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소생]농심, '신라면 툼바'로 볶음면 징크스 깰까

김아름 2024. 10. 17.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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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 크림파스타맛 '신라면 툼바' 출시
모디슈머 레시피 받아들여 제품화
파스타와 신라면 정체성 모두 살아있어
농심의 신제품 신라면 툼바/사진=김아름 기자 armijjang@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제품이 쏟아지는 소비의 시대. 뭐부터 만나볼지 고민되시죠. [슬기로운 소비생활]이 신제품의 홍수 속에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제품들을 직접 만나보고 가감없는 평가로 소비생활 가이드를 자처합니다. 아직 제품을 만나보기 전이시라면 [슬소생] '추천'을 참고 삼아 '슬기로운 소비생활' 하세요. [편집자]

*본 리뷰는 기자가 직접 제품을 구매해 시식한 후 작성했습니다. 기자의 취향에 따른 주관적인 의견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왕관의 무게를 견뎌라

신라면은 자타공인 '라면 시장의 1인자'다. 짜파게티, 진라면 등 2위권 브랜드들이 연 매출 2000억원을 넘느냐 마느냐로 경쟁할 때 신라면은 국내에서만 5000억원어치를 팔아치우고 있다. 해외로 가면 격차는 더 커진다. 지난해 신라면은 국내외에서 매출 1조2100억원을 기록했다. 2022년에 이어 2년 연속 1조원대 매출이다. 일각에선 닛신 등 일본 라멘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런 만큼 농심 내에서도 '신라면' 브랜드를 달고 나오는 제품들에는 기대가 크다. 어느 정도 이상의 성공이 따라와야 '본전치기'다. 그러지 못할 바엔 별개 브랜드로 가는 게 낫다. 신라면이라는 브랜드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신라면과 겹치지 않으면서도 신라면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왕'의 이름을 얻을 수 있다.

농심 신라면 국내·해외 매출 추이/그래픽=비즈워치

현재 신라면은 어느 정도 라인업이 구축된 상황이다. 오리지널 신라면을 중심으로 프리미엄 버전인 '신라면 블랙', 매운 라면인 '신라면 더 레드', 건면인 '신라면 건면'이 각자 자리를 잡았다. 평가도 나쁘지 않다. 문제는 국물 없는 '볶음면' 라인이다. 지난 2021년 신라면 볶음면을 출시했지만 반응이 애매했다. 

짜파게티의 성공에 가려 있지만 사실 농심은 국물 없는 라면 시장에서만큼은 강자가 아니다. 비빔면 시장에선 팔도에 밀려 단종된 제품이 열 손가락으로도 다 꼽을 수 없을 정도고 볶음면 시장에서도 불닭볶음면의 아성에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자존심이 상할 만하다. 

그런 농심이 올 가을 새로운 신라면 브랜드를 선보였다. 매콤한 크림 볶음면 '신라면 툼바'다. 이미 SNS 등에서 신라면을 활용한 메뉴 만들기로 인기를 얻었던 툼바 레시피를 받아들였다. 꿋꿋하게 분말소스를 고수하던 고집도 버리고 액상소스까지 도입했다(봉지면 기준). 칼을 갈고 나왔다는 의미다. 

파스타에 진심

농심은 그간 꾸준히 파스타 시장의 문을 두드려 왔다. 라면의 카테고리를 단번에 넓힐 수 있는 방법인 동시에 라면 기업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외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2018년엔 컵라면으로 토마토 스파게티와 까르보나라를 출시했고 2022년엔 아예 '파스타랑'이라는 파스타 전용 브랜드를 내놓기도 했다. 앞서 2016년엔 2010년대 유행했던 샐러드 파스타에 가까운 드레싱 누들 시리즈도 선보였다. 

하지만 이 역시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스파게티 컵라면은 나오자마자 단종됐고 드레싱누들은 단종 후 샐러드누들로 이름을 바꿔 2022년 다시 출시됐다가 또다시 단종됐다. 파스타랑은 지난해 신제품을 내놓으며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개당 3000원대라는 비싼 가격 때문에 인기를 얻지 못하는 상황이다. 

농심의 파스타에 대한 관심을 확인할 수 있는 제품 '파스타랑'/사진제공=농심

신라면의 새로운 라인업이 크림 파스타류인 '툼바'인 것도 이런 상황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확실하게 성공할 수 있는 카드를 꺼내 징크스 아닌 징크스를 깬다는 계획이다. 신라면 툼바는 이미 SNS에서 10년 가까이 인기를 얻었던 레시피다. 농심에 따르면 1020세대의 약 60%가 신라면 툼바를 들어봤거나 직접 먹어봤다고 대답했다.

직접적인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불닭볶음면 역시 오리지널 다음으로 많이 팔리는 버전이 매운 크림 맛인 '까르보 불닭볶음면'이다. 매콤하면서도 진한 크림의 '맵단짠' 맛은 국내에서만큼은 필승 조합으로 불린다. 이정도면 실패하기도 쉽지 않다. 

툼바 파스타인데, 신라면이야

신라면 툼바의 가장 큰 특징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액상스프'다. 다른 라면 제조사들은 볶음면에 액상스프를 사용한 지 오래됐지만 농심은 분말스프를 고집해 왔다. 하지만 이번엔 분말스프와 액상스프를 모두 준비했다. 분말스프로는 툼바의 크림 맛을, 액상스프로는 신라면의 매운 맛을 구현했다는 설명이다. 

오리지널 신라면과 비교하면 크림 소스의 영향으로 칼로리 500㎉에서 590㎉로 늘었다. 반면 나트륨은 1790㎎에서 1390㎎로 크게 줄었다. 농심 측은 '다양한 토핑을 취향에 맞게 넣으라'는 입장이지만 기왕 '파스타' 흉내를 내기로 한 만큼 파슬리 등의 건더기를 추가해 줬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농심 신라면 툼바의 면과 소스. 가루소스가 '툼바'를, 액상소스가 '신라면'을 책임진다/사진=김아름 기자 armijjang@

조리 과정은 다소 짧아졌다. 4분~4분30초가 걸리던 신라면과 달리 면을 익히는 시간이 3분으로 줄었다. 겉보기엔 신라면과 동일한 둥근 면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면이다. 국물·소스의 농도와 염도에 따라 면에 흡수되는 비율·국물에 우러나는 면의 전분 등을 고려해 각각 다른 면을 개발했다는 설명이다.

신라면 툼바를 먹기 전에는 까르보불닭볶음면과 비슷한 결의 맛일 거라 추측했지만 막상 먹어 보니 맛의 지향점이 달랐다. 불닭 계열처럼 과하게 맵지 않고 딱 매콤할 정도로만 맵기를 제어했다. 여기에 크림의 풍성함이 더해지니 먹는 중에는 맵다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았다. 

혼자 먹으면 사진 촬영을 깜빡할 정도로 맛있었던 결과. 사진은 농심에서 제공한 자료사진. /사진제공=농심

여기까지였다면 그냥 흔하게 맛있는 '크림파스타맛 라면'이었겠지만, 마지막에 첨가하는 액상스프가 이 라면이 '신라면'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모르고 먹어도 베이스가 신라면이라고 생각할 만큼 신라면만이 갖고 있는 특유의 얼큰함이 신라면 툼바에서도 느껴진다. 진짜 맛있었냐고? 완성된 면 사진을 찍는 걸 깜빡할 만큼 맛있었다. 

제품 특성상 매출이나 인기가 짜파게티나 배홍동 수준으로 올라서긴 어렵겠지만 편의점이나 집 찬장 한 칸을 차지하기엔 충분한 완성도다. 가격도 멀티팩 기준 4580원, 개당 1100원 꼴로 신상 라면 치고 나쁘지 않다. 이쯤 되면 '왕'의 이름을 이어받을 만하다. 

 

김아름 (armijjang@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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