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도 헐렁한 옷을 잘 입고 다니는 편이라 꽤 오랫동안 티가 잘 안 났나 보다. 하지만 임신 7개월에 접어들자 배가 쑥쑥 나오기 시작했고, 이제 분홍색 배지가 없어도 한눈에 임신부라는 걸 알아보는 듯했다. 평소 사적인 대화가 거의 없던 나의 재봉틀 수업에서도 내가 임신부임을 알아차렸고, 그때부터 관심과 간섭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다리기하는 질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병원은 어디로 다녀요?”
내가 사는 소도시에서는 출산이 가능한 산부인과 병원이 한 손에 꼽힌다. 그래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예상을 크게 빗나갈 수가 없다. 좀 신선해 봤자 40분 거리의 조금 더 큰 도시로 간다는 정도의 답변이 일반적이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아.... 저는 대전으로 가요.”
차로 한 시간 반 거리까지 가서 진료를 보고 아이를 낳는다니, 당연히 왜냐는 질문이 따라붙었다. 나는 자연주의 출산을 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병원이어서 그렇다고 조심스레 대답했다. 상대의 눈치를 살피며 살짝 긴장되기까지 했다. 자연주의 출산은 무통 주사, 회음부 절개, 관장 등 꼭 필요하지 않은 의료적 행위는 되도록 배제하고, 아기와 엄마가 주체가 되어 최대한 자연스럽게 출산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이지 않은 이 방식을 선택하겠다고 했을 때, 가장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부터도 흔쾌히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지는 않았다. 아마도 걱정되는 마음이 앞서서 그랬을 테다. 하지만 그런 반응을 겪은 이후로 나에게 출산에 관한 이야기는 조금 조심스럽고 신경 쓰이는 주제가 되어 있었다.
“오 그렇구나.... 그러면 조리원도 그쪽으로 가세요?”
나는 이번에도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저는 집에서 조리할까 싶어요.”
작은 교실 안, 일순간 재봉틀 소리가 멈추고 조용해졌다. 동시에 ‘헉’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왔다. 놀람과 의문과 혼란의 탄식이었으리라. 예상보다 격한 반응에 놀란 나도 손놀림을 멈추고 슬며시 주변을 살폈다. 뒤이어 각종 설득과 회유의 말들이 이어졌다. 조리원은 최후의 천국이다, 아이는 안 낳아도 조리원은 다시 가고 싶다, 조리원 후에 산후도우미까지 있어도 힘들었다, 등등. 나와 한 번도 말을 섞어본 적 없는 분도 적극 참전하셨다. 우리는 저마다의 혼란에 빠져 있었다.
나름대로 많이 찾아보고 고민하며 내린 결정이었는데, 심란했다. 나에게 처음 질문을 던졌던 분은 오늘 재봉틀 작업은 마감한 듯,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조리원에 가야 하는 수만 가지 이유를 계속 늘어놓으셨다. 그분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아서 ‘아, 그래요?‘ ‘하, 다시 고민해 봐야겠네요.’ 정도의 수동적인 방어를 하며 복잡한 마음으로 수업을 마쳤다. 내가 겪어보지 않아서 지금 뭘 모르고 하는 소리인 걸까. 조리원을 안 가는 것이 정말 그렇게 무모한 짓일까. 자기 의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조리원 안 가고 산후조리’를 인터넷 창에다 열심히 검색했다.
나와 같은 선택을 한 사람들의 글을 몇 편 읽다 보니 조금씩 믿음이 돌아왔다. 그래, 이래서 나도 조리원에 가지 않겠다고 생각했었지, 괜히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저마다의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아가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최대한 자연스러웠으면 좋겠다. 아기가 생기고, 태어나고, 자라는 일련의 과정은 대부분의 동물이 겪는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이건 내가 결혼도 하기 전부터 꽤 오랫동안 막연하게 해 오던 생각이었다. 그래서 출산도 의학적으로 꼭 필요하지 않은 인위적 처치는 최대한 피했으면 하고, 수유도 상황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모유를 먹이고 싶고, 태어나는 순간부터 신생아실이 아닌 부모 곁에서 아기가 익숙한 목소리를 들으며 안정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몸조리도 아가와 엄마가 함께, 포근한 우리의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의 도움을 받으며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그런 방식이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름의 이유와 판단의 과정이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눈치 아닌 눈치를 보다 보면 마음이 흔들리며 나를 의심하게 되었다. 출산과 육아는 내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너무 커다란, 머릿속으로만 그리고 있는 세계이니 말이다. 물론 다들 육아에 정답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또 다들 이렇게 저렇게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도 한다. 결국은 계속 공부하고 고민하면서 우리의 가치를 좇는 결정을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그렇게 나는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다.
물론 그 결정의 과정에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기분이 들 때마다 ‘내가 좀 유별난가?’ 생각하게 된다. 사실 살면서 하는 많은 결정에 있어서 나는 그런 기분을 느낄 때가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결국은 내가 원하는 선택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타인들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을 만큼 배짱이 두둑하지는 못한 탓에 늘 마음 한구석이 불편한 적이 많았다. 출산에 관해서도 그랬던 것 같다. 나름의 가치를 염두에 두고 열심히 준비하고 있으면서도, 누군가에게 ‘유난 떤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는 염려가 왠지 모르게 거슬렸던 것이다.
이제 그런 기분이 들 때마다, 나는 이날 검색하다 읽은 어느 육아 블로거의 말을 떠올린다. 아이를 만나는 것은 내 인생 가장 큰 일일지도 모르는데 좀 유별나게 굴면 어떤가 하는 내용이었다. 그래! 좀 유별나면 어떤가!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 내가 내 인생 내 방식대로 의미 있게 살겠다는데, 유난 좀 떨면 어떠하냔 말이다. 그리고 조산사 선생님의 가이드에 따라 출산계획서를 쓰는 과정은 나의 이런 배짱을 조금 더 키워주었다. 출산에 참여하는 의료진에게 원하는 바를 찬찬히 써내려 가다 보니, 아기와의 첫 만남이라는 특별한 우리의 시간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보내겠다고 생각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나 잘못이 없다는 믿음이 생겨났다.
나로 인해, 나에게 의지해 이 세상에 오는 아기다. 그 경이로운 생명을 지켜내는 것, 세상에 한 발 한 발 잘 내딛도록 응원하는 것이 앞으로의 내 역할이자 의무이고 소망이다. 그러므로 주변 눈치는 좀 덜 보고 나를 더 믿으면서 중심을 잘 잡아가야 할 텐데, 이제서야 조금씩 그 연습이 되고 있는 듯하다. 다만 아집과 강박을 경계하면서, 소신과 민폐는 한 끗 차이임을 늘 잊지 않으면서, 내 생각대로 유별나지만 유연하고 자신 있게 살아보자는 의지가 샘솟는다.
와, 나 마침내 조금 더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 육아와 자아 사이
일 중심의 삶에 임신-출산-육아의 세계가 찾아오면서, 그 사이 어디쯤에서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가는 여정을 이야기합니다.
* 글쓴이 - 노현정
교육 x 국제개발협력 언저리에서 일하고 여행합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다정한 우리를 꿈꾸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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