했으면 내 것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며 “많이 시도해 봤다. 1군에서는 많은 경기 못 나가니까 투수에 맞게 상황에 맞게 공 하나 공 하나 생각하면서 시험해 보고, 수비할 때도 다양하게 노력을 해봤다”고 설명했다.

퓨처스리그에서 달라진 타격을 보여줬던 한승택이 1군에서 시험 무대를 갖는다. /김여울 기자

1군 경험이 있는, 퓨처스리그의 최고참 포수였지만 한승택은 후배들과 똑같은 자세로 긍정적으로, 최선을 다해서 시간을 보냈다.

지도자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가장 고마운 부분이다.

퓨처스에서 한승택을 지켜봤던 이해창 배터리 코치는 “승택이에게 고마운 게 많다. 어찌 됐든 1군 경험이 많고 작년, 재작년부터 기회가 많이 줄었다. 나도 그런 것을 겪었으니까 그런 선수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공감한다”며 “2군에서 훈련 분위기, 훈련하는 태도를 정말 잘 해줬다. 코치 입장에서는 훈련 분위기 조성하는 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 선배가 나서서 빼지 않고 하니까 후배들이 따라올 수 밖에 없는 분위기가 됐다. 기회가 되면 고맙다고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베테랑이 알아서 솔선수범 움직여주면서 지도자와 선수는 서로를 존중하면서 시즌을 보냈다.

이해창 코치는 “메커니즘을 건들기보다는 신체적인 부분에서 둔해지지 않게 그런 부분에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신경 썼다. 생각이 괜찮은 친구라서 서로 존중하면서 필요한 훈련을 하면서 준비했다”며 “되게 진중하게 방향성을 잘 잡고 했다. 그냥 맹목적으로 할 수 있는데, 어떤 목표점이 있고 방향성을 잘 잡고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

한승택의 수비는 팀에서도 우선 꼽는다.

하지만 수비에 비해 안정적인 타격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한승택의 장점을 보여줄 시간이 줄었다.

퓨처스에서 내 것 찾기에 나선 한승택의 성적 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타격이다.

43경기에 출전한 한승택은 118타수 44안타, 0.373의 타율을 기록했다.
2개의 홈런으로 30타점도 올렸다.

물론 퓨처스 기록이기는 하지만 이 자체로도 일단 의미가 있다.

한승택은 “사람 일은 모른다. 언제 콜업돼서, 언제 스타팅을 나갈지 모르니까 은퇴하기 전까지는 항상 준비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훈련하고 시합을 했다. 나를 믿고, 맞게 준비했다고 생각했다. 최선을 다해서 임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했고, 퓨처스에서도 이렇게 쳐본 적이 없다”며 “1,2군 차이가 있으니까 1군에서 통해야 인정받고, 내 스스로도 인정하겠지만 1차적으로 퓨처스에서 준비해서 결괏값이 나왔기 때문에 자신감을 얻었다. 이런 성적, 이런 느낌으로 못 쳤는데 달라졌다. 1군 가서 조금만 더 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이야기했다.

퓨처스리그에서 한승택의 달라진 모습을 확인했던 이해창 배터리 코치가 기대감으로 1군에서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김여울 기자

이해창 코치의 이야기도 비슷하다.

이해창 코치는 “그 전에 타격이 약하다고 평가를 받기 했지만 2군에서 치는 모습이 정말 좋았다. 물론 1군과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래도 본인의 방향성을 잘 가지고 해서 2군에서 보여지는 모습이 1군에서도 잘 나오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응원을 하게 됐다”며 “일시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그냥 감 좋아서 잘 치는 정도의 느낌은 아니었다. 그 전보다는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했다”고 말했다.

퓨처스에서 함께 아침밥 먹으면서 준비했던 한승택과 이해창 코치.

얼마 전 이해창 코치가 1군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면서 앞서 준비했던 것들의 결과물을 직접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한승택도 자신의 9월이 궁금하다.

한승택은 “퓨처스에서는 어떻게든 결과가 나왔다. 시도하고 실패도 하고 성공도 하면서 성장하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군에서 이만큼 타석에 나갔을 때 어떤 결과가 있을지 궁금하기는 하다”며 “호령이 형 활약을 보면서도 더 힘을 냈던 것 같다. 형은 항상 열심히 하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걸 아니까 언젠가는 잘할 것이라는 걸 알았다. 노력하면 기회가 있고, 결과가 조금이라도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타격이 한승택에게 우선 필요했던 부분이지만 그의 본질은 사실 수비다. 포수는 아무리 뭐라고 해도 수비가 우선이기도 하다.

한승택은 “수비에서 뒤처지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 수비를 잘해야 1군에 나간다. 내가 어렸을 때 1군 경기를 나간 것도 타격이 아니었다”며 “수비가 1번이다. 퓨처스에 있는 어린 선수들한테도 수비가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살아보니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노력도 때론 배신은 한다. 노력만으로는 부족한 경우도 있다. 운도 필요하고, 타이밍도 중요하다.

하지만 노력은 내가 나에게 하는 약속이다.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한 단계 성장한다. 한승택의 기다림과 노력은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황량한 KIA의 가을 그래도 관전포인트는 남았다.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