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사이버 도박-코인 투자 ‘급전’ 빌리려 암구호 누설한 군 간부들

손효주 기자 2024. 9. 23.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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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교 등 군 간부들이 사채업자에게 가상화폐 투자와 사이버 도박 등에 필요한 돈을 빌리기 위해 신분 확인 및 담보용으로 암구호를 유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별도로 국군방첩사령부는 사채업자들에게 암구호를 누설한 20, 30대 군 간부 여러 명에 대해 같은 혐의를 적용해 수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 결과 사채업자 A 씨 등은 시중은행에서 대출이 어려운 군 간부들에게 군인 신분증을 확인하고도 "믿기 어렵다"며 암구호를 대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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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첩사, 올 초 첩보 입수 수사 착수
장교 1명, 암구호 누설로 올 봄 군검찰 송치
같은 혐의 군 간부 여러 명 추가 입건 수사 중
‘암구호 수집’ 사채업자, 대공용의점은 없어
장교 등 군 간부들이 사채업자에게 가상화폐 투자와 사이버 도박 등에 필요한 돈을 빌리기 위해 신분 확인 및 담보용으로 암구호를 유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암구호는 적군과 아군을 구별하기 위해 그날그날 각 부대가 정해 문답식으로 주고받는 단어로 3급 비밀이다. 국군정보사령부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유출 사건 이후 또다시 비밀 유출 사건이 알려지면서 군의 고강도 쇄신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암구호 수집 수상한 사채업자” 첩보

22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전주지검은 자신에게 돈을 빌려달라는 군인들이 진짜 군인이 맞는지 확인한다는 명분으로 암구호를 물어 알아낸 혐의(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로 사채업자 A 씨를 이달 초 기소했다. 전북경찰청은 암구호를 수집한 사채업자가 이미 기소된 A 씨 외에도 더 있는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별도로 국군방첩사령부는 사채업자들에게 암구호를 누설한 20, 30대 군 간부 여러 명에 대해 같은 혐의를 적용해 수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간부들은 충청지역 등의 부대에 근무하는 이들이라고 한다.

암구호 유출 사건 수사는 올해 초 방첩사가 첩보 활동을 통해 암구호를 수집하는 사채업자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시작됐다. 수사 결과 사채업자 A 씨 등은 시중은행에서 대출이 어려운 군 간부들에게 군인 신분증을 확인하고도 “믿기 어렵다”며 암구호를 대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댄 암구호가 실제 그날 부대에서 쓰는 것이 맞는지 확인된 뒤에야 돈을 빌려준 것이다.

암구호는 전화로도 전파할 수 없고, 유출되면 즉시 폐기한 뒤 새로 만들어야 할 정도로 보안성이 강조된다. 북한군이나 간첩이 입수할 경우 군부대 침입에 곧바로 사용할 수 있는 중요 비밀이 군 외부로 누설된 것이다.

수사 과정에서 방첩사는 가상화폐 거래에 쓸 돈을 빌리면서 암구호를 누설한 군 장교 B 씨를 가장 먼저 적발해 올해 봄 군 검찰로 송치했다. 군사법원 등에 따르면 B 씨는 올해 5월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2년 4개월을 선고받았고 항소 포기로 형이 확정됐다. 수사 착수부터 군 검찰 송치, 기소, 법원 선고가 5개월 이내에 빠르게 진행된 것. 암구호 유출은 부대 침입 및 테러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빠르게 처리한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방첩사는 B 씨 수사 과정에서 사채업자들에게 암구호를 알려준 군 간부가 더 있다는 사실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방첩사는 5월부터 전북경찰청과 공조 수사에 나서며 수사를 확대했고 군 간부 여러 명을 입건해 수사 중이다. 이들이 암구호를 알려준 이유는 사이버 도박 등에 쓸 돈을 빌리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 사채업자들, 대공 용의점은 없어

다행히 사채업자들에겐 대공 용의점은 없고 부대 침입 사건도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럼에도 암구호 누설은 부대 문을 활짝 열어준 것과 마찬가지인 만큼 재발 방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소식통은 “방첩사의 초기 인지 수사가 없었다면 암구호 수집 관련 소문이 퍼지면서 간첩 등이 사채업자에게 접근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간첩 연계 여부와 별개로 일부 간부지만 기강 해이를 보여준 것은 문제”라고 했다. 한 육군 장교는 “일정한 주기로 각 부대에 암구호가 하달되는데 외부에 유출됐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며 “유출된 암구호가 사용되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전주=박영민 기자 minpr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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