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노라>, 환상과 결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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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오면서 전후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을 계승하여 미국의 현실을 냉정한 동정심을 담아 그려내는 독립 영화 감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켈리 라이카트의 <낸시와 루시>, 랜스 해머의 <발라스트>, 샤프디 형제의 <헤븐 노우즈 왓>처럼, 전문화되지 못한 이들이 직면한 경제적 어려움과 양지 사회와의 단절, 그리고 그런 현실 속에서도 삶을 지속하려는 희미한 의지를 포착하는 영화들이 바로 그것이다. 뉴욕타임스의 비평가 A. O. 스콧이 이를 ‘네오-네오리얼리즘’이라 부르자고 했을 정도로 21세기의 인디 뉴웨이브가 되었는데, 결국 2025년 오스카 시상식에서 션 베이커의 <아노라>가 작품상을 받으며 장르적으로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되었다.
 
사실 주류 영화에서 거의 묘사되지 않는 소외된 커뮤니티를 주인공으로 삼아, 사회 전체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에 경력 전부를 바쳐 온 션 베이커가 성 노동자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성 노동자는 본질적으로 로맨스와 거래적인 관계를 위태롭게 오가는 직업이며, 현대인들의 인간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감정적, 경제적 상호작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베이커는 단순히 하위 계층으로서 동정 어린 시선으로 성 노동자를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성 노동자의 이러한 직업적 특성을 통해 사회 전반을 탐구하기 위한 중요한 서사적 장치로서 성 노동자를 다룬다. <아노라> 역시 그동안 베이커가 만들어 온 영화들과 비슷한 맥락을 공유하고 있긴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 속 성 노동자의 거래적인 성격을 집중적으로 파헤친다는 점에서 현실을 다루는 태도가 유독 냉정하게 느껴지는 영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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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노라>는 기본적으로 3막 구조로 이루어져 있고, 그중 1막은 주인공 애니가 스트리퍼로 일하는 스트립 클럽의 노동 현장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스트립 클럽은 기본적으로 돈을 받고 ‘특수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래의 공간이며, 이에 따라 영화의 오프닝에서도 마치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처럼 스트리퍼들이 호객을 하거나, 흥정을 하고, 때로는 서로 더 비싼 고객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모습이 빠르게 지나간다. 고객의 몸 위에서 옷을 하나씩 벗으며 춤추는 시각적으로 자극적인 장면이 즐비하긴 하지만 전부 시장 경제 속에서의 거래일 뿐, 이 공간에서 인간 간의 진심 어린 사랑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반야의 등장으로 이러한 거래의 공간을 당연하게 여기던 애니에게 있어 심리적인 혼란을 초래하기 시작한다. 러시아어를 할 줄 안다는 언어적 동질감으로 이어진 이 젊은 고객이 알고 보니 러시아 올리가르히의 2세이고, 그것이 본인의 낡아빠진 인생의 탈출구가 되어 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이후 반야의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 속으로 애니가 빠지게 되는데, 이는 애니가 살던 삶에 비해 너무 빠르고 화려해서 초현실적인 분위기까지 낼 정도이다. 하지만 애니는 이 순간마저 결국은 스트립 클럽에서의 거래의 연장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다. 반야가 일주일 동안 에스코트를 해달라고 할 때도 애니는 마치 스트립 클럽에서처럼 그와 가격에 대해 흥정을 한다. 그러나 애니는 반야가 불어넣는 달콤한 환상 때문에 이것이 거래 이상의 무언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라스베이거스에서의 반야의 청혼으로 이 거래적 관계는 순식간에 사랑으로 바뀌게 되고, 애니는 결국 자신의 통제권을 반야가 만들어낸 환상에게 넘겨 버린다. 하지만 애니는 결혼 이후에도 반야와 관계가 여전히 거래 관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노라>에는 마치 신데렐라 영화 같았던 1막의 환상을 깨부수는 2막이 들이닥치기 전에도 애니가 이 결혼이 얼마나 비정상적인지 알아차리는 장면이 있다. 애니는 게임에 열중하는 반야에게 부모님이 결혼에 대해 알고 있는지, 그렇다면 언제 만날 수 있는지 물어보지만, 그는 부모에 대한 질문을 자꾸 회피하려고 한다. 이때 반야의 태도는 앞부분에서 그가 애니에게 자신의 부모가 누구이며 얼마나 부자인지에 대해 자랑하듯이 알려줄 때와는 완전히 다르며, 그래서 그녀는 결혼의 지속성에 대해 강한 의심을 가진다. 이 장면에서 흥미로운 점은 애니의 행동이다. 애니는 이때 게임의 열중하는 반야의 주의를 자신에게 돌리려고 애쓰는데, 마치 그의 헛소리를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헛소리가 주는 환상을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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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위에서 언급했던, ‘1막의 환상을 완전히 깨부수는 2막’이 드디어 시작된다. 반야의 부모가 결국 이 충동적인 결혼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들은 결혼을 최대한 빠르게 무효화하기 위해 3명의 하수인(토로스, 가닉, 이고르)을 반야의 집으로 보낸다. 결혼을 무효로 만들라는 임무를 받은 세 명의 하수인과 반야, 그리고 애니 사이에 스크루볼 코미디를 연상케 하는 실랑이가 벌어지고, 옥신각신한 끝에 반야는 애니를 집에 두고 도망가버린다. 따라서 반야의 집에는 세 명의 하수인과 애니만 남게 되는데, 이들은 어찌 됐든 도망간 반야를 찾아야 한다는 공동의 목표에 합의하면서 반야를 찾아 나서게 된다.

2막은 분명 <아노라>에서 가장 전통적인 코미디에 가까운 부분이고 그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기 때문에 장르적으로 매우 즐겁지만, 그 밑에는 뉴욕의 소련 디아스포라와 거기에 얽힌 계급 역학을 깊게 다루는 네오리얼리즘 역시 바탕에 깔려 있다. 이들이 반야를 찾으러 돌아다니는 브루클린의 브라이튼 비치는 구소련 이민자들이 주로 살고 있는 ‘리틀 소비에트’라고 부를 수 있는 지역이며, 소련 붕괴 후 그 치하에 있던 수많은 1세대 이민자가 아메리칸 드림, 그러니까 낡고 무너진 현실을 피해 광이 번쩍이는 화려한 꿈을 바라고 온 곳이다. 애니를 포함한 네 명의 일행 모두 구소련 지역에 뿌리를 두고 있으므로 이들의 여정에는 묘한 동질감이 존재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혈통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 역시 엿볼 수 있다.
 
애니의 경우 본명은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아노라’지만, 그녀는 자신의 이민자 3세라는 혈통을 드러내는 그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의도적으로 기피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민자다운 영어 억양을 숨기지 않고 러시아어를 더 편하게 여기는 세 명의 하수인과 다르게 애니는 완벽한 브루클린 억양을 구사하는데, 이는 애니가 본인의 혈통을 어떻게 여기며 살아왔는지 파악할 수 있는 특징이 된다. 돌이켜 살펴보면 반야 역시 본명인 ‘이반’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애니와 결혼하려고 한 것도 부모님이 자신을 통제하는 러시아를 떠나 미국 영주권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반야는 영어가 서툴기 때문에 러시아어를 더 편하게 여기긴 하지만, 본인의 러시아 억양을 다소 부끄러워하고 미국 억양으로 고치고 싶어 한다. 이렇게 애니와 반야는 모두 각자의 민족적 혈통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지는 저마다의 취약성을 가리기 위해 미국식 가면을 쓰고 있으며, 베이커는 이러한 젊은 이민자의 이중성을 영화에 구조적으로 반영했다. 시끄럽고 화려한 클럽과 차가운 겨울 해변의 풍경, 고함이 오가는 순간과 고요함의 순간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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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와 반야가 젊은 이민자 세대의 이중성을 대변한다면 토로스와 가닉은 과거 소련 치하에 있던 아르메니아 출신 이민자라는 점이 부각된다. 아르메니아는 본래 독립된 나라였으나 소련 침공으로 인해 강제로 소련 일부로 귀속되었던 역사가 있는 국가이다. <아노라>의 배경 시기가 소련 붕괴 후 수십 년이 지난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바다 건너 저 멀리 있는 러시아 올리가르히 가문의 부름에 따라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사회주의의 붕괴 후에도 여전히 자본주의 체제를 통해 민족에 대한 통제와 복종의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는 탄식도 느껴진다.
 
2막에서 애니를 포함하여 반야가 어울리던 친구들이 부자가 아닌 평범한 노동자 계층으로 밝혀진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사실 반야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들 역시 진심 어린 관계라기보다는 그의 재력을 보고 가깝게 지낸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애니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반야는 이 낯선 땅에서 지루하지 않도록 해줄 러시아계 친구가 필요했고, 그들은 반야가 제공하는 미국적 환상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반야를 찾는 것에 생계가 걸려 있는 하수인들은 반야 주변 친구들의 일터로 무작정 쳐들어가서 때려 부수거나 그들의 노동을 방해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철없는 특권층 청년 한 명의 변덕이 그 밑 계층에 대해 어떤 연쇄 반응을 일으키는지 보여주기 때문에 2막에서 연이어 펼쳐지는 슬랩스틱 코미디에도 맘 놓고 웃을 수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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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튼 비치를 헤매고 헤매다가 결국 반야를 찾으면서 시작되는 3막은 코미디 장르처럼 느껴지던 2막에 비해 훨씬 건조하면서 현실적이다. 반야의 부모님이 마침내 미국에 도착하여 애니에게 결혼 무효를 종용하는 내용이 뒤따르는데, 여기서 애니는 그의 부모님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애니는 이 순간까지도 반야에게 부모님을 설득해달라고 계속 부탁하지만, 반야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한다. 결혼 취소를 위해 라스베이거스로 다시 떠나기 직전에 애니는 다시 한번 반야에게 ‘남자답게 맞서’라며 일갈하는데, 마침내 반야는 직접 입을 열고 자신이 만든 애니의 환상에게 종언을 고한다. 이때부터 다시 둘 사이의 관계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거래적인 관계로 돌아가게 되는데, 한 가지 차이라면 이반은 더 이상 아노라의 서비스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라스베이거스의 변호사 사무소에 도착한 뒤 결혼 무효 문서에 사인하면서 아노라와 이반의 거래적 관계는 완전히 종말을 맞이한다. 아노라는 사무소를 나가면서 이반의 어머니에게 그가 얼마나 찌질한 청년이며 그의 가족이 얼마나 문제투성이인지에 대해 모욕하는데, 이를 보고 이반의 아버지가 웃는다. 아노라의 말이 맞기 때문이다. 이반의 가족은 경제적으로는 부유하지만, 감정적으로는 완전히 파산 상태이다. 하지만 이러한 아노라의 응수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사실이 그를 더욱 크게 웃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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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는 토로스가 약속했던 현금을 받을 때까지 이고르가 아노라를 따라다니기 때문에 아노라와 이고르 사이의 관계가 집중적으로 보여진다. 사실 이 영화 속에서 진정으로 아노라를 공감해주는 사람은 이고르가 유일하다. 저택에서의 소동 후 이고르가 아노라에게 사과하려고 한 것도, 그녀가 정확히 어떤 상황 속에 처해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고르가 사무소에서 나가며 이반의 가족에게 아노라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장면에서, 비록 그가 부유한 자들 밑에서 일하는 고프닉에 불과할지라도 인간적으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가치까지 잊고 살아가는 인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브라이튼 비치가 배경인 2막으로 되돌아가 보면, 이고르가 추위에 떠는 아노라에게 빨간 스카프를 건네는 장면이 있다. 원래 토로스가 저택에서 마구 소리 지르는 아노라의 입을 막기 위해 썼던 것이며, 이고르는 그것이 또다시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챙긴 것이다. 아노라는 그것이 자신을 침묵시키는 억압의 도구로 쓰였던 기억 때문에 처음에는 이고르가 건네는 스카프를 거부한다. 하지만 점점 심해지는 추위 속에서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스카프뿐이며, 결국 추위를 견디기 힘들어지자 아노라는 이고르에게 다시 스카프를 달라고 한다. 자신을 억압했던 도구를 다시 받아들이는 것은 아노라에게 정말 내키지 않는 일이며 모욕적이다. 하지만 저택에서와는 다르게 적어도 이번에는 아노라가 스스로 그것을 원하고 있고, 입을 조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원하는 위치에 부드럽게 감쌀 수 있다. 그것이 아무리 억압일지라도 스스로가 원하고 있다면 기댈 곳 전혀 없는 겨울 해변에서 아노라에게는 충분한 위안이 된다. 억압을 받아들이는 것은 정말 수치스러울 수 있지만, 추위에 떠는 것보다는 훨씬 편안하다.
 
나중에 모든 소동이 끝나고 저택에 이고르와 단둘만 남았을 때, 아노라도 이고르에게 잘 때 덮으라며 빨간 담요를 건넨다. 이 둘은 서로에게 무엇이 위안이 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은 아무래도 비슷한 이민자 세대라는 동질감에서 오는 것처럼 보인다. 계층적으로 착취당할 수밖에 없는 이 둘이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은 억압이 제공하는 안정감을 서로 나누고, 거기에 몸을 기대는 것이다. 션 베이커는 이러한 아노라와 이고르 사이의 계급적 연대 의식에 대한 상징을 애써 과장하지 않는 대신 진심 어린 감정의 신호로 미묘하게 깔아두는 것을 선택했다. 이는 마구 폭주하며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이반과의 관계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거래와 복종이 난무하는 이 영화 속에서 약간은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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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이고르가 아노라를 집에 데려다주고, 차 안에서 그녀에게 토로스에게서 몰래 훔친 결혼반지를 다시 돌려주는 장면이 나온다. 아노라는 처음에는 그 반지를 받고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 것처럼 보이다가, 이내 이고르의 몸에 올라타서는 그와 섹스를 하려고 한다. 하지만 아노라에게 키스하려는 이고르의 행동에 그녀가 완전히 무너져서는 울기 시작하고, “Greatest Day”로 흥겹게 시작했던 <아노라>는 아무런 음악도 없이 와이퍼 소리와 함께 이렇게 끝나버린다. 이고르는 <아노라>에서 숨겨진 진짜 로맨스 상대처럼 행동하기 때문에 결국 아노라가 이고르를 육체적으로 받아들이는 이 엔딩이 마치 해피 엔딩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조용한 엔딩은 감정적으로는 거의 핵폭탄을 맞은 것과 비슷한 파괴력을 내는, 헛된 환상에 끌려다녔던 것에 대한 일종의 감정적 처벌이다.
 
잠시 <아노라>의 오프닝을 돌이켜 생각해보자. 스트립 클럽에서 남성들에게 올라타서는 신체적 마찰을 제공하는 거래의 현장이 바로 아노라의 삶이며, 우리에게는 이반과의 짧은 결혼 생활 내내 이루어졌던 피상적인 로맨스와 함께 겹쳐 보였던 장면이다. 그리고 엔딩에서 이고르에게 올라타는 아노라의 행위는 마치 오프닝의 거래적인 분위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고르는 영화 내내 아노라에게 진심 어린 친절과 동정심을 베풀었고 그녀의 섹스 서비스가 아닌 진심을 원했다. 하지만 아노라에게 그것은 반지와 섹스의 등가교환이었고, 이고르가 이 거래의 장벽을 넘어 키스하려고 시도하자 그녀는 저항한다. 나쁜 결말이 뻔히 보이던 이반의 결혼반지를 받을 때는 행복했지만, 자신을 인간으로 바라보는 이고르가 주는 결혼반지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고르가 이반이 제공하던 환상을 줄 수 없는 남자라는 것을 아노라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고르의 키스를 거부하는 것은 그녀 스스로가 얼마나 거래적인 존재인지 거울에 비추어 보여주는 순간이기 때문에, 아노라는 더 이상 심리적으로 버티지 못하고 결국 무너져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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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으로 <아노라>는 낮은 계층의 사람들이 왜 끊임없이 나쁜 거래에 빠져드는지에 대한 영화이며, 현대 사회에서 사랑이 주로 특정 사람에 대한 애착보다는 저마다의 환상으로 인해 촉진된다는 씁쓸한 결론으로 끝맺는다. 아노라는 자신이 결말이 예정된 나쁜 거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믿고 있는 미국적 로맨스가 그 노동의 고통을 마취시키기 때문에 이러한 거래를 더 받아들이기 쉽게 만들었다. 환상이라는 감옥에 갇혀 살고 있는 이들에게는 감옥도 집이 될 수 있다. 어찌 됐든 착취당할 운명이라면, 가면을 쓰고 그 사랑을 한번 믿어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아노라>를 통해 베이커가 한 것은 일종의 건설과 철거로서, 거의 모든 종류의 미국적 환상을 터무니없을 정도로 아주 빠르게, 아주 높이 쌓아 올린 다음, 엔딩에 이르는 동안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전부 산산조각내는 것이다. 신데렐라 스토리로 시작한 이 영화에는 아무런 카타르시스도 없고, 심리적인 보상도 없다. <아노라>는 션 베이커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허무주의적이고 비관적인 영화이지만, 그럼에도 그가 각 캐릭터의 아크에 불어넣은 배경의 생생함과 계급적 연대의 가능성은 엔딩 후에도 우리로 하여금 희망을 찾게끔 만든다. 베이커의 필모그래피는 본질적으로 하위 계층에 대한 지대한 관심에 기반한 관찰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것이 우리에게는 <아노라> 속의 모든 캐릭터에게 깊게 빠져들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달리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없는 공간만큼 무언가를 다시 건설하기에 좋은 공간이 없다. <아노라>의 엔딩은 완전히 공허하지만, 그곳에서 무엇을 다시 건설할지는 각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