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의 정치 완화에 방점…‘비례’ 최대 50석 확대 논의[국회의원 선거제도, 이번엔 바꾸자]
국회는 오는 27일부터 전원위원회를 열고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 방안을 논의한다. 국회 재적의원 300명 전원이 2주간 정치개혁에 대한 난상 토론을 벌인다. 전원위 개최는 2004년 ‘국군부대의 이라크 전쟁 파견 연장 동의안’에 대한 토론 이후 19년 만이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지난 2일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전원위원회는 한국 헌정사의 거대한 전진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회가 19년 만에 전원위를 여는 이유는 현행 선거제도로는 팬덤정치와 여야의 극한 대립 현상을 완화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 의장은 지난 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신문방송편집인협회 간담회에서 “한 표만 이겨도 모든 것을 차지하는 승자독식의 선거제도 때문에 사생결단의 정치가 횡행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정치 양극화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행정연구원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해 12월21일~지난 1월15일까지 유권자 1001명을 대상으로 대면 면접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자의 61.8%, 더불어민주당 지지자의 74.1%가 상대 정당이 비호감이라고 답했다. 한국의 상대 정당에 대한 비호감도는 미국(민주당·공화당 각각 86.8%), 영국(노동당 80.5%, 보수당 82.6%) 다음으로 높았다. 반면 연정 국가인 독일은 사회민주당 지지자의 기독교민주당에 대한 비호감도가 23.8%, 기민당 지지자의 사민당 비호감도가 16.6%에 그쳤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도 다양한 선거제 개편안을 논의해왔지만 여야 이견으로 공전을 거듭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의장은 지난달 22일 비례대표 의석수 확대를 정치개혁 의제로 공식 제안했다. 국회의장실 산하 ‘헌법개정 및 정치제도 개선 자문위원회’는 정개특위에 세 가지 선거제 개편안을 제시했다. ‘지역구 소선거구와 병립형 비례제’, ‘지역구 소선거구와 권역별 준연동형 비례제’, ‘지역구 복합선거구와 권역별 개방형 명부 비례제’ 등이다. 이 중 두 가지 방안은 비례대표 의석수를 지금보다 50석 늘리는 것을 전제로 한다. 정개특위는 기존 논의와 김 의장의 제안을 병합해 검토하기로 했다. 김 의장은 4월 안에 선거제도 개편을 끝내자는 목표를 세웠다. 국회에서 논의 중인 선거제 개편안을 김 의장 제안 중심으로 살펴봤다.
■소선거구-병립형 비례대표제
비례 ‘97석’ 확대…전국 득표율 10% 땐 4~5석 보장
일각선 “비례성 약화”…지역·비례 중복입후보 거론
김 의장이 제안한 첫 번째 안은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되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과거의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회귀시키는 방안이다. 지역구 의석수 253석은 지금처럼 유지하는 대신, 비례대표 의석수를 현행 47석에서 97석으로 50석 늘리자고 제안했다.
병립형은 지역구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나누는 제도다. 정당 득표율 10%를 얻은 정당에 전체 비례 의석수 47석의 10%인 4~5석을 보장한다. 반면 연동형은 지역구에서 정당 득표율만큼의 의석을 채우지 못했다면 비례대표에서 그만큼의 의석을 채워준다. 정당 득표율 10%를 얻은 정당에 전체 의석수 300석의 10%인 30석을 보장한다. 연동형에서 병립형으로 갈수록 비례성이 줄고 사표가 늘어난다. 시민사회에서 병립형 회귀는 개악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 의장은 병립형으로 돌아가는 대신 비례대표 의석수를 현행 47석에서 97석으로 50석 늘리자고 제안했다. 의원 정수 확대로 비례성 축소 문제를 보완하자는 것이다. 이 경우 전체 의원 정수도 300석에서 350석으로 늘어난다. 비례대표 의석 배분 방식으로는 전국득표율을 기준으로 뽑는 현행 방식과 권역별 비례대표제 두 가지를 다 고려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지금처럼 전국득표율을 기준으로 비례대표를 배분하는 경우는 지역구 출마자가 비례대표에도 출마할 수 있도록 한 ‘중복입후보제’ 도입 검토를 권고했다. 호남에 출마하는 국민의힘 지역구 후보, 영남에 출마하는 민주당 후보 등 약세 지역 출마자를 비례대표로 구제하자는 취지다. 지역구에서 낙선한 후보자 중 상대 득표율이 가장 높은 사람 1명을 비례대표 당선인으로 결정할 수 있다.
중복입후보제에 찬성하는 측은 약세 지역에서 선거 경쟁이 활성화하고 지역주의 완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만 지역구에서 패한 후보자가 비례대표로 부활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가 있을 수 있다. 또 중복 입후보 대상을 정당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면서 중진 의원 등 영향력이 큰 정치인의 당선 보장 통로로 사용될 수 있다. 여성·청년·장애인 등 정치적 소수자, 직능대표 등 비례대표의 취지가 약화할 수도 있다.
■소선거구-권역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구, 6개 권역으로…‘위성정당 방지법’ 전제돼야
호남서 여당 의원, TK서 야당 의원 나올 가능성 커져
두 번째 안은 소선거구제를 유지하고 권역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방안이다. 전국을 서울, 인천·경기, 충청·강원, 전라·제주, 경북, 경남의 6개 권역으로 나눠 지역별로 비례대표를 배분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이 경우에도 비례대표 의석수를 현행 47석에서 97석으로 50석 늘리도록 했다.
지역주의 완화라는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살리려면 비례대표 의석수 확대는 필수적이다. 수도권이 인구 절반을 차지하기 때문에 비례대표 의석 47석으로는 수도권을 제외한 다른 5개 권역에 할당되는 의석수가 20여석 규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김 의장은 더 늘린 비례 의석수 50석을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의 대표성 강화를 위해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대구·경북(TK) 지역에서 민주당 의원이, 호남에서 국민의힘 의원이 탄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비례 의석수가 권역별로 쪼개지면 비례대표제의 직능대표성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015년 8월 국회 정개특위가 개최한 ‘권역별 비례대표제도에 관한 공청회’에서 “비례대표제의 직능대표성을 권역별 비례제에서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고, 지역의 이익대표가 아니라 국가적 의제를 고민하는 비례대표제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 의장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하는 경우 위성정당 창당 꼼수를 줄이도록 ‘위성정당 방지법’을 통과시키도록 권고했다. 강민정, 이탄희 민주당 의원 등이 지역구 후보자를 추천한 정당의 기호와 명칭을 정당 명부 비례대표 투표용지에 의무적으로 표시하도록 한 위성정당 방지법을 발의한 상태다. 지역구 의석수의 50% 이상 후보자를 추천한 정당의 비례대표 의석수 50% 추천을 의무화하는 법안도 위성정당 방지법으로 거론된다.
■도농복합형 선거구-권역별 개방형 명부 비례대표제
인구밀집도 따라 획정, 중대·소선거구제 병합 적용
비례 후보 명부제, 거대 양당 나눠먹기 강화 우려
세 번째 안은 지역구에는 도농복합형 선거구제를 도입하고 비례대표에서 권역별 개방형 명부제를 도입하는 방안이다. 현행 국회의원 정수 300명을 유지하되 수도권 의석을 일부 줄여서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자는 취지다.
김 의장은 대도시 지역은 지역구당 3~10인의 중대선거구제를, 인구밀집도가 낮은 농·산·어촌 지역은 소선거구제를 각각 적용하는 도농복합형 선거구제를 제안했다. 지금도 4~5개 군이 하나의 선거구를 이루는 농·산·어촌 지역구가 통폐합되지 않게 하자는 취지에서 중대선거구 도입 대상을 대도시로 한정했다.
김 의장은 비례대표 공천 과정에 대한 국민 불신을 해소할 방안으로 개방형 명부 비례제를 제시했다. 현 제도는 유권자가 정당을 선택하고 비례대표 순번은 정당 내부에서 정하는 폐쇄형 방식이다. 개방형은 비례대표 후보를 유권자가 직접 선출하는 방식이다.
중대선거구제는 지역주의를 완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소수정당 의회 진출을 쉽게 하는지를 두고는 논쟁이 분분하다. 소수정당 후보자의 당선 가능성을 높일 것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거대 양당의 나눠 먹기식 공천으로 취지가 퇴색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중대선거구제로 파벌 조장, 선거비용 증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개방형 명부 비례제는 비례대표 후보를 유권자가 직접 뽑기 때문에 국민 수용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명망가에게만 유리하고 파벌정치를 강화할 수 있는 것은 단점이다. 여성·청년·장애인 등 정치적 소수자, 직능 전문가의 의회 진출을 어렵게 할 수 있다.
■여야 합의와 국민 동의가 관건
의장 중재안에 대한 각 당 정개특위 위원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국민의힘은 병립형 비례제 회귀를 선호하고 의원 정수 확대에 부정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제안한 중대선거구제 도입은 검토해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큰 틀에서 비례성 확대에 공감하지만 의석수 확대 여부, 중대선거구제 도입 여부 등을 두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정의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선호하고, 의원 정수 확대에 찬성한다. 정개특위는 17일까지 두 개 안을 추려 결의안을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전원회의를 열겠다는 것이다.
국회 차원의 합의도 관건이지만 개편안에 대한 국민 지지 확보는 더 큰 과제다. 특히 의원 정수를 늘리는 데 국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지가 문제다. 세비 동결과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등이 우선돼야 한다는 자성이 나온다. 국민 동의와 더불어 개혁 취지를 살리는 것도 중요하다. 남인순 정개특위위원장은 “비례성과 대표성을 높이고 정치 다양성을 증진하는 것이 이번 선거제도 개혁의 중요한 목표이자 방향”이라고 밝혔다.
김윤나영·조미덥·문광호·탁지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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