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제9차 당대회 개최 / 출처 : 연합뉴스
북한의 제9차 노동당 대회가 ‘소문난 잔치’로 끝났다. 국가정보원이 “후계자 내정 단계”라고 공식 판단한 김주애에게 당 직함이 부여될 것이란 전망은 빗나갔다.
주애는 지난 19일 개막식부터 25일 폐막식까지 당 대회장에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폐막 후 군 열병식에서만 김정은 총비서 곁에 섰다.
13~14세 소녀가 미사일 정책에 관여한다는 관측까지 나왔지만, 북한은 4대 세습 공식화 대신 전혀 다른 카드를 꺼내 들었다.
더 주목할 점은 5년 만에 열린 최고 권력 기구 회의에서 한미 정책이나 경제 노선 등 어떤 분야에서도 새로운 변화가 감지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김정은은 미국에 핵보유국 지위 인정을 요구하며 조건부 대화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동시에 핵 포기 불가 입장을 재확인해 협상의 출발선이 달라지지 않았음을 명확히 했다.
한국에 대해선 “동족 범주에서 영원히 배제”하고 이재명 정부 유화책을 “서투른 기만극”이라 평가절하하며, 심지어 “한국 완전 붕괴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세습보다 체제 안정 택한 김정은의 정치 공학

북한, 제9차 당대회 개최 / 출처 : 연합뉴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5년 전 8차 당 대회 때는 경제·국방 5개년 계획 등 분석할 지점이 많았지만, 이번엔 새롭게 내세운 카드가 별로 없었다”고 평가했다.
주애의 직함 미부여는 단순한 ‘타이밍 조절’이 아니라, 김정은이 지금 단계에서 후계 구도 공식화보다 자신의 권력 기반 강화를 우선시했다는 정치적 선택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김정은은 이번 대회에서 당 총비서로 만장일치 추대되며 1인 체제를 재확인했다. 북한이 이런 선택을 한 배경엔 현 정세에 대한 나름의 자신감이 깔려 있다.
김정은은 사업총화 보고에서 “지금이 우리에게 유리한 정세”라고 판단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위법사태, 이란·우크라이나 문제 등으로 외교 역량이 분산된 상황에서, 북한은 급하게 협상 테이블에 나설 이유가 없다고 본 것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전반적으로 지난해 기조를 유지하는 수준에서 각종 결정이 나왔으며, 새로운 전환보다 기존 노선을 구조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고 분석했다.
변하지 않은 대외 정책, 높아진 협상 문턱

북한, 제9차 당대회 개최 / 출처 : 연합뉴스
북한의 대미 메시지는 겉보기엔 유연해 보이지만 실상은 더 까다로워졌다. 핵보유국 지위 인정이라는 전제 조건은 미국이 수용하기 사실상 불가능한 요구다.
이는 이전보다 더 높은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보이며, 협상 조건이 더욱 까다로워졌다는 의미다. 트럼프 행정부가 1기 때처럼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하더라도, 이번엔 북한이 더 높은 대가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에 대한 메시지는 더욱 가혹했다. 김정은은 “핵보유국의 문전에서 실행되는 한국의 부잡스러운 행동이 우리 안전환경을 다치게 하면 임의의 행동을 개시할 것”이라며 고강도 위협을 가했다.
이재명 정부가 전임 정부와 달리 대북 유화 정책을 펴고 있음에도, 북한은 이를 “졸작”으로 폄하며 수용 불가 입장을 명확히 했다. 이는 남북관계 개선 가능성이 단기적으로 희박함을 시사한다.
‘국가핵무력 강화’와 도발 시나리오

북한, 제9차 당대회 개최 / 출처 : 연합뉴스
당 대회에서 북한이 향후 5년간(2026~2030년) “국가핵무력” 강화 방침을 채택한 점은 군사 도발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과거 패턴을 보면 북한은 당 대회 같은 큰 행사 이후 결정 사항을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한국을 향한 군사적 시위를 병행해왔다. 특히 ‘한국 완전 붕괴’ 언급은 실제 고강도 도발의 명분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주애가 열병식에서 김정은과 똑같은 가죽 코트를 입고 아버지보다 가운데 선 모습은, 비록 공식 직함은 받지 못했지만 여전히 가장 유력한 후계자임을 과시하는 제스처로 해석된다.
북한이 후계 구도를 서두르지 않는 이유는 김정은(40대 초반)이 아직 젊고, 체제 안정이 우선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주애의 존재감이 지속적으로 부각되는 것은, 북한이 장기적으론 4대 세습 수순을 밟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결국 이번 9차 당 대회는 ‘변화 없음’이 핵심 메시지였다. 북한은 당분간 김정은 중심의 1인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면서, 한미에 대한 강경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새로운 정책 카드가 없다는 건 정세 변화를 추동할 의지가 약하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기존 노선을 더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한반도는 ‘고착된 긴장’이 장기화되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